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취임사 이중적 입장 유지...보수층 설득정도에 따라 결정될 듯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외국 언론들의 관심이 지대하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향후 5년간 한반도 정세 변화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5일(미국 현지시간)에 박 대통령의 취임과 관련해 “한반도 주변국들의 정권교체기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가 중요하다. 북한을 포함해 모두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며 특별한 관심을 드러냈다.

NYT는 또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말을 빌어 “핵실험의 시기를 취임에 맞춘 것은 김정은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박 대통령이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북핵 프로그램 중단을 위한 미국 주도의 노력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것과 관련,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깊은 불신에도 긴장완화를 위해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고 박대통령 또한 2002년 김정일을 만나 화해를 모색했지만 보수를 기반으로 한 그녀가 대북접근을 어느 정도까지 깊숙히 할 수 있을지는 회의감이 있다”고 전했다.

AP통신도 전날 “북한의 최근 핵실험으로 박 대통령은 취임도 전에 대북 강경 정책을 완화하겠다는 공약을 시험받게 됐다”며 “북한, 미국, 중국, 일본은 반(反)공산주의 독재자의 딸인 박 대통령이 지난 5년간 한반도내 형성된 적대감을 완화할 정책을 펼칠지, 이 전 대통령의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지를 지켜보고 있다”고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향배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미 CNN방송도 “박 대통령이 북한 핵무장의 망령과 ‘군사 독재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이라는 ‘두 거인의 그림자’가 드리운 중에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며 “박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남북간 상호 구속력 있는 기대를 강조하는 보수주의 정책인 ‘신뢰외교(trustpolitik)’를 약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신들의 이러한 관심과는 달리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안보보수층의 기대에 부응해 북한에 대한 단호한 경고성 말과 함께 자신의 공약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의 메시지도 담았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이어진 이명박 정부의 대북고립정책 계승이냐 아니냐에 대해 애매한 이중적 입장으로 줄타기 행보를 유지했다.

안보를 강조하며 북한에 대해선 안보보수층을 겨냥한 기조를 유지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핵실험은 민족의 생존과 미래에 대한 도전이며, 그 최대 피해자는 바로 북한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한민족 모두가 보다 풍요롭고 자유롭게 생활하며,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을 만들고자 한다”며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준수하고 올바른 선택을 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진전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어 “북한은 하루빨리 핵을 내려놓고, 평화와 공동발전의 길로 나오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이명박 대북정책 실패로 규정해야 새 출발 가능

이러한 박 대통령의 애매한 대북정책 행보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실패를 극복해야 한다는 당위적 목표와 박 대통령을 지지한 안보보수층의 기대가 서로 모순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또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있은 지 한 달도 안 된 상황에서 섣부른 대북행보를 할 경우 자신의 대북협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고려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현재 이명박 정부의 지난 5년간의 대북고립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릴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3차 핵실험, 그리고 핵과 로켓능력 증강에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이다.

이에 대한 압박은 주변정세의 흐름, 특히 미국의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작용하면서 커지는 형국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지난 5년간 여러 번에 걸친 북미 대화과정에서 이를 집요하게 방해한 데 대해 불쾌감까지 나타내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개발능력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보수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증강의 책임을 전적으로 북한 정권에게 돌렸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대북정책의 실패를 스스로 자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책실패의 책임을 보수층의 안보정서 속에 숨기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심지어 한국의 핵보유 주장을 ‘애국적’이라고까지 했다.

보수지지층은 이러한 이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동조하는 정서가 강하다. 남북대결 지향의 집단정서가 강고하게 작동하는 현실에선 이 전 대통령이 계속 언급해 온 ‘북한의 급변사태’와 ‘북한 정권교체’, ‘흡수통일’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북핵 사태는 합리적으로 보면 보수논객들이 주장하듯 5-10여년 전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퍼주기’와는 전혀 무관하다. 지난 5년간의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의 산물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립강경노선에 생존의 위협을 느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목을 맨 남북 상호작용의 결과란 게 북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이러한 여건 때문에 박 대통령으로선 보수지지층을 어느 정도 설득하느냐,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디까지 비판하며 어느 지점에서 남북관계 신뢰구축 프로세스를 작동시킬 것이냐의 선택이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의 출발점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실패를 분명히 한 지점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그 출발점 찾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박 대통령은 자신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구축의 출발점을 6.15 공동선언, 10.4 선언 중 어느 한 지점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원점에서 새로 만드느냐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는 박 대통령이 ‘금강산관광’과 ‘5.24 조치’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그의 대북정책의 진로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박 대통령을 지지한 보수층들에 대한 설득 정도에 따라 판가름 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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