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김중수 등 수많은 인재 양성…'조순 학파'로 불리기도
이창용 한은 총재 "한국경제에 큰 족적, 어려운 상황에 고인 지혜 새겨"
추경호 "경제계 큰 산…바른 정책 고민하던 모습 선명해"

23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고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2022.6.23(연합)
▲ 23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고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2022.6.23(연합)

지난 23일 대한민국 경제학계와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조순 전 부총리가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운명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이고 장지는 강릉 선영이다.

고인은 대한민국 경제학계의 거목으로 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으며 정치권으로 진출해 서울시장, 국회의원, 여당 총재 등을 지냈다. 경제학자 시절에는 국내 경제학의 바이블로 평가받는 《경제학원론》을 공동집필했으며 토지공개념을 주장하기도 했다.

1928년 2월 1일 강원도 강릉군 구정면 학산리에서 태어나 강릉중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중학교를 다녔다. 이후 경기중학교에 편입했고 서울대 상과대를 졸업해 고향인 강릉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육군 통역 장교와 육군사관학교 교관 등으로 군에 복무했으며 육사 시절에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1949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조 전 부총리는 1960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보오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1968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맡아 강의했는데, 그의 학문적 기조는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개입을 지지하는 케인스주의에 바탕을 뒀다.

조 전 부총리는 일명 조순학파를 이룰 정도로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는데, 대학 경제학 강의 '바이블'격인 '경제학원론'을 함께 쓴 정운찬 전 총리, 김중수 전 한은 총재, 김승진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이근식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박정희학술원장 등이 있다.

고인은 육사 시절 인연이 닿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1988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당시 그는 부동산 투기가 만연하던 시기에 소수에 집중되는 부동산 개발 이익을 세금이나 부담금 형태로 환수해 낙후 지역을 개발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는 토지공개념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택지소유 상한에 관한 법률」,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등 토지공개념 3법을 추진했다.

이는 훗날 위헌 및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으면서 효력을 잃었으나 현행 부동산 세제와 개발부담금 제도의 기반이 됐다.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로 임명돼 중앙은행 독립과 금리 자유화 등을 추진했는데, 당시 정부와의 갈등으로 임기 3년을 남기고 물러났다.

고인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권에도 몸담았는데, 아태평화재단 자문위원 시절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당에 입당해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선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그의 길고 흰 눈썹 때문에 서울 포청천, 백미(白眉) 등의 별명을 얻었다.

민주당 분당 사태 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다가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시장직을 사퇴하고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러나 지지율이 낮아 고전을 면치 못하자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단일화했고 양당 합당으로 출범한 한나라당의 초대 총재를 맡았다. 1998년에는 재보선에서 강릉을에 당선,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으나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민주국민당 당수에서 평당원으로 내려오면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서울대 명예교수, 명지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회장, 바른경제동인회 회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등을 맡아 왔다.

조 전부총리의 제자 중 한 명인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오전 국제결제은행(BIS) 연차총회 출장을 앞둔 이 총재는 "공항으로 가다가 별세하셨다는 비보를 접했다"며 "경제학자로서는 물론이고, 한은 총재와 경제부총리를 역임하시면서 한국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며 개인적으로는 제게 가르침을 주신 스승"이라고 아쉬운 심정을 내비쳤다.

그는 "지금 한국경제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고인이 주신 여러 지혜를 다시 새겨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조 전 부총리를 "한국 경제계·학계의 큰 산"이라며 추모했다.

추 부총리는 조 전 부총리 별세 소식에 "대한민국 경제가 갈림길에 있을 때마다 기본에 충실하며 바르게 갈 수 있는 정책을 늘 고민하셨던 고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1989년 7월부터 1990년 3월까지 8개월가량 조순 당시 부총리를 비서관으로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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