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 이복현 등 ‘검찰 출신’ 13명 임명
尹 “과거 민변 출신들이 도배하지 않았나” “필요하면 해야”
권성동 “尹, 검사출신 기용 않겠다고 했다”→“현 상태 말한 것” 번복
민주당 “일 해본 검찰 측근만 능력있다는 인식, 오만과 아집”
박지원 “과거에 그랬다고 지금도 그리하면 왜 정권교체 했나”
[폴리뉴스 김유경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검찰 출신 인사들을 주요 보직에 대폭 인선한 것을 두고 대선후보 시절부터 나온 ‘검찰공화국’ 우려가 보수언론과 국민의힘에서도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과거 ‘민변’과 비교해 문제없다는 식으로 대응하거나 앞으로도 검찰 인사를 계속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 인선에 대해 ‘오만과 아집’이라며 맹비난을 가하고 있다.
금감원장 포함 13명 ‘검찰 출신 인사’ ‘尹 사단’
윤 대통령은 7일 신임 금융감독원장에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인 이복현 전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를 임명했다. 금감원 설립 이래 검찰 출신이 금감원장이 된 건 처음이다.
이 신임 원장은 윤 대통령과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특검 등을 함께 했으며, 삼성 합병·승계 의혹 등 굵직한 기업·금융 범죄의 수사를 이끌었던 '특수통'이다.
지난해 4월 '검수완박' 입법에 대한 검찰 지휘부 대응을 비판하며 사직한 후 55일 만에 금감원 수장으로 공직에 복귀했다.
이뿐 아니라 현재까지 임명된 검찰 출신 인사는 대통령실 비서관급 6명, 정부 부처 장·차관급 7명 등 총 13명이다. 장·차관급 외에 권력기관 요직에도 검찰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도 통상 군 출신 인사가 맡다 이례적으로 검찰 출신이 임명된 경우다.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장에도 윤석열 사단인 검사 출신 강수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거론됐다. 강 교수는 윤 대통령과 함께 성남지청 근무 당시 '카풀' 멤버로도 알려져 있다.
앞서 국정원의 조직 관리와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장에 임명된 조상준 전 서울고검 차장검사의 경우도 2006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당시 윤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김건희 여사의 변호를 맡았다.
또한 국무총리실 비서실장에도 검찰 출신인 박성근 변호사를, 이완규 법제처장에도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징계 취소 소송 업무를 맡았던 최측근 인사를 임명했다.
윤석열 “과거 민변출신들이 도배하지 않았나”
이 같은 지적에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서의 민변 출신 변호사 등용을 빗대어 검찰 출신 인선이 ‘법치국가’에 적합하다고 대응했다.
윤 대통령은 8일 용산 대통령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복현 신임 원장 인선에 대해 "금감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곳은 규제·감독기관이고 적법한 절차와 법적 기준을 가지고 예측 가능하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법 집행을 다루는 사람들이 역량을 발휘하기에 아주 적절한 자리라고 생각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하지 않았나”라며 “미국 같은 나라를 보면 거버넌트 어토니(government attorney, 정부변호사) 경험 가진 분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윤석열-윤핵관 권성동과도 엇박자
권성동 “尹, 검사 출신 기용 않겠다고 했다”…윤석열 “필요하면 하겠다” 일축
이 같은 인사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검찰 출신 인사 추가 발탁을 놓고 대표적인 ‘윤핵관’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반면, 이준석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윤 대통령의 결정에 맡기는 모양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9일 오전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제가 8일 통화해서 ‘더 이상 검사 출신을 쓸 자원이 있느냐’고 하니 (윤 대통령이)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이) 앞으로 당분간은 더 이상 검사 출신을 기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권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필요하면 또 (검찰 출신을 기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권 의원 발언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과거 정권에서도 전례에 따라 법률가들이 갈 만한 자리에 대해서만 (검사 출신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또 권영세 통일부장관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을 언급하며 “검사 그만둔 지 20년이 다 되고 3·4선 의원에 도지사까지 하신 분을 검사 출신이라고 하는 것은 어폐”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자신과 결이 다른 발언을 하자, 즉각 권 원내대표는 “저는 당분간 행정부처 주요 직위에 검찰 출신 기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라며 “저는 현재 상태를, 윤 대통령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말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해명했다.
한편 이날 오후 우크라이나 방문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검찰 편중 인사’ 관련, "만약 윤 대통령이 검찰이란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인사하면 논란이 될 수 있지만, 해당 검사들은 특정 분야의 전문 직종 자격증도 있는 등 굉장히 실력 있는 인사로 파악된다"며 "검사란 이유로,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역차별하는 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은 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백서 발간 관련 브리핑에서 “인사 문제는 전적으로 인사권자의 권한”이라고 밝혔다.
