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미산마을의 전경
▲ 성미산마을의 전경

 

 

▲ 성미산 마을 지도
▲ 성미산 마을 지도

 

 
<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체제가 들어서면서 ‘마을공동체 사업’을 핵심공약사업으로 추진중에 있다. 산업화된 도시에 옛스런 이름인 ‘마을과 공동체’가 결합된 ‘마을공동체’는 시민들에게도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에게도 매우 낯선 단어다. 그럼에도 그 막연한 취지에 공감하며 현재 서울 15개 구청별로 마을공동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서울시가 앞장서는 ‘관’ 차원에서의 공동체 사업은 그 이전부터 각 지역에서 관과 무관하게 주민들 스스로,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움직여온 여러 ‘지역공동체 풀뿌리운동’에 힘입은바 크다.

폴리뉴스는 「도시 및 공공문화 창조기업 (주)창조와 소통」과 함께 풀뿌리 공동체지역과 서울시 구청별 공동체 사업의 현장 탐방, 공동체 지역운동가 등 인터뷰, 여러 마을의 생생한 모습 등을 [마을이야기 르포]를 시리즈로 올릴 계획이다. 기사형식보다는 담담한 ‘이야기’로 풀어나갈 예정이다. >
 
11월 26일 아침 10시 반, 우리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중 가장 유명한 곳으로 알려진 성미산 마을을 방문하였다. 단체 관광객을 받고 있었는데, 우리만 둘이고 나머지는 마을공동체를 만드려 하는 두 단체에서 20명씩이나 방문하였다. ‘마을’ 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있는 데다가 첫 방문이라 뭔가 멋진 마을 지도도 있고, 집모양도 비슷하고, 사람들끼리도 굉장히 반갑게 인사하며 “우리에 오신 것을 마을을 환영합니다^^”라고 할줄 알았건만 그런 것은 전혀 없고 내가 살고 있는, 단독주택과 작은 빌라들이 모여있는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서민 동네였다.
 
우리는 “다른 동네하고 별 다를게 없네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별다른 말없이 걷다 길눈이(마을을 안내해주는 분)와 함께 시민공간 ‘나루’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이 곳은 녹색교통운동, 한국여성민우회, 함께하는 시민행동, 환경정의 네 NGO가 모인 건물인데 성미산 주민들에게 거의 무료로 강의실 및 극장 공간을 빌려주고 있다고 한다. 지하로 내려가는 중에 벽에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곳이 있었는데, 성미산 마을은 이렇게 마을 시설이나 기업의 출자자들을 적어 놓는다.
 
들어가니 굉장히 우리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실 것 같은 분이 대기하고 게셨는데, 이분이 우리 마을을 설명해주시는 분이셨다. 사실 이 PT내용들은 사전조사에서 거의 알아보고 간 내용들이긴 했지만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마을’ 이라고 해서 따로 경계나 구역이 설정되어 있지 않으며 시골 마을 공동체로 유명한 변산마을 공동체와는 달리 주거⋅농사⋅경제⋅문화를 함께하는 밀착형 농촌 공동체가 아니라 도시적 특성을 살린 도시지역 생활 관계망이라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을사람들끼리 인사나누고 모이고 엄청나게 친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집에 들어가고 모여서 윷놀이도 하고 막걸리도 한잔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 각자 자기 사회생활하면서 마을 내에서 특정 시설⋅활동에 대한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여서 한두개씩 벌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그런 느슨한 공동체다. 구획적이고 계획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니, 지도도 없고 그럴싸한 마을 그림도 안나오는 수밖에. 마을은 협동조합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마을 내 40~50개 협동조합 및 단체에 가입한 인원들은 대략 600여가구 1000여명 정도이며, ‘마을’, ‘마을주민’이라는 구체적 범위가 없기 때문에 본인들도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즉 각 단위가 전부 독립적인 조직이여서 어느정도 추산만하며 네트워크만 있을 뿐이지 이를 총괄하는 일괄조직은 없다는 뜻이다.
 
