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각과 참신한 방법은 어디에 있나?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1편에 이어 계속)

9. 그렇다. 한국의 현재 정치 체제는 대한민국을 더 이상 전진시킬 수 없다. 양당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무엇보다도 분단 때문이다. 분단은 1945~53년에 당시 진보와 보수 간에 전쟁을 한 결과이고, 지금은 휴전 상태다. 당연히 보수 측에서는 북한과 한국 진보를 한패로 본다. 실제 철학, 가치, 정서 등 유사점이 적지 않다. 게다가 진보 일각에는 조선로동당과 철학, 가치, 정서가 유사한 친북, 종북파가 엄연히 있다. 체제 위협, 레드콤플렉스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보수 역시 친일-학살-독재-부정부패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진보와 보수 간 양당제는 생산적 경쟁이 잘 안 된다. 총칼만 안든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둘째, 국가에 너무 많은 자의적 권능이 있다. 서비스 기능은 약해도 (전쟁, 분단, 개발독재의 영향으로) 폭력, 중앙통제, 동원 기능이 강하다. 세계 최강의 검찰권은 그 중의 하나다. 권력기관 상호간의 견제 장치도 취약하고, 민주적 통제 장치도 취약하다.
 
게다가 기업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규제, 촉진(예산 할당 등) 기능도 강하다. 부동산이 개인과 지역의 명운을 가르는 나라인데, 부동산 관련 규제(도로, 철로, 항만, 공항, 공단, 신도시, 용적률 등)는 거의 국가의 영역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경영 노하우(콘텐츠)와 정보도 거의 국가(관료)의 손 안에 있다. 관료와 관료가 통제하는 국책연구소, 지방 연구원 등. 사회디자인연구소 같은 민간 독립연구소는 너무나 왜소하다. 있는 것은 거의 재벌계와 노조나 협회 같은 이익단체 연구소다. 이래저래 국가(관료)가 강해도 너무 강하다. 헌법 정신으로 보면, 국회가 대통령 및 행정부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보, 지식, 법안 제출권과 법안 및 예산 집행권과 각종 명령 제정권이 있기에 후자가 월등히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의 국회 존중 방안(추천, 동의 등)은 언 발에 오줌누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깨놓고 국회가 그만큼 중요하다면 안철수는 어차피 정치인으로 업종 전환을 했기에, 4.11 총선을 앞두고 정당을 만들거나, 정당에 들어와 국회의원 출마를 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에 출마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다. 
 
셋째, 약탈적 지역주의 때문이다. 물론 미국, 독일, 영국 등 선진국에도 지역주의는 있다. 그런데 왜 한국이 유독 문제인가? 그것은 둘째 요인과 관련이 있다. 지방 자치 전통이 깊은 선진국은 그 지역의 문제를 그 지역 주민이 자조적으로 해결한다. 자신들이 돈(세금)을 내고, 도시계획을 하여 도로도 닦고, 공공시설도 만들고. 신도시도 만든다. 그런데 한국은 국책사업(평창올림픽, 경부고속도로, 신공항 등)을 따오고, 중앙정부의 예산(교부금 등)을 많이 따와서 문제를 해결한다. 그래서 힘센 정치인이나 대통령 감을 키워서 중앙에 보내서 많은 것을 따오도록 한다. 한마디로 자조가 아니라 약탈의 마인드가 강하다. 그러니 정치가 전쟁이 되는 것이다.
 
넷째, 지방자치 제도의 문제도 있다. 기초단체에 대한 정당 공천제도도 문제지만, 이것을 막아버리면 지방의 토호들, 이익집단들, 유력 가문이 다 해 처먹게 되어 있다. 지방민의 자조와 참여의 전통 및 유인도 없고, 중앙이 지방을 공천권으로 쥐고 있고, 지역당은 만들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정당의 다양성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진퇴양난이다. 그 외에도 승자 독과식(싹쓸이) 문화도 중요한 요인이다. 관용과 아량이 취약하다.
 
