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위상 강화 - 한노총과 통합논의는 시기상조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한 민주노동당이 17대 총선에서 제3당으로 원내진출에 성공함으로써 노동운동과 노동계 내부에서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일단 그동안 국회에서 반영되지 않은 노동계의 목소리가 민노당 의원들을 통해 상당부분 국회에서 반영될 것으로 보여 투쟁양상이 변화될 것으로 보이며, 노동계 내부에서도 총선에서 참패한 한국노총보다는 민주노총쪽으로 무게중심이 급격히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이 원내 제3당으로 국회에 입성함으로써 노동계와 노동운동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총선을 통해 권영길 대표, 조승수 후보 등 지역구에서 2명의 당선자를 배출했고 전국 13%의 정당지지율로 비례대표 의석을 8석이나 확보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얻어냈다. 이로 인해 그 동안 현장 중심으로 전개됐던 노동운동의 양상이 변화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는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조직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어 민주노총에 힘이 실리고 노동계의 목소리가 입법과정과 노-사 협상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관측돼기 때문이다.

노동계 내부에서도 변화는 예상된다. 이미 이번 총선에서 녹색사민당을 지원한 한국노총은 이남순 위원장를 비롯한 19일 총선 참패의 책임을 물어 전원 사퇴를 발표하는 등 춘투(春鬪)를 앞두고 총선 후유증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로 날개를 단 민주노총은 꾸준히 넓혀온 조직력과 투쟁경험에 '정치세력화'까지 이뤄내 앞으로 노동계의 투쟁은 민주노총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것이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총선을 통해 연기된 노동계와 재계의 2004년의 임금단체협상도 본격적으로 전개될 예정인 가운데 올해 춘투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에 대해서도 양측 및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춘투의 전개 양상에 대해서는 노-사간 큰 이견과 탄력을 받은 민노총의 자신감으로 투쟁이 격화될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노동계를 대표해 책임있는 정치력을 선보이려는 민주노동당의 노력으로 협상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예측이 공존하고 있다.

노동계 목소리 국회 진출 - 민노당, 민노총과 정책협의 예정
심상정 "민노총 요구 근거하지만 전체 노동자 이익 대변하도록 할 것"

그동안 친재계 일색의 국회에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입성함으로써 나타날 가장 큰 변화는 사업장과 거리에서 주로 울려퍼지던 노동계의 목소리가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입을 빌어 '제도권정치'의 틀 내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노동계를 의도적으로 '배제'해왔던 정치권과 재계의 전략에도 수정을 불가피하게 함으로써 '배제'의 논리가 아닌 서로를 대화상대로 인정하는 가운데 '투쟁일변도'보다는 '대화와 교섭'의 방식에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예측도 낳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과 정책협의회를 정기적으로 가질 것이라는 당선자들의 말을 들어봐도 노동운동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권영길 대표는 지난 2월 말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과 앞으로 정례 정책협의회를 갖고 실제적인 협의를 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심상정 당선자를 비롯한 민주노동당의 당선자들도 "민주노총과의 긴밀한 협조관계는 지속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그렇지만 제도정치권으로 진출한 공당인만큼 지나친 민주노총 입장 대변이라는 주변의 인식을 경계하는 눈치도 역력하다.

심상정 당선자는 "민주노총과의 긴밀한 공조관계를 유지해 나가겠지만 민주노총은 대중조직이고, 당은 정치조직인 만큼 노동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나 수준은 다를 수 있다"며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요구를 근거로 하되 이를 뛰어넘는 전체 노동자 문제를 제도화하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 노회찬 당선자는 총선 전 e윈컴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노동당 발전이 민주노총의 틀 속에 갇혀있는 것은 민주노총 스스로도 원하지 않고, 민주노동당 발전에도 좋지 않다고 본다"며 "오히려 민주조직이 많은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 아닌 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노동자 다수가 참여하면 당이 훨씬 더 레벨이 높아지는 것이라 보고 그런 방면으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노동당의 국회 내에서 노동현안에 대해서 상당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10명이라는 숫자상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반의석을 점한 열린우리당이 참여정부의 '성장'중심의 경제정책에 동조하고 있어, 민주노동당과의 마찰은일정부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투쟁영역이 국회로까지 넓어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향후 투쟁전략이나 방식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국회에서의 노동계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을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그동안 국회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해 불가피하게 장외에서 이뤄졌던 투쟁이 국회 내에서도 이뤄지겠지만 소수의 입장이 많이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만큼 국회 내에서 원만히 처리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대응전략이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계, 민주노총 위상 강화 - 한국노총은 총선 패배로 조직 추스르기에 안간힘
한노총 이남순 위원장 및 지도부 사퇴 - 일부에서는 통합론 솔솔

