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거 캠페인 개요

2007 12 19일 실시된 대통령선거를 말한다. 선거방식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졌다.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鄭東泳), 한나라당의 이명박(李明博), 민주노동당의 권영길(權永吉), 민주당의 이인제(李仁濟), 창조한국당의 문국현(文國現), 참주인연합의 정근모(鄭根謨), 경제공화당의 허경영(許京寧), 새시대참사람연합의 전관(全寬), 한국사회당의 금민(琴民), 무소속의 이회창(李會昌) 10명이었다. 원래는 12명이 후보로 등록하였으나 국민중심당의 심대평은 무소속의 이회창과 단일화하였고, 화합과 도약을 위한 국민연대의 이수성은 사퇴하였다. 참주인연합의 정근모도 투표 전날인 12 18일 이회창과 정책을 연대하고 지지선언을 하여 단일화하였으나 법적 사퇴 시한을 넘겨 후보자격이 유지되었다.

 

총 선거인은 부재자 81 755명을 포함하여 3765 3518명이었으며, 총 투표자는 2373 2854명으로 투표율이 63%에 그쳐 직접선거로 치러진 11차례의 대통령선거 가운데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투표 결과는 한나라당의 이명박이 1149 2389표를 얻어 득표율 48.7%로 당선되었고, 정동영이 617 4681(득표율 26.1%) 2위를, 이회창이 355 9963(득표율 15.1%) 3위를 기록하였다. 그 뒤로 문국현이 137 5498(득표율 5.8%), 권영길이 71 2121(득표율 3.0%), 이인제가 16 708(득표율 0.7%), 허경영이 9 6756(0.4%), 금민이 1 8223(득표율 0.1%), 정근모가 1 5380(득표율 0.1%), 전관이 7161(득표율 0.0%)를 얻었다.

 

이명박은 한나라당의 경선에서 박근혜를 누르고 대통령후보로 나서기 전부터 그리고 후보들 간에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 뒤로도 줄곧 여론지지율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도중에 이회창이 한나라당을 탈퇴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일과 이른바 'BBK사건'의 연루 의혹으로 한때 지지율이 내려가기도 하였으나 끝까지 '대세론'을 유지함으로써 호남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최다득표를 하여 2위를 500만 표 이상 누르고 당선되었다.

 

17대 대통령선거는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보수세력과 민주세력의 대결이라는 한국정치의 기본구도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나라당은 획득할 수 있는 지지층을 최대한 흡수한 반면에 정동영과 문국현 등의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민주세력은 핵심 지지층만 결집시키는 데 그쳤고, 민주세력 경향의 지지층이 이탈하는 양상을 보인 것이 패인으로 분석된다.

 

2. 선거 결과

 

○ 선거일 2007 12 19

○ 선거방식 국민 직접선거

○ 당선자 이명박

○ 전국평균투표율 63.

○ 주요 후보자 득표율 이명박 48.7% 정동영 26.1% 이회창 15.1% 문국현 5.8% 권영길 3.0%

○ 시도별 득표율

▲  
▲  

 

 

 

 

 

 

 

 

 

 

(출처 : 한국갤럽 사후조사)

 

 

3. 17대 대권을 향한 대장정

 

 

2005 10, 이명박 서울시장 청계천 복원

 

이명박은 1995년에 민선 서울시장에 도전한 적이 있다. 당시 민자당 경선에서 정원식 후보에게 패한뒤 절치부심 끝에 마침내 2002년 지방선거에서 재도전하여 서울시장 자리를 차지했다. 대권을 향한 도전은 언제부터였을까.

2005년도 1월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고건 총리가 1위를 달리고 있었고 이명박은 박근혜보다 뒤지는 3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명박, 2006년 지방선거後 대권주자 1위 부상

 

▲  
▲  
이명박은 서울시장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고건과 박근혜를 물리치고 대선주자 1위로 올라섰다. 한때 ‘선거의 여인’인 박근혜가 1위를 달리던 적도 있었지만 지방선거가 끝난 뒤 이명박은 고건과 박근혜를 제치고 선두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후 모든 여론조사에서 이명박은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고건 낙마, 이명박 50% 지지율 돌파 2007 1

 

▲  
▲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유력한 대권후보였던 고건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다. 지지율 반등의 기회를 찾지 못하고 지지도 하락세를 막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고건의 불출마의 최대 수혜자는 지지도 선두를 달리고 있던 이명박이다. 고건의 불출마로 이명박은 처음으로 50% 지지율을 돌파한다.

