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퇴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퇴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사리판. 몹시 난잡하고 무질서하게 엉망인 상태를 의미하는 이 말을,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국민의힘을 향해 꺼냈다. 자신이 이끌었던 당을 하루 아침에 이렇게 비하하는 광경이 가혹해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지금 국민의힘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아사리판이라는 말이 지나친 것만 같지도 않다.

불과 열흘 전에 공룡 여당을 상대로 압승을 거둔 제1야당의 모습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지리멸렬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의 구심이 부재한 상황에서 국민의당과의 통합, 차기 당권, 홍준표 전 대표 등의 복당을 둘러싼 파열음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김종인을 향한 당내 중진들의 반격 또한 단순하지는 않다.

"김종인이 당을 아사리판으로 만들어놓고 나갔다." (조경태 의원)

““노욕에 찬 정치기술자, 희대의 거간꾼.” (장제원 의원)

"윤석열이 '뇌물 전과자'와 손 잡겠나."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그러나 누가 뭐라해도 국민의힘이 4.7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도록 이끌었던 일등 공신이 김종인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권심판론이 아무리 비등했던들, 김종인을 수시로 흔들었던 중진들의 요구가 힘을 얻었더라면 아마 서울시장 자리는 국민의힘 오세훈이 아닌 국민의당 안철수에게 갔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미약했지만, 극단적 보수를 멀리하고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데 주력했던 김종인의 노선에 힘입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국민의힘이었다. 김종인의 독설이 불편하기는 했겠지만, 그렇다고 그의 공을 전적으로 부정하며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중진들의 모습에서 어떤 저의 같은 것을 읽게 된다. 김종인이라는 장애물이 사라져야 자신들이 주도권을 갖고 판을 좌지우지 하는 환경이 가능해질 것으로 믿을 법하다.

하지만 중진들의 주장과는 달리, “국민의힘으로 대선을 해볼 도리가 없다”는 김종인의 말이 그리 틀린 얘기 같지는 않다. 잠시 국민의 시선에서 사라졌던 정치인들, 홍준표-김무성-이재오-김문수-윤상현 같은 구 정치인들이 다시 국민의힘에 들어가거나 앞에 나서게 될 때 민심은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들로 인한 정치적 소음으로, 민심은 더불어민주당에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내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낡고 낡은 정치세력의 당이 아니라 합리적 사고를 가진 새로운 세력이 주도하는 당으로 환골탈태하는 것이 야당의 사활적 과제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국민의당과의 합당 논의도 안철수 대표를 앞세워 중진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디딤돌로 이용되는 분위기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싶지 않은 구 정치인들은 자기 혁신을 피하는 대신 국민의당과의 통합으로 뭔가 한 듯이 퉁치고 지나가려는 모습으로 읽혀진다. 국민의힘도 물론이지만 안철수 대표까지도 이제는 새로움을 잃은 상태에서, 구 정치인들의 물러서기 없는 통합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자기 혁신이 전제되지 않은 묻지마 통합은 자칫 구 정치인들의 생명을 연장하는 기득권 연대가 될 위험이 커 보인다.

 기대 이상의 압승에 들떠서 자신들이 미루어둔 숙제를 망각한채 “국민의힘을 배제하고 정권 창출이 가능할 것 같은가”(장제원)라는 오만한 말들을 꺼낼 때가 아니다. 자기 욕심 채우는데 급급한 낡고 낡은 정치인들의 퇴장과 새로운 주도세력의 형성이 없다면 국민의힘이 대안세력으로 인정받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윤석열이 대선에 뛰어든 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국민의힘과 어떻게 손잡겠는가. 반사이익으로 얻은 모처럼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는 어리석음을 스스로 경계할 일이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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