한편, 그 동안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라는 양대노총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노동운동의 중심이 민주노동당의 원내입성으로 급속히 민주노총 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노총이 향유해오던 대정부발언권과 교섭권 등의 무게중심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으로 쏠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95년 창립 후 꾸준히 한국노총과의 양적 격차를 줄여 온 민주노총이 이번 총선을 계기로 '정치세력화'에 성공하여 대표노총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의 경우, 이번 총선에서 녹색사민당을 통해 '정치세력화'를 꾀했다. 하지만 지역구에서 단 한명의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고, 전국 정당지지도에서도 0.5%라는 최악의 결과를 기록해 녹색사민당은 해체의 길목에 서 있다. 게다가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19일 전원 사퇴하는 등 조직 추스르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은 사퇴를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노동자 대표의 원내진출을 이뤄내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으나 성원해주신 동지여러분의 요구와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서 송구스러운 마음 금할 수 없다"며 "총선결과에 대한 조합원 동지들과 국민여러분들의 판단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사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남순 위원장은 그동안 수차례 녹색사민당이 정당투표에서 2%를 획득하지 못할 경우 사퇴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 위원장은 이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풍토가 필요하고 한국노총의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 위원장이 사퇴함에 따라 부위원장 3인, 비상임부위원장 전원도 이 위원장과 함께 사퇴했다. 한국노총은 60일 이내에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할 대의원 대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히고 이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렇듯 한국노총이 녹색사민당의 총선에서의 참패로 내부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반면, 민주노총은 총선 승리를 계기로 적극적인 정치적 위상 강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민주노총 강철웅 조직쟁의실장은 "민주노동당 원내진출로 민주노총의 투쟁과 교섭에 적잖은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바뀐 정치조건 속에 조직력을 극대화하고 제1노총으로 도약하기 위한 조직방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노동계 일부에서는 양 노총간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나 산하조직의 이동이 빚어질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양대 노총의 통합 여건이 무르익어 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 또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일각의 주장에 대해 일단 양대 노총 지도부는 '전체노동자의 결집'이라는 큰 틀에서는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아직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남순 위원장은 19일 기자회견에서 "통합논의는 총선이전에도 있었다"며 "통합이라는 것은 여건과 상황이 충족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갑자기 이루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통합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한국노총 강훈중 홍보국장은 "두 노총의 산하조직을 보면 서로 특수성이 있는 만큼 판도 변화가 당장 일어날 가능성은 적을 것"이라면서도 "추후 필요성이 느껴지면 연합이나 연대 등의 가능성은 제기되고 있다"고 통합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당선자는 "통합문제를 단순히 '노동자는 하나'라는 근시안적 차원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문제 등 당면한 큰 과제를 놓고 어떻게 넓게 전선을 치고 사울 조건을 만드느냐라는 차원에서 접근돼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 실현된 만큼 양분된 노조운동을 하나로 모아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통합 등의 문제가 고민돼야한다"고 덧붙였다.

심상정 당선자도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 이뤄진 만큼 충분히 제기될 만한 문제"라면서도 "그러나 양대 노총이 대중조직인 만큼 아직 밑에서부터의 충분한 논의와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본다"고 말했다.

재계, 민노당 원내진출에 불안 - 갈등 해소에 도움될 것 주장 많아
노·정 관계도 대화 기조로 지속가능성 - 노사정위 위상변화에 관심

민주노동당이 원내 제3당으로 급부상하자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쪽은 다름 아닌 재계다. 정경유착의 뿌리 깊은 관행 속에 그동안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충실하게 반영해오던 국회 내에 단병호 전 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노동계의 '투사' 들이 대거 진입, 국회 지형에 변화가 생긴 탓이다.

이러한 재계의 위기인식은 총선이 있기 전인 지난 6일 전경련이 205개 회원사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전경련의 '노사관계 현황 및 대응기조 설문' 결과에 따르면 노동계 정당의 국회진출이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40.8%의 기업이 '노사관련 입법이 노동계에 유리하게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정치투쟁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응답도 31.8%로 높게 나타난 반면,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어 노사관계가 안정될 것'이라는 시각은 10.9%에 머물렀고 '달라질 것이 없다'라는 견해는 21.9%로 나타났다.

이러한 재계의 인식은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을 '반노동 헤게모니의 지배질서를 흔들어서 한국노사관계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는 결정적 계기'라고 인식하는 민주노총과 노동계에 대해 불안감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많은 노사관계 전문가들이나 학계에서는 이러한 재계의 인식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그동안 사회적 갈등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돼 온 총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노동자의 분신 자살 등이 파업 등의 단체행동 외에는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노동자의 이익을 제도권 차원에서 대변해 줄 수 있다는 것은 그러한 갈등 양상을 해소하는 데 오히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과도하게 재계쪽으로 치우쳐져 있던 의회권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은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원내에서 현실정치 '감각'을 익혀 노·사의 윈-윈 전략을 내올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다. 물론 재계 일부에서도 이러한 긍적적인 전망에 기대를 걸고 있다.

노·사 관계 못지 않게 노·정관계도 주목받는다. 노·정 관계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노사정위원회의 역할과 위상 변화이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와 같이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는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은 앞으로도 더욱 낮아질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한 만큼 민주노총이 노사정위 참여를 거부할 특별한 명분이 없어 보인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친노동자 정당의 부재나 정부의 이행의지 결여를 불참명분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내에서도 의회 공간과 함께 산별교섭, 노사정위 등을 포함한 전략을 함께 구사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정부와의 대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민주노총의 신임 지도부의 유연한 리더십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해준다.

이는 노동자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거시적 차원의 정책과 입법안의 경우, 정부와의 대화와 협력은 필수적이라 인식을 노동계에서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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