 

 

 

손학규 前 경기지사, 한나라당 탈당 2007 3

 

▲  
▲  
한나라당 대권주자였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한나라당을 탈당한다. 손학규는 한나라당의 구태를 비판하며 새로운 정치 질서를 창조하겠다는 포부가 탈당 이유였다. 하지만 손학규의 지지도가 5% 내외에 머무르면서 탈당의 파괴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탈당직후 여론조사에서는 8.9%로 잠시 치솟기는 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5%대로 주저 앉고 만다.

 

정운찬 대선 불출마 선언 2007 4

 

▲  
▲  
또 한명의 암묵적인 대권주자였던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불출마 선언한다. 고건의 불출마 선언으로 열린우리당은 경쟁력있는 차기 대권주자를 확보하고 있지 못했다. 그러한 여권은 정운찬 서울대 총장에 대해서 눈독을 들이며 영입작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운찬의 불출마 선언으로 여권은 신당창당과 정권재창출 전략은 일대 수정이 필요했고, 경쟁력 후보 부재라는 멍에를 짊어져야 했다.

 

한나라당 경선 시작 2007 6

 

▲  
▲  
차기 대권주자의 1, 2위를 모두 확보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경선 룰에 대한 합의가 최대 난제였다. 당시 한나라당은 경선이 제대로 치러지지 않는다면 분당마저 예견되는 갈등국면이 심각했다. 이명박 측과 박근혜 측이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합의한 경선 룰은 대의원 20%, 당원 30%, 일반국민 30%, 여론조사 20%를 반영하기로 하였다. 당내 기반이 있던 박근혜 측과 여론이 앞서고 있는 이명박 측의 절묘한 합의점이었다.

 

 

 

이명박 "무능한 이념세력 교체""헌법·국민과 싸우지 마시라" 盧대통령에 경고

박근혜 "5년안에 선진국 도약""아버지시대 불행과 희생 송구스럽고 죄송"

 

한나라당의 이명박ㆍ박근혜 두 유력 대선주자가 11일 제17대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로 공식 등록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당내 경선에서 질 경우 대선 본선에 출마하는 것이 불가능해 후보등록 순간 이들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이다.

한나라당은 819일 경선투표를 하고 20일 전당대회에서 투표함을 개봉, 당선자를 확정하기로 해 두 주자는 70일 간의 퇴로 없는 대혈전을 벌이게 된다

 

열린우리당 해체 2007 6

 

▲  
▲  
열린우리당은 우리 정당사에 있어서 중대한 도전이었다. 열린 우리당은 새로운 정치를 모토 2003년 출범하여 2004년 총선에서 원내 1당이 되었다. 기간당원제 실시, 원내정당의 강화, 당정분리의 원칙 등 정당사에 있어서 새로운 실험을 펼쳐 보였다.

그러나 참여정부 집권 시기에 연이은 재보궐선거의 패배, 참여정부의 지지도 하락, 지도부의 취약성 등으로 열린우리당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2007년부터 시작된 국회의원들의 탈당사태로 국회 과반수에 육박하던 국회의원수가 70여석으로 줄어들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된다.

결국 2007 8 20일 열린우리당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와 김한길을 비롯한 구 중도통합민주당 탈당파, 열린우리당 탈당파, 그리고 시민단체가 주축이된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합당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한나라당 경선, 이명박 대선후보 확정 2007 8

 

▲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하여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경선과정에서 이명박 측과 박근혜 측은 과열경쟁으로 제주합동연설회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이명박은 당원 및 대의원 투표에서 박근혜에게 뒤졌으나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앞서면 전체 1.5%(2,452) 차이로 신승했다.