성미산 마을은 언제 어떻게 생겼는가 
 
성미산 마을은 1994년 ‘공동육아협동조합’으로부터 출발했다. 우선 협동조합 형태의 어린이집을 궁금해할텐데, 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린이집은 설립형태에 따라 통상 국공립 어린이집과 사립어린이집으로 나뉘는데, 협동조합 어린이집은 설립 주체가 ‘협동조합’이다. 어린이집을 필요로 하는 이해당사자가 모여서, 조합을 설립하고 출자금을 모아서 목돈을 마련한 뒤, 이 자금으로 어린이집을 설립하게 된다. 조합을 탈퇴하면 이 출자금은 되돌려 받는다. 때문에 협동조합 어린이집은 주인이 조합원이다. 교사는 온전히 교육만 담당하며, 그 밖에 재정, 운영, 청소, 식사 등 운영전반에 관하여는 학부모들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책임진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은 맞벌이 부부에겐 안성맞춤이다. 출근시간대에 아이들을 맡기고, 퇴근 때 찾아가는 종일반으로 운영한다. 즉 성미산 마을은 부모들이 아이를 맡기기 위한 장소,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집 몇 개 있다고 마을이 바로 형성되는가. 어린이집을 통하여 조합원내 크고작은 교류가 이어지다, 마을 사람들이 한 번에 뭉치는 일이 터졌다. 2003년, 이명박 시장 시절 서울시는 산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고도64미터의 작은 언덕이지만 이 동네의 상징과도 같으며, 그들의 산책로이자 쉼터인 성미산을 없애고 배수지로 활용하려 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그들은 아이들과 함께 산을 지키기 위해 불침번을 서는 등 필사적으로 막아냈고, 결국 공사를 막아냈다. 결국 산은 지켜지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은 ‘아, 함께 뭘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마을에 다른 협동조합 및 문화 활동들을 해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미산 마을의 주요 기관들
 
▲ 성미산학교 입구
▲ 성미산학교 입구
성미산학교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자 몇몇 부모들은 형식적이고 일률적인 공교육에서 벗어나 공동체와 협동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참교육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었고, 이는 성미산학교라는 대안학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성미산학교는 2004년 9월에 개교한 대안학교이다. 초중고 통합 12년제이며, 장애인 통합학교(정원의 10%)이다. 따로 기숙시설이 없다. 동네로 이사를 오라는 뜻이다. 또한 정부로부터 인가를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력인증이 되지 않으며,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 대안학교 중에서는 드물게 자가 소유 건물(대지 220평, 연건평 550평)을 갖추었다. 최근 학생수(2010년 현재 학생 160여명, 교사 30여명)가 늘어나서 장소가 협소해진 관계로 별관 건물을 따로 마련(임대)했다. 학교 운영은 학교설립위원회 이사회와 학교운영위원회, 교사회 등 3단위가 동등한 위상을 가지고 서로 협력하여 진행하고 있다. 성미산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학부모들의 마을살이 참여가 무척 활발하다.
 
학부모들은 초∙중∙고 동일하게 매월 49만 5천원의 운영비를 낸다. 기본적인 국, 영, 수 수업과 함께 프로젝트 위주의 수업을 진행한다. 현재 최고 학년은 고등학교 3학년 생 5명이며 이 중 2명은 수시로 대학을 진학하였고, 3명은 각자의 진로를 찾아갔다. 학생의 진로 설정에 있어서 본인이 입시공부를 열심히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일반 학교로 전학 갈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학생을 받을 때는 이 학생이 성미산학교에 도움이 되는가를 가장 우선적으로 본다고 하며, 학생끼리 대화와 소통의 시간을 자주가져 소규모에 장애인도 있지만 심한 따돌림이나 장애인 차별은 없다고 한다. 비인가로 운영되고 있어 세금도 다 내고 재정적 지원도 없어 늘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인가를 받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인가를 받게 되면 재정지원이라는 명목하에 (실질적으로 지원금도 적다고 한다) 교육 프로그램이나 과정등을 간섭하려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가 과정에서 교육 과정 등에 대한 협의가 필요해보이나, 중간 다리를 놔줄 전문 인력이 없는 것 같다. 설립 및 임대료는 기금으로 운영되며, 학부모가 1,000만원 씩 내고, 부족한 기금은 대출을 받은 뒤 함께 갚아나가고 있으며, 수업료인 월 49만 5천원은 대부분 교사 월급 및 운영비로 쓰이고 있다.
 
성미산 마을 축제
2001년 5월에 처음 시작했다. 마을을 알리는 목적이 아닌 마을 사람들이 모여 1년에 한번정도는 놀아보자는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됐다. 성서초등학교, 성미산, 월드컵공원, 한강공원, 두레생협 앞 도로, 골목길 등에서 진행했다. 이 마을축제는 외부의 지원과 도움 없이 그야말로 참여자 중심, 주민 중심으로 기획하고 준비하여 진행한다. 비용도 마을 커뮤니티 내부에서 조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지자체나 외부 단체의 지원과 도움은 있으면 아주 좋고, 없어도 그냥 한다. 축제 컨셉 잡기, 진행 조직, 비용 조달, 축제 참가자 모두가 성미산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한다.
 