지금은 보수와 진보 간에 힘이 비등비등한 정치적 교착 상태다. 다수당의 밀어붙이기가 구조적으로 힘들다. 안철수가 무소속으로 대통령이 되어, 새로운 정당을 만든다 하더라도, 현행 선거제도로는 3자 정립구도가 오래 못 간다. 민주당이 안철수 당에 흡수되든 반대로 돼든  아무튼 진보-보수 양당제로 수렴되게 되어 있다. 그러면 양당의 적대적 상호의존 체제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단이 해소 되지 않는 한, 남북 간에 일측촉발의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 한, 1920~70년대 진보 이념의 총화인 북한이 생지옥으로 남아 있는 한, 국가가 너무 많은 것을 쥐락펴락하는 한 진보와 보수 양당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 혁신의 핵심은 수명이 다한 1987~88년에 형성된 헌법, 선거법을 바꾸는 것이다. 그 핵심은 지지율 10%가 넘는 정당이 최소 4개, 많으면 5~6개가 나오도록 하는 결선투표제와 중대선거구제와 2년 만에 한번 정도 중간 평가(심판)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엉뚱하게 지방 선거로 정권을 심판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다당제 구도를 만들어 이른바 "안보 보수(레드 콤플렉스가 심한 사람들)"와 "시장 근본주의자" 와 "북한과 철학 가치가 유사한 친북/종북파"와 "생태주의자" 등이 자신들의 당을 만들어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지금의 양당 구조에서는 이들이 보수와 진보당의 일각을 차지하기에 보수와 진보 전체에 대한 공포와 불신을 초래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기득권 중의 기득권은 바로 거대 양당의 기득권이다. 안철수가 말하는 기득권이 이런 것까지 포함한다면 실로 올바른 통찰이다. 

다당제 구도를 통해 생산적 경쟁체제로 정치・정당 품질이 높아지면, 선출직과 정무직을 대폭 늘려야 한다. 선거주기도 2년마다 한 번씩 큰 선거가 있도록 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제왕적 관료제도(행정부, 입법부)이다. 
 
10. 안철수는 낡은 정치의 원인으로 복잡한 이해관계를 들면서, 빚진 게 없는 자신의 처지로부터 오는 강점을 내세운다. 또한 대한민국을 궤도를 벗어난 아폴로 13호에 비유하면서, 나사(NASA)가 각계의 다양한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복합적 사고원인을 분석해냈고, 무사히 귀환시켰다는 것을 강조한다. 소통, 융합에서의 강점을 내세운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빛(가시광선)이 빨강(R), 녹색(G), 파랑(B)의 3원색으로 분해되듯이, 인간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내적 질곡도 과도한 탐욕(이해관계), 무지(지식, 지혜), 증오(감성, 정서, 두려움) 3요소로 분해될 수 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한국은 전쟁, 분단, 기아, 무질서(깡패세상 등), 북한의 참상 등으로 인해 뿌리 깊은 콤플렉스(과도한 두려움)가 있다. 이건 쉽게 없어질 어떤 것이 아니다. 또한 이론과 실물, 전공과 전공, 영역과 영역 등 각 분야 간에 놓인 높은 담(일종의 휴전선)이 많아서 소통, 교류, 상호 존중, 대화와 타협 문화의 후진성이 심각하다. 특히 정치가 꼭 필요로 하는 융합 지식/지혜, 즉 무지의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 그 놈의 복잡한 이해관계(탐욕)도 도덕적인(?) 대통령이 호소한다고 해서 조정될 정도로 그리 녹녹하지 않다. 아무리 성인군자 같은 국회의원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선거구 조정 문제나, 자신의 정치적 기득권을 보장하는 선거제도 및 정당 기득권 문제는 결코 호락호락 양보하지 않는다. 정의를 구현해 보겠다고 대선 캠프에 모여든 수많은 교수, 변호사들 역시, (시간 강사나 교사나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 명백히 부당한 기득권이라 할지라도 잘 내려놓지 않는다. 개개인의 심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동류나 동업자의 집단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리 합리적인 노조 지도자라 할지라도 노조의 단순 무식한 이해와 요구와 정서—집단 이기주의라 비판 받는다 할지라도—를 온전히 대변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와 같다. 아폴로 13호로 비유한다면, 정치는 융합 지식, 지혜의 문제도 있지만, 고통 분담의 문제도 있다는 얘기다. 극단적으로 아폴로13호가 무사귀환 하기 위하여 누군가를 우주선 밖으로 쫓아내야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유한한 자원과 무한한 욕망이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연금 없는 노인들과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에 대한 보호 수준, 범위나 의료 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정하는 문제가 바로 이런 문제이다.
 
한마디로 낡은 정치의 주범으로 정치인의 (정치적) 빚을 거론한 것은 너무나 피상적인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빚진 게 없으니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정말 어이가 없는 논리다.
 
