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6․13 지방선거 압승
6․13 지방선거는 16대 대통령선거에 앞서 민심을 파악해 볼 수 있는 선거로 인식되었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부정부패 심판론”으로, 민주당은 이회창 후보의 호화빌라, 병역 비리 등 이회창 후보의 “5대 의혹”을 전면에 내세우고 분투를 하였다. 그러나 월드컵 탓인지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지방선거는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지만 한나라당이 16개 광역시도 단체장 중 11곳에서 승리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광역단체장 선거결과>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 의혹
정몽준 의원 대선 출마
민주당의원 집단탈당
행정수도 이전 공약
분야별 후보공약 제기 중 충청권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들 수 있다. 노무현 후보가 충청권 표심을 위해 제기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하여 10월 2일 개별 토론회에서 이회창 후보는 40조원의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며 현실성이 없는 안이라며 반대를 표명하였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신은 충청권을 첨단 지식, 기술 산업 중심의 미래를 선도하는 기반도시로 육성한다는 “과학기술 수도론”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는 5조원이면 충분하다며 행정수도 이전을 현실성이 있다고 거듭 주장하였다. 정몽준 후보는 이에 대하여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하며 대신 대기업 본사의 지방 이전을 제안하였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도 실질적 지방분권이 선행되는 것이 중요하며 행정수도 이전에는 회의적이라고 반박하였다.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합의
법정 선거운동기간 (11월 27일 ~ 12월 18일)
국정원 도청 의혹은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이 9월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 대한 국정원의 도청 사실을 폭로하는 등 잇따른 국정원 도청 의혹 제기의 연장선에서 11월 28일 재제기하여 이슈화에 성공했다. 정형근 의원의 국정원 도청 의혹 제기 이후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국정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정형근 의원에게는 문건 입수 경위를 밝힐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검찰이 수사를 하면서 사건은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팽팽한 대치 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12월 1일 민주당 이인제 의원은 “이번 불법 도청을 지켜보면서 여론 조작을 일삼는 부패한 패권 추구 세력의 국정농단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동아일보 2002.11.28)며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당을 탈당하였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의 네거티브 선거전략은 여론의 뒷받침이 없는 오히려 역효과를 주고 말았다. (이현우, 2002, “16대 대통령선거에서 나타난 이슈와 후보자 전략” 한국정치학회 춘계학술회의 발표논문) 이러한 이회창 후보의 네거티브 전략 속에서 12월 3일 1차 TV토론회의 결과 권영길 민노당 후보가 최대 수혜자였으며(지지율 1.4% 상승), 이회창 후보의 경우 국정원 도청 의혹제기와 TV토론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약간 받았다(지지율 2.7% 하락). 노무현 후보의 경우는 TV토론에서 약간의 부정적인 영향이 있었지만, 일관되게 동등한 대미관계를 주장해 온 것이 반미기류에 편승하게 됨으로써 긍정적 영향을 약간 얻게 되어 지지율 하락이 적었다(지지율 0.3% 하락).
선거운동 중반기 (12월 10일 ~ 12월 17일)
경제․과학 분야를 주제로 한 2차 TV합동토론회를 통한 후보들의 지지율 변화는 미비하였으며, TV토론 긍정평가는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보다 1.8% 앞섰다. 권영길 후보도 가장 TV토론을 잘했다고 평가받으면서 새로운 표심이 유입되는 효과를 누렸다. 그러나 2차 TV토론은 전체적으로 노무현,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에 큰 영향은 주지 못하였다.