안 의원은 “(윤 대통령이) 가장 잘 아는 분들에 대해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등을 분명히 아니까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며 “그 문제에 대해 즉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이어 “지금 선거 끝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더 파악해야 할 것 같은데, (인사 논란이) 그렇게까지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보수언론, 공적 영역에서의 ‘집단사고’ 위험성 경고
윤 대통령의 ‘검찰 편중 인사’를 두고 보수언론에서도 강도 높은 비판이 나왔다.
지난 7일 <조선일보>는 '곳곳에 검찰 출신, 인사가 편중되면 판단이 치우칠 수 있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대통령이 비슷한 철학과 사고를 공유한 사람들을 발탁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면 '집단 사고'의 오류에 빠지기 쉽고, 끼리끼리 모이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를 수 있다. 수사·정보·인사 등은 상호 견제가 중요한 공적 영역이다"라고 지적했다.
8일 <중앙일보>는 ‘금융감독원장까지 검사 출신…적재적소 맞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윤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과 달리 대통령으로서 준비 기간이 짧아 핵심 그룹과 인재풀을 확장할 틈이 없었던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독립성과 전문성이 필요한 기관까지 검찰 출신을 줄줄이 앉히는 건 지나치다. 검찰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까지 감안하면 끼리끼리의 ‘집단사고’ 위험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9일 <동아일보>는 ‘김순덕 칼럼’을 통해 “대통령실의 인사, 민정(법률·공직기강), 예산 등 6개 보직 중 다섯 자리를 검찰 출신에게 맡기는 바람에 결국 대통령실이 거대한 민정수석실처럼 되고 말았다. 검찰 체제가 ‘사유화’하는 조짐은 불길하다”며 “더 큰 문제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직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검찰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어이없이 흔들리게 됐다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마이웨이식 인사” “사회 주류사고 일색화” 질타
윤 대통령의 인선을 두고 야권에서는 “‘마이웨이식 인사’로 국정운영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데 이어, ‘전임 정권도 했으니 괜찮다’ 식의 발언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9일 오전 국회 정책조정회의에서 “윤석열 사단 막내 격인 이복현 전 부장검사도 금감원 설립 이래 최초로 금감원장에 임명됐다. 18년 몸담은 검찰옷을 벗은 지 겨우 20일 만”이라며 “대출 규제 완화, 가계부채 제어 등 세밀한 접근이 필요한 금융시장 관리를 단지 수사 능력만 갖고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심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실과 국무총리실, 국정원, 금감원까지 무려 13명의 측근 검사가 주요 요직에 임명되면서 윤석열 사단은 사정, 인사, 정보에 사회·경제 분야까지 포진하게 됐다”며 “일을 해본 검찰 출신 측근만이 능력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은 오만과 아집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전문성과 다양성이 결여된 마이웨이식 인사로는 우리 사회의 첨예한 갈등 조정이나 복잡한 국정 운영을 결코 감당할 수 없음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직격했다.
검사 출신인 조응천 의원도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검사들이) ‘능력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도로 보나 정말 검사만 한 공무원이 없다’며 자기들끼리 정신 승리하는 건 좋다”면서도 “그걸 집권해서 그 생각대로 인사를 한다, 그건 다른 얘기”라고 꼬집었다.
이어 “금감원 기능이 금융 범죄를 단속하는 것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검찰만 하는 게 아니다”라며 “시장을 잘 육성하고 조정하고 하는 기능이 더 크지 않나. 과연 이복현 신임원장이 이쪽에 식견이 있는가”고 덧붙였다.
김민석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과거엔 민변 인사로 도배하지 않았냐’는 말씀은 대통령다운 언어라기보다는 ‘나도 너처럼 망가질꼬야(망가질 거야)’의 아동극 대사처럼 들린다”고 비꼬았다.
이어 “민변 대신 서울법대가 주류인 엘리트 검사들로 국가 요직을 채운다면 끼리끼리 코드인사라는 1차원적 비판을 넘어, ‘전 요직의 검사화’가 ‘전 인민의 주체사상화’처럼 사회의 주류 사고를 일색화시키지 않을 것인가 등 철학적인 근본 문제까지 야기해 정권의 도덕적 근본 기반을 파고드는 곰팡이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도 “과거에 그랬다고 해서 지금도 그렇게 한다면 왜 정권 교체를 했나”라며 “문제는 검찰 출신들이 요직을 독차지하고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보수언론에서도 연이어 우려를 하겠나”라고 꼬집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민변이 뭘 도배했다는 건지”라며 “대법관, 헌재 재판관 이런 데는 민변 출신들이 좀 들어갔는데 지금처럼 청와대 무슨 민변 출신이 와서 얼마나 그런 자리에 앉아 도배까지 했다는 건 사실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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