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치’가 ‘특권 폐지’로 모아질 경우 ‘엘리트 정치’ 강화시킬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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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새해예산안에 128억 원의 국회의원 연금지급 예산이 반영되면서 의원연금 폐지쟁점이 논란이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의 일환으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지난 총선과 대선시 의원연금 폐지를 약속하고서도 슬그머니 깔아뭉갠 탓이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팽배한 상황임에도 여야 원내지도부가 선거가 끝나면 선거기간 중 약속한 공약을 돌아보지 않아온 지난날의 관행을 그대로 들러낸 것이 이번 논란의 근본배경이다. 정치는 모든 의사결정이 그 사안의 옳고 그름과 정합성 이전에 국민의 뜻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명제에 충실치 못한 때문이다.

국민들이 바라보는 이번 논란의 핵심은 다름 아닌 정치권의 말 바꾸기에 있다. 지난 총선과 대선 당시 새 정치프레임이 정치권을 강타하면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란 어젠다를 경쟁적으로 제시하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여야는 128억 원의 예산을 반영하고서도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는 데 있다.

인터넷에서 논란이 확산되자 뒤늦게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에 나섰지만 이는 사후 약방문격이 됐다.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으로 이번 예산안을 실무적으로 챙겼던 나성린 의원은 6일 이에 대해 국회의원 연금은 통과된 예산 전액 집행하겠다는 것이 아니다고 진화에 나섰다.

나 의원은 국회에서 지원 대상을 극빈에 처해 있는 전직의원들에 대해서만 지원하기로 방향을 잡았다다만 구체적인 지원대상과 지원액수가 정해지지 않은 관계로 예산을 삭감하지 않은 것이며 그 결과에 따라 불필요한 예산들은 불용처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사후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민주당도 이번 논란이 발생하자 김기식, 윤관석 등 초선 의원 14명이 지난 3일 국회 정론관에서 이달 내 임시국회에서 연금법 폐지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내지도부나 예결위 간사 등 실제 예산안을 주무른 책임 있는 인사들은 장막 뒤로 숨었다. 초선 의원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운 듯한 인상만 주면서 여론의 냉소를 받고 있다.

이러한 여야 지도부의 국민에 대한 말 바꾸기로 점증되는 더 큰 문제는 정치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정치의 기능자체가 왜곡되는 상황에 빠진 점이다. 기존 정치권이 정치적 역할을 기능을 못해냄으로써 지금의 정치불신새정치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낳았고 그 역작용으로 정치의 기능자체가 위축시키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1년 몰아닥친 안철수 현상새 정치의 지향점이 대선국면을 거치면서 ‘87체제가 갖는 한국정치를 구조적 모순을 혁파하자는 흐름이 약화되고 정치 불신에 기반한 정치 기능의 축소쪽으로 가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에 새 정치가 갖는 프레임 속에 한국정치가 갖는 구조적 문제점, 지역구도, 다양성을 배제시키는 양당구도, 승자독식, 대립-갈등 지향의 정치구조 등에 대한 개선은 어느덧 한 풀 꺽이고 국회의원 특권폐지등의 어젠다만 남은 듯하다. 이는 새누리당이 4.11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현상의 새 정치 요구수렴이 정치제도의 개선보다는 특권폐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낸 데 기인한다.

선출된 권력의 권한과 역할, 행정부와 기업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비해 약해

이러한 흐름이 이번에 의원연금 폐지논란으로 증폭된 것이다. 그러나 새 정치의 지향점이 국회의원 특권 폐지등 국회와 정치의 기능축소에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향후 오히려 정치를 퇴행시킬 우려 또한 존재한다.

의원연금만 따로 떼어내 들여다보면 이는 자칫 한국정치 현실에서 이른바 엘리트 정치를 강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지금도 정치권에 각계각층의 대표성을 확장시키는데 많은 난관이 있는데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면서 각계각층의 이해를 조정하는 역할을 엘리트에 맡기게 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이 깊어지면 정치는 자신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한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될 수 있다. 지금도 정치권에는 소득기반이 확고한 기업 경영자나 자산가, 변호사-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학계 교수 등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시민사회운동 활동가나 정당 활동을 꾸준히 한 준정치활동출신자의 비중은 낮다. 또 이른바 전문 정치인 집단을 양성하는 시스템도 거의 전무하다.

사회운동가나 정당 활동가들의 의회 진입 비율이 높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비기득권 정당이나 진보정당에 의원연금 폐지는 어쨌든 불리한 제도적 요소가 될 수 있다. 국민연금에 비해 과도한 특혜는 분명히 줄여야하지만 개인이 정치를 통해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을 제한하는 데까지 갈 경우 엘리트 정치만 강화시킬 뿐이다. 정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들이 입문하는 무대가 될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른바 엘리트 정치’, ‘금권 정치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선거공영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제도를 확충시켜왔다.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선출된 국회의원의 정치적 발언을 보다 자유롭게 하기 위해 면책특권불체포 특권도 부여했다. 이는 선출되지 않은 행정부의 전횡과 권위적인 권력에 대해 이를 견제하라고 국회의원에게 준 권한이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정착되면서 이러한 특권들이 시대적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은 존재한다. 그렇다고 애초의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만도 능사는 아니다. ‘정치는 기업과 같은 효율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를 없애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선출된 권력의 권한과 역할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비해 약한 국가이다. 지금 국회든 지방의회든 그 활동이 국민의 뜻보다는 사익추구에 더 가까운 상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지만 국회의원의 경우 매 4년마다 약 50%가 선거를 통해 교체된다. 그만큼 불안정한 지위에 있기에 당내 정치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는 비기득권 정당일수록 더한 실정이다.

이번 의원연금 폐지논란에서 짚어야할 대목은 특권폐지새 정치의 어젠다가 되는 것이 정치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가선 안 된다는 점이다. 행정부나 경제권력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견제하는 유일한 선출된 권력이 해야 할 정치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치권이 지금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사는 것이 자신의 정치기능을 제대로 못한 데 있기 때문이다. 선출된 권력인 의원 권한을 축소하고 정치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에 가깝다. 이는 국민 다수인 비기득권층의 이해대변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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