 

 

 

 

이명박

박근혜

선거인단 투표

64,216(49.06%)

64,648(49.39%)

여론조사

16,868(51.55%)

13,984(42.73)%

종합결과

81,084(49.56%)

78,632(48.06%)

 

선거인단 지역별 투표현황

전체

131,086

70.8

64,216

64,648

서울

27,943

69.9

16,190

11,113

부산

11,178

80.2

5,273

5,789

대구

7,423

79.0

2,305

5,072

인천

6,290

66.1

3,038

3,135

광주

2,327

46.0

1,338

853

대전

3,739

69.5

1,272

2,404

울산

3,185

79.8

1,517

1,637

경기

25,590

66.1

12,779

12,543

강원

4,340

73.2

1,866

2,436

충북

4,215

74.0

1,823

2,343

충남

5,512

72.5

2,271

3,179

전북

3,883

54.6

2,141

1,581

전남

4,746

61.0

2,692

1,852

경북

9,637

90.2

4,455

5,111

경남

9,382

77.2

4,498

4,748

제주

1,696

79.4

707

852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 출마선언 2007 9

 

문국현 대선 후보 출마

 

범여권 컷오프 2007.9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통과

 

남북정상회담 개최 2007 10

 

남북정상회담이 2007 10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다. 남한의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회담을 하여 6·15공동선언의 적극 구현,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 추진,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적극 활성화, 이산가족 상봉 확대 등을 내용으로 하는 2007남북정상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여권은 이러한 정상회담이 선거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까 하는 기대를 했겠지만 이명박 대세론은 꺽일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손학규의 좌절

 

손학규는 8 12일 여론조사에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선호도에서 가장 높은 지지도를 얻었다. 40.0, 정동영은 16.8 그러나 같은 여론조사에서 신당의 정치발전 기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손학규의 대권행보는 어떠했는가.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 확정, 민주당 이인제 후보 확정 2007.10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통과

구분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선거인단 투표

132,996

81,243

54,628

모바일 투표

62,138

70,031

45,284

여론조사

21,850

17,525

10,216

종합결과

216,984

168,799

110,128

선거인단 지역별 투표현황

구분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8개시도

51,125

37,851

29,641

대전

1,766

1,464

1,974

충남

2,182

1,616

2,895

전북

38,078

6,387

2,367

경기

13,025

13,587

5,767

인천

3,117

3,160

1,331

대구

1,108

1,530

1,677

경북

1,598

2,017

1,174

서울

20,997

13,631

7,802

이명박 BBK 논란 2007.10

 

17대 대선은 BBK로 시작하여 BBK로 끝났다는 말처럼 BBK는 선거의 핵심 이슈가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BBK라는 투자자문회사가 주가조작을하여 부도덕한 이윤을 챙긴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자살을 한사람까지 생기기 까지 했다. 문제는 이 주가조작에 연루된 사람들이다. 당시 여권의 주장은 BBK 실소유자가 이명박이였기 때문에 주가조작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사실이라면 대선판을 흔들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명박은 자신과 BBK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검찰이 김경준씨를 소환하여 조사를 하였는데 검찰 조사결과는 이명박후보와는 무관하다는 것으로 발표하였다.

지지후보 결정시 BBK 사건 영향 받았다 44.6%, 받지 않았다 48.9%

 

이회창 출마선언 2007.11

 

이회창의 대권도전 3수가 시작된다.

 

선거운동기간(11 27~12 19)

17대 대선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선거운동기간을 초반, 중반, 종반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자.

 

선거운동 초반기(11 26~12 2)

 

선거운동 중반기(12 3~12 8)

정몽준, 이명박 후보 지지선언하며 한나라당 입당(12 3), 심대평후보, 이회창 후보와 단일화(12 3) 검찰, BBK 사건 중간 수사결과 ‘이명박 후보 무혐의’발표(12 5) 1TV토론(12 6), 이명박 후보, 집 제외 전 재산 사회 환원발표(12 7), 태안 기름 유출 사건(12 7)

 

선거운동 종반기

2 TV토론(12 11) 이수성 후보 사퇴(12 14) 이명박 후보 BBK 광운대 강연 동영상 공개(12 16) 3 TV토론(12 16) 이명박 국회특검 국회 통과(12 17)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