축제는 마을 커뮤니티 활성화에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한다. 2009년도엔 신종플루가 창궐하여 축제를 취소했고, 2010년도엔 지방선거와 성미산지키기운동 때문에 규모있는 축제를 진행하지 못했다. 2년 동안 제대로 된 축제를 진행하지 못한 효과는 ‘마을의 활력이 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서로들 강하게 받았다는 점이다. 나 혹은 부모님이 마을 축제에서 직접 공연을 하면 매우 감격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동안의 흔적들을 보여주는 공연 사진들이 줄줄이 걸려있다
▲  그동안의 흔적들을 보여주는 공연 사진들이 줄줄이 걸려있다
성미산 마을극장 
2009년 2월에 문을 열었다. 시민공간 나루에서 거의 무상 공간을 임대해줬다. 성미산마을극장은 그야말로 복합적인 공간이다. 극장으로서 필요한 각종 장비를 제외하고는 공간은 텅 비어있다. 이곳에선 각종 공연이 이루어지는 건 당연하고, 각종 회의도 진행된다. 전시도 하고, 강의도 하고, 마을 방문객을 위한 피피티도 하고, 심지어 파티도 한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풀가동될 때가 많다. 2010년 12월 문화예술로 사회에 공헌하고자 하여 사회적기업으로 정식 인증을 받았다. 극장 대관과 공연 일정 문의는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된다. 각종 활동을 통해 주민들이 참여하니 주민들의 문화생활이 풍성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마포두레 소비자 협동 조합
2000년 4월부터 준비하여, 7월에 발기인대회를 열고, 11월에 물품 공급을 시작했다. 2001년 5월엔 ‘제1회 성미산마을축제’를 주도적으로 개최하였고, 어린이 마을학교나 여름마을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마을교육에 대한 드높은 관심은 2002년 8월 ‘우리마을 꿈터’라는 마을교육 공간을 마련하는데 이르렀다. 2003년 2월엔 생협법에 근거해 두레생협을 법인으로 전환시켰다. 2003년 9월 성미산지키기 운동의 승리가 확실해지는 가운데 지금의 ‘되살림가게’ 자리에서 첫 번째 매장(성산점)의 문을 열었다. 조합원의 꾸준한 증가로 인해, 조합원 가입 범위를 마포구 서부지역으로 한정했던 것을 2005년 3월부터 마포구 전역으로 확대하였다.
 
2007년 2월엔 두 번째 매장(용강점)의 문을 열었고, 그해 6월엔 조합원 가입 범위를 마포구에서 서울 강북지역 전역으로 확대하였다. 2009년 8월엔 세 번째 매장(신내점)을 오픈했다. 두레생협은 10년 동안 조합원 수와 매출에 있어 급성장을 했고, 반면 성미산마을 커뮤니티와의 긴밀한 관계가 다소 멀어졌다. 이에 따라 2010년 12월에는 새로이 ‘마을위원회’를 설치하여 성미산마을 커뮤니티와 생협과의 긴밀한 관계를 다시 강화하려 하고 있다. 2010년 연매출은 40억에 이르며, 2011년 기준 두레생협 전체 조합원 수는 5,500가구가 넘었다. 생산지와 직접 연계하고 있으며, 조합원들과 활발한 교류를 이루고 있다.
 
되살림 가게
2007년 마포두레생협에서 녹색가게협의회의 ‘되살림 강좌’를 진행했다. 때마침 생협이 매장을 확장 이전하게 되면서 점포의 임대기간이 본의 아니게 비게 되었다. 생협에선 되살림 강좌를 들었던 수강생들에게 한시적으로 녹색가게를 개설해 볼 것을 제안했다. 동네 여성 5명이 첫 활동가로 나섰고, 비어있는 휑한 공간에 행거를 주워놓고, 집에 있던 옷가지들 모아 걸고, 바닥에 은박자리 깔고, 작은 난로에 발을 녹이며 소박하게 시작했다.
 
남은 임대기간 동안 잠시 판을 벌인다는 게 주위의 관심과 지원으로 상설 매장을 차리게 되었다. 2008년 두레생협의 지원을 받아 ‘되살림두레’로 전환을 하면서 정관도 만들고 운영위원장도 선출했다. 매장은 자원활동가들로 운영이 되며, 매장 인근에 거주하는 지역 주민들의 이용이 대단히 높다.
 