11. 대선 후보들은 국회 의석이 있든 없든 국회가 법안과 예산으로 협조를 해야 하는 일을 공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뽑아주면 ‘무엇 무엇을 하겠습니다. 만들겠습니다’라고 얘기한다. 안철수도 이런 얘기를 많이 하였다. 그런데 10.7 선언문에는 특이하게도 국회에 대해 만들어 달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있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국회의 동의를 거쳐서 행사되도록 하겠습니다. 국회도 개혁안을 만들어 주십시오”, “국회에서도 우리 법 곳곳에 숨어 있는 특권과 독점체제를 바꿔주십시오”, “모두가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여야의 합의로 법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런데 “반칙이 통하지 않는, 상식적인 사법체계” 등 많은 사안은 국회에 대해 만들어 달라고 하지 않고, 만들겠다고 말한다.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사항과 만들겠다고 하는 사항은 무슨 큰 차이는 없다. 다만 만들어 달라는 얘기는 여야 개념보다는 행정부와 입법부 개념이 강한, 미국식 대통령제를 의식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무소속 대통령 의지 내지 자세를 내비쳤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안철수가 단일화 프레임에 말려들어가서도 안 되고, 단일화를 정면 거부해도 안 되는 모순된 처지를 보여 준 것이다. 물론 문재인도 안철수가 욱일승천해서도 안 되고, 추락해도 안 되는 모순된 입장이긴 하지만....... 아무튼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 후보인 안철수는 원칙만 일치할 뿐 세부 내용에서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는 경제민주화--실은 복지, 교육, 남북관계 등 모든 사안이 마찬가지다--의 경우, 안철수표 경제민주화, 복지개혁, 교육개혁 방안 등을 내놓고, 이것을 국회에 제안하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을까 한다. 
 
11. 안철수 생각의 골조가 초가삼간이면, 침대, 장농, 책장, 냉장고, 대형TV 등 현대 생활의 기본인 가구와 가전이 제대로 들어갈 수가 없다. 리어카나 소달구지 플랫폼에 자동차 엔진을 얹을 수 없다. 그래서 정책비전 선언문이 심각한 것이다. 그래서 현실을 잘 알고, 개혁 해법을 제대로 고민한 사람들 중 안철수의 정책에 관여하는 사람이 있다면 골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것이다. 초간 삼간 프레임을 철거하지 않으면서, 재건축 수준으로 리모델링하여 (온갖 묘안을 짜내어), 현대식 가전, 가구를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12. 이 외에도 안철수의 생각과 10.7 선언문은 너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생략한다. 결론적으로 문재인, 박근혜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 끌어갈 수 있는 위대한 생각과 참신한 방법이 너무 없다.
 
안철수의 생각과 이번 선언문과 그 동안의 행보를 종합해 본 결과 안철수는 아무래도 “정치 혁명군”이라기보다는 "정치 야만족"에 가까운 것 같다. 야만족이란 원래  기존의 문명이 힘을 잃었을 때 득세하는데, 기존 문명이 오랫동안 축적한 합리적 핵심이나 성과를 거의 이해하지도 못하고, 단지 무시무시한 힘으로 파괴할 뿐이다. 기존 문명을 파괴는 하지만, 새로운 문명을 개척하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생각해 보면 이명박이야말로, 기존 여의도 정치문법을 경멸한 정치야만족의 대표이다. 그 말로를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기존의 정치문법과 너무나 다른 문법을 구사한 노무현도 (민주당 분당, 당정분리, 대연정 등), 정치 입문 1년 만에 민주당 후보를 꿰찬 문재인도 정치야만족의 속성이 다분히 있으니 그리 기분 나빠할 일이 아니다. 국민은 기존 정치를 파괴할 정치야만족을 갈망하니까! 그런데 안철수는 여태 나타난 그 어떤 정치야만족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존의 정치 문명을 더 무시하는 차원이 다른 야만족인 것처럼 보인다.
 
생각을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당선도 쉽지 않지만, 설사 당선돼도 성공적인 국정운영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안철수의 당락에 관계없이 제3의 정치세력의 구심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인 안철수에 대한 바람의 마지노선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정치와 정책에 대한 이해가 낮으면, 이 역시 연목구어가 아닐까?
 
인품 하나는 정말로 좋아 보이는 안철수와 문재인 두 후보에게 정말로 물어 보고 싶다. 진심의 정치, 참여와 소통 중시, 반칙과 특권 타파, 빚진 것 없는 처지, 학습능력 등에서 둘째라면 서러워 할 노무현이 왜 그렇게 서글픈 운명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13. 내 가치판단의 나침반이자 북극성은 위대한 생각, 참신한 방법이 없는 정치집단은 결코 위대한 정당도, 위대한 나라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암만 뜯어 봐도 안철수에게는 위대한 생각과 참신한 방법이 너무 빈약하다. 안철수는 나폴레옹이 될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나 문재인에게 그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나라와 좋은 정치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은 대선 후보에 너무 기대하지 말고, 한마디로 '날로 먹으려 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기본을 튼실히 해야 한다는 얘기다.
 
14. 분명한 것은 안철수 대통령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정권 교체고, 정권 교체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만악의 근원인 한국 정치를 제도(헌법, 선거법, 국회법, 지자체법 등)적으로, 문화적으로 혁신하여, 자유롭고 정의롭고 희망 넘치는 통일 코리아를 만드는 것이다. 안철수 죽이기가 살리기인지, 살리기가 죽이기인지 도통 알 수 없다면, 정치/정책혁신과 대한민국이 살 길을 얘기하는 것이 정도가 아닐까?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폴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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