12월 12일 북한은 미국 등이 중유 공급을 중단한 데 대한 맞대응 조치로 핵발전소의 동결을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핵개발 재개 선언은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회창 후보는 북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현금지원을 전면 중단해야 된다는 입장인데 반해, 노무현 후보는 이에 반대하면서 포괄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사건은 대북 정책과 맞물려 여론의 향방에 따라 근소한 두 호보의 막판 지지율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사안이었다. 북핵위기는 결국 이회창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미군 장갑차에 사망했던 신효순, 심미선양의 사건 이후 관련 미군 2명이 무죄로 선고받고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국민들은 분노하고, 11월 30일 첫 광화문 촛불시위를 시작으로 12월 14일에는 전국적으로 30여만의 시민들이 SOFA 개정, 부시 미 대통령의 사과, 무죄평결 무효를 주장하며 시위를 계속했다. 이러한 반미 기류는 노무현 후보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선거운동 종반기 (12월 18일) 정몽준 지지철회
4. 캠페인을 통해 본 선거전략
실제로 후보자 합동방송토론회, 방송광고, 방송연설 등 언론매체를 이용한 선거운동은 선거운동의 초반부터 유권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등 미디어선거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돈 안 드는 선거의 토대를 만들었으며, TV․인터넷 등 온․오프라인 미디어가 유권자에게 파고드는 효과와 위력은 과거 선거시 대규모로 청중을 동원하는 선거운동방식을 탈피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노무현 후보의 정치광고
노무현 |
이회창
|
새로운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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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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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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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쇠한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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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화합의 대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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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분열의 대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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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후보는 자신에 대해서는 참신한 후보로, 이회창 후보에 대해서는 낡은 후보로 취급하고 있다. 노무현 후보는 자신이 새롭고 젊은 정치인으로서 국민의 화합을 이루어내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고, 반면 이회창 후보는 기성 정치인으로서 낡고 노쇠하며, 지역주의를 조장하여 국민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표현하였다. 노무현 후보의 기본적인 광고전략은 유권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포지티브 광고를 선택하였다. 노무현 후보는 네거티브로 접근하는 이회창 후보에 ‘상대하지 않겠다’고 내세우면서, 노무현 후보를 ‘희망의 미래를 만드는 사람’, 이회창 후보를 ‘낡은 정치에 매달리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렸다.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과정을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다소 늦은 홍보 전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후보의 이미지는 ‘과격한 노무현’의 이미지에서 ‘서민적이고 친근한 대통령’ 이라는 전략으로 광고전략을 하였으며, 주 타겟은 부산과 경남지역의 30대와 40대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홍보전략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는 상대적으로 노년층과 영남지역에서 열세를 보였다. 노무현 후보의 이미지는 방송토론을 통한 거침없는 ‘직설화법’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확고히 하였으며, 이회창 후보와 마찬가지로 방송광고와 신문광고에서 차별적인 홍보를 하였다. 방송광고의 노무현 후보는 ‘눈물’을 주제로 한 감성적 광고홍보와 신문광고를 통해 한나라당의 ‘부정부패척결’을 내세운 전술에 대응하는 광고를 진행하였다. 전반적인 노무현 후보의 홍보전략은 서민층에 다가가는 ‘친근한 대통령 후보’의 이미지 전략을 중심으로 홍보하였다.
이회창 후보의 정치광고
이회창 |
노무현
|
깨끗한 정권의 창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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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정권의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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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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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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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있는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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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력한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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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후보는 자신에 대해서 능력있는 후보로, 노무현 후보에 대해서는 무능력한 후보로 취급하였다. 이회창 후보는 자신이 깨끗한 정권을 창출할 수 있고, 안정을 이루어낼 수 있는 능력있는 후보라고 표현하고 있고, 반면 노무현 후보는 부패한 정권을 계승하려하고, 안정을 이루어낼 수 없는 무능력자로 표현하였다. 즉, 기본적인 광고 전략은 안정적인 구세력에 대한 호소와 부패정권 교체라는 설정이었다. 노무현 후보를 ‘급진세력’ 또는 ‘DJ 계승자’로 비유하면서 부패정권 교체를 외치는 네거티브한 광고를 선택하였다.
이회창 후보의 주요 홍보대상은 20대와 30대의 수도권 거주자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30대 가장에 대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내집 마련, 자녀교육,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등을 기초로 이회창 후보는 10대 개혁과제를 내용으로 하는 홍보 전략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의 ‘귀족적 이미지’는 광고 전략을 진행하는데 있어 많은 어려움을 주었으며 미디어를 통한 ‘귀족과 서민의 대결’ 이라는 수식어를 탈피하기 위해 서민과 친근한 모습을 강조한 부드러운 이미지 마케팅을 하였다. 이회창 후보의 홍보 마케팅은 신문광고와 미디어광고에서 차별성을 두었으며, 신문광고를 통해서 ‘이성적 판단이 뚜렷한 이회창 후보’를 방송광고에서 ‘부드러운 이미지의 이회창 후보’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홍보 타깃에 대한 분석 (이선지, 2004, p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