▲ 소행주 2호. 독특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 소행주 2호. 독특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 소행주 1호 내의 게시판. 햄스터는 좋은 주인을 만났을까?
▲ 소행주 1호 내의 게시판. 햄스터는 좋은 주인을 만났을까?

 

소행주(소통이 있어서 행복한 주택 만들기)
마을에서 공동주택을 만들자는 생각은 2001년부터 있었는데 이를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다가, 2008년 4가구가 모여 드디어 공동주택을 만든다. 그 이듬해 2009년 또 다른 4가구가 공동주택 2호도 만들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당사자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다보니 예상보다 비용도 더 들고, 공사 기간도 더 늘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공동주택 전문 기획 회사를 설립하여 진행하면 더 좋겠다는 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즉 코하우징 컨설팅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시공회사인 소행주를 설립했다.
 
소행주에서 대지를 매입하고, 공동주택에서 함께 살 사람들을 모집하여, 몇 차례의 워크숍을 거친 뒤 건축 설계의 기본 컨셉을 잡은 뒤, 2010년 9월 소행주 공동주택 1호 공사를 착공하여 2호까지 완성되어 입주가 완료된 상태이고, 현재는 3호를 지을 예정이다. 각자의 집은 20평이며 입주자의 요구에 따라 각 집마다 내부구조를 달리하여 지었다. 장기 소유하는 각자의 공간과 공유 커뮤니티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2층에는 공동주방이 있어서 아이들이 이곳에서 놀기도 하고, 함께 저녁을 먹기도 한다. 1호는 가족 단위, 2호는 주방과 거실은 같이 쓰고 침실을 네 개로 나눠쓰는 방식으로 독신자들이 살고 있다.
 
작은나무 카페
2004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이 카페는 우여곡절이 많다. 무슨 일을 만드는데 별로 겁이 없고 오지랖 많은 엄마가 어디선가 과일을 재료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계를 보았다. 그 과일을 유기농 과일로 바꾸면 유기농 아이스크림이 되겠네! 처음 이름은 ‘유기농 아이스크림 전문점 그늘나무’였다. 2년여를 버티다가 폐업을 심각하게 고심하던 중, 성미산학교 교사들이 이를 위탁 운영을 제안한다. 청소년들의 일센터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이에 초기 창업자는 가게 소유권을 마을에 내놓고, 유기농아이스크림, 사랑방의 성격을 이어간다면 설비 일체를 마을에 기부하겠다는 큰 결심을 밝힌다. 2007년 3월 성미산학교 교사들이 100만원씩을 출자하고, 카페 이름을 ‘작은나무’로 바꾸고 마을카페로 다시 시작한다. 또다시 1년여를 힘겹게 버티다가 완전 폐업을 또 생각하던 중, (사)사람과마을에서 운영진을 성미산학교 교사에서 마을 주민들로 재구성하고, 마을의 사랑방과 문화공간으로 지속시키기 위해 매장 공간을 확장하는 등의 제안을 한다. 개인 출자에서 교사 출자로, 다시 주민 출자로 확대하면서 3천여만 원을 모았다. 지금은 비교적 안정적인 매출과 운영을 하고 있으며, 마을의 중요한 문화 휴식 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성미산 밥상
마을 유기농식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오랫동안 있었다. 처음부터 주민출자로 시작했다. 그러나 식당은 되살림가게나 작은나무카페보다 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규모가 훨씬 컸기 때문이다. 초기 출자금은 몇몇 사람들이 500만원씩 거액을 내놓았다. “솜씨 없는 내가 식당을 500만 원에 사는 셈 친다”며 통장을 박박 긁어 출자한 엄마도 있었다. 1년여에 걸친 준비 과정을 거치며, 2010년 4월에 드디어 문을 열었다. 90여 명의 출자자가 이 식당의 주인이다. 5~6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마을 주민 중 한명이 수익에서 나오는 고정급을 받으며 요리사로 재직 중이다.
 
(사) 사람과 마을
2007년 11월에 여성가족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마을에 크고 작은 일들이 진행되고 어떤 일들은 단위 커뮤니티에서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이른바 ‘마을 일’을 담당하는 단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마을 외부와 소통할 때 마을을 대표하는 단위가 필요하기도 했다. 사람과마을은 주로 ‘마을 일’을 추진하는 위해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 관련된 회의를 소집하거나 외부 단체에서 진행하는 각종 공모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로 나서거나,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과 접촉할 때 대표기관으로 나설 때 활용된다. 마을을 총괄하는 조직은 아니고, 외부와의 접촉에 있어서 대표기관으로만 활동한다.
 
둘러보고 나서.... 마을의 상황과 아쉬운 점
 
위의 기관들을 소개하는 친절한 PT가 끝나고 설명되어 있는 마을들의 각 기관과 마을 주변을 직접 둘러보았다. 마을은 조용하고 좋았으나 둘러보며 조금 안타까웠던 점이 있다면, 도시컨셉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고 지역의 공동주제가 없다는 것이였다.
 
길눈이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는 단독주택 단지여서 나름 운치가 있었다고 하나, 최근 지가 상승 및 홍익 초·중·고의 입주로 인해 단독 주택이 허물어지고 오피스텔이나 주택이 지어지고 있어 마을 경관을 헤치고 있었다. 성미산 마을의 활성화가 인근 지역의 지가 상승에 도움을 주었으나, 그 이득은 땅주인이 보고 있는 것이지만, 이는 엄연한 개인 사유재산이기에 마을 사람들은 물론 지자체도 간섭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 성미산 학교 입구에 주차되어 있는 자전거들. 마땅한 자전거 주차장이 없다
▲ 성미산 학교 입구에 주차되어 있는 자전거들. 마땅한 자전거 주차장이 없다
지자체 자체적으로로 마을 컨셉을 정하여 새로 짓는 건물은 소행주와 유사한 디자인으로 짓도록 정해주면 어떨까. 하는 무지한 생각을 해봤다. 또한 단독주택이여도 마을 벽면벽면이 휑한 곳이 많았는데, 아이들 중심의 마을 공동체이기도 하니 성북구 장수마을처럼 인근 대학생들에게 벽화를 그리도록 해보면 어떨까, 하는 두 번째 무지한 생각도 해봤다. 또한 길눈이의 마을소개 시에는 자전거로 단번에 오갈 수 있는 규모의 작은 마을이라고 하였지만, 실제로 아쉽게도 마을 골목이나 자전거 주차장의 유무를 보면 자전거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골목이 좁은데다가 차가 많아 자전거가 다니기 위험하고, 자전거 주차장이 제대로 없어서 성미산 학교 아랫공간에 마구 주차되어 있었다. 저 안쪽에 있는 자전거들은 어떻게 빼는 걸까?
 
2003년에 서울시의 배수지 공사를 막아낸 마을 사람들, 이들에게 한번 더 위기가 찾아왔는데, 2010년 학교법인 홍익학원 사유지인 성미산 일부에 홍익 초·중·고가 입주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2003년 때처럼 성미산을 지키기 위해 다시 모였으나, 사유지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현재는 홍익 초·중·고가 전부 들어와있다. 이로인해 인근 지역에 입주 수요가 늘어나면서 단독주택들이 헐리고 새 빌라들이 마구 들어서고 있는 상황인데, 마치 옛날의 마을이 파괴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이러한 외부인의 다량 유입이 성미산 마을 공동체의 지속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인이 많이 유입되면 상대적으로 기존 마을 공동체 사람들의 활동이 축소될 것이고, 고급 사립 초⋅중⋅고의 특성상 현재의 협동조합 어린이집이 아닌 사립형 어린이집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이며 이밖에도 사교육에 대한 수요의 증가로 협동 교육이라는 성미산 마을의 교육 취지가 약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이에 대한 생각보다는 단순히 차량 증가로 인한 골목 내 아이들의 교통사고 정도만 우려하고 있는 듯하여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마을공동체 분들은 내부 사정을 잘 알려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아마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 도중 재정적 어려움은 없냐고 질문하였는데, 늘 있는 부분이라고 바로 답해주셨다. 출자는 공동출자이긴 하지만 대부분 소액인데다가 기부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사를 갈 때도 잘 찾아가지 않아 출자비 자체에는 큰 어려움은 없지만, 대부분 사업이 내부순환 구조이고,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계층이 서민층이기 때문에 재정적 어려움은 늘 뒤따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 재정지원 혹은 외부로부터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사업을 하지 않는 한 성미산마을이라는 마을공동체 유지에 큰 어려움이 닥치지는 않을까, 하는 세 번째 무지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길눈이에게 서울시의 재정지원에 대한 부분을 물었다. 서울시가 공동체 구현 사업에 1340억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알고 있으나, 그 것이 어디 분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재정지원에 큰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정지원이 나오면 서로 그 돈을 받으려 하기에 내부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으며, 국가 지원 예산의 경우 지속성이 없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2007년에 ‘살고싶은 도시만들기 시범 사업’ 도시로 선정되어 국가로부터 1억원을 지원받고 주기적으로 지원받기로 하였으나, 2008년부터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만약 예산으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경우 예산이 바닥나 지원이 끊기면 계속 추진하기가 어렵게 된다는 우려를 표했다.
 
시에서 만약 성미산과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함께 하고자 한다면 금액 지원 전에 정책의 지속성을 약속하는 것은 물론 그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설득의 과정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바로 공무원이다. 이어서 공무원들의 마을공동체를 대하는 태도를 물었다. 길눈이는 마을공동체 사업이 박원순 시장의 핵심 지침이니 만큼 공무원들이 열심히 하긴 하는데 전체적으로 마을공동체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마을공동체 사업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이에 공무원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말에는, 공무원들이 마을공동체 사업을 단발성 정책으로 생각하지 말고, 생활과 공존이라는 마을공동체의 진정한 의미와 의도를 충분히 알고 마을 만들기 사업에 임해야 한다고 하였다.
 
글을 마치며...
 
언론에 알려진대로라면 이 곳은 매우 끈끈하고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굉장히 따뜻한 기운이 풍길 것 같은 그런 곳이여야 했으나, 사실 이 곳은 하나의 끈끈한 공동체라기 보다는 서울의 작은 골목 동네 서민들이 좀 더 잘 살아보자는 취지로 하나하나 일을 벌이는 모임이였고, 마을 주민들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친근감과 소통을 회복하는 과정은 매우 부러웠다. 한곳에 7년 가까이 살면서 옆집 사람, 윗집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산 나와 매우 비교되는 풍경이다. 길눈이에게 이 마을공동체에 살며 가장 좋은 점을 물었더니 힘든 일 있어도 불러내서 수다도 떨고 술도 한잔 같이 할 수 있는 마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맞다. 이게 마을공동체의 핵심이다. 서울시 조례대로 제정 주거, 복지, 문화, 경제 공동체 구현 이런 거창한 것들이 아니라, 마음 편히 모여서 소주한잔 기울일 친구 있는, 공동체성의 회복. 우리 부모님은 둘이서만 술마시고 퇴근하거나 쉬는날엔 집에서 핸드폰게임만 하고 취미생활을 안하시는데 우리동네에서도 이러한 마을극장과 여러 모임들이 있다면 우리 가족 모두 더 행복한 삶을 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을내에서 더 이상 새로운걸 벌리지는 않겠다는 말과 더불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공동체 단위로 할 수 있는 일로는 한계에 다다른 듯한 인상을 받았다. 성미산 밥상이나 천연제품, 컨셉있는 마을 설정으로 인한 관광수입, 마을네트워크 형성 강좌 등 지자체나 혹은 다른 네트워크 기업을 활용하여 여러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이 보이나 마을공동체 특유의 폐쇄성을 보이며 이를 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재정적으로 조금 어렵긴 하지만 이미 본인들끼리도 잘 운영되고 있고, 일이 커지면 갈등이 커지고 힘들어진다는 생각이 있으리라. 옳다. 일을 함부로 벌리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또한 이미 성미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합원들끼리는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 확장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닌데 굳이 외부와 접촉할 필요가 있는가. 하지만 홍익초중고로부터 시작되는 외부인 유입과 고급형 주택에 의한 수요, 외부인의 다량유입에 의한 마을 공동체 쇠퇴, 지가 상승으로 인한 본래 마을 공동체 주민들의 이사, 사립 초중고로 인한 사립유치원 수요로 인하여 협동조합 어린이집의 쇠퇴, 지속적인 재정상의 어려움 등 지금은 마을 만들기 우수사례이나 새로운 타개책 없이는 현재와 같이 여러 좋은 활동들도 몇 년 후까지 꾸준히 지속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성미산 마을의 위기가 찾아오길 바라지 않는다.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례의 핵심으로서 더욱 발전하여, 지금 성미산 학교를 다니고 있는 어린 초등학생 아이가 동네에서 뛰어놀 때 마을 어른들이 아이가 뛰다가 어디 다치지는 않나 조용히 지켜봐주고 있는 것처럼, 그 초등학생이 성미산마을에서 자라고 늙어 할아버지가 되어 다시 마을의 아이를 조용히 지켜봐주는, 그런 ‘진짜’ 마을이 되길 바란다.
 
박혜경, 김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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