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재보선과 안철수의 도전, 5.4전대와 문재인

■ 박근혜 정부 출범 한 달, 인사난맥과 국정공백으로 얼룩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이 된 3월 25일, 바로 이날 인터넷뉴스 지면은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의 자진사퇴로 얼룩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 한 달의 키워드가 ‘인사대란’이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불과 며칠 전인 22일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이 이른바 별장 성접대 연루로 물러나고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도 비리의혹으로 낙마했다. 여기에 여야간 정부조직법을 두고 52일간의 대치마저 겹치면서 박근혜 정부 출범 한 달은 그야말로 인사난맥에 따른 국정공백으로 얼룩졌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갤럽의 3월 3주차(18~21일)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잘하고 있다’는 긍정평가가 44%에 그쳤다. 직선제 이후 역대 대통령 임기 1년차 1분기 지지도와 비교하면, 역대 최저치이다. 그럼에도 ‘인사대란’은 어디까지 이어질 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와중에 박근혜 정부의 미래지향점 마저 실종됐다. 지난 대선당시 약속한 ‘국민대통합’은 어느덧 간 곳이 없다. 그리고 ‘약속과 신뢰’라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도 상처입었다. 또 당장 시급한 민생공약인 ‘중산층 복원 프로젝트’는 어디론가 묻혀버렸다.

정부조직법 협상과정에서 미래창조과학부를 두고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원안을 고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도대체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국민들은 알 길이 없다. 중소기업 육성정책인지, 아니면 김대중 정부 초기 추진한 ‘벤처 육성사업’인지, 국가주도형인지 아니면 민간주도형인지 도대체 ‘창조경제’란 그림의 퍼즐을 맞출 수 없다.

‘대한민국호’를 5년간 이끌어갈 박근혜 정부는 출범 한 달이 지나는 동안에도 대한민국의 진로를 국민에게 제시하지 못한 모습이다. 방향이 뚜렷하지 않은 국정은 난맥상으로 이어 질 수밖에 없다, 이에 국가미래연구원의 김광두 원장이 새 정부 출범 한 달을 맞은 언론 인터뷰에서 “새 정부가 무슨 가치를 추구하는지 안 보인다”고 말할 정도이다.

지금 상황은 사실 ‘국정표류’에 더 가깝다. 정부부처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국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부처는 일본 아베 내각이 미국의 동의하에 엔저(円低)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지난 몇 달간 손을 놓고 있다. 한국경제에 먹구름이 일고 있지만 오불관이다.

용산재개발 무산으로 부동산 시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는데다 건설업체의 부도상황도 심상치 않다. 그런데 정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기업, 중소기업이든 향후 정책방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며 눈치보기에 바쁘다. ‘경제안보’를 강조하던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불과 몇 달 만에 자취를 감췄다.

북핵 위기 마찬가지다. 위기시 통상 야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이 관행이나 오히려 정부조직법을 두고 ‘기싸움’을 벌였다. 게다가 국방부장관 후보자를 두고 장기간 실랑이만 벌였다. 외교안보부처도 ‘안보의 위기’를 맞아 뭔가 움직이고 있다는 시그널도 없다. 지금이 ‘위기 상황’인지 아닌지조차 의심스럽다. 지금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이 자칫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위기를 맞을까 두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국정표류 상황이 4월 이후까지 지속될 경우 박근혜 정부 또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 첫해 맞이한 위기를 고스란히 되풀이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인사난맥이 국정난맥으로까지 가는 신호가 국민들에게 전달될 경우 정치적 위기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위기는 상대진영의 반대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기반이 흔들릴 때 현실화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를 맞은 것은 자신을 절대적으로 지지한 호남민심의 이반이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촛불사태로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한 것 또한 자신을 지지한 보수층의 이반 때문이다.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 44%를 보면 야권지지층은 박 대통령에 기대감을 접고 있는 추이다. 호남과 2030세대는 지난 대선 지지율 추이로 회귀했다. 30대만 보면 두 달 전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 39%에서 이번엔 29%로 10%p 하락했다.

당장 50대 연령층과 영남 민심이 박 대통령에게서 돌아설 기미는 없어 보인다. 박 대통령의 보수 아이콘과 정부 출범 초기란 것이 감안된 탓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지난 대선에서 ‘50대의 반란’은 현실적인 이해 속에서 나온 것이다. 이해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표출될 가능성 또한 크다.

존재의 위기 속에서 50대 연령층은 자신의 위기를 박 대통령에 투영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이들을 ‘박근혜 승리’를 만들어낸 ‘작전세력’으로 지목하면서 이들의 특성을 ‘승자가 아닌 루저, 아주 철저한 루저’로 바라봤다. 즉 박근혜 정부가 이들의 경제적 절망감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갤럽 조사에서 40대 연령층의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가 두 달 전 52%에서 18%p나 떨어진 34%였다. 하락폭이 30대 연령층의 두 배로 국정지지도는 박 대통령의 대선득표율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금처럼 국정지표에 대한 방향제시가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40대의 위기감이 50대로 전이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언론환경도 여의치 않다. 지난 대선국면에서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든든한 우군 역할을 담당했던 보수언론들이 박 대통령을 다루는데 다소 날이 서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로선 지금 출범 한 달 동안 지속된 ‘인사난맥’ 상황을 정리하면서 이것이 ‘국정난맥’으로 이어지는 것을 신속히 차단해내야 하는 국면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정부 출범과 함께 정치적 위기를 맞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 ‘박근혜’에 갇힌 새누리당, 표류상태

박근혜 정부의 인사난맥과 국정공백 상황과 맞물려 새누리당도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그림자’에 갇히면서 박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정당의 정상적인 정치적 의사수렴구조마저 제 기능을 잃어버린 듯하다.

관리형 대표란 딱지가 붙었다지만 황우여 대표는 당의 얼굴임에도 누구하나 주목하지 않는다. 정부조직법 협상과정에서 황 대표가 주관하는 최고위원회의는 박 대통령의 뜻을 따르는 데 충실했다. 이에 따라 황 대표는 친박 돌격대장이란 별칭이 붙은 이한구 원내대표나 서병수 사무총장보다 존재감이 약하다.

집권여당이 무기력함은 의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했다. 정부조직법 협상이 그 예다. 간신히 3월 22일 처리가 됐다지만 사소한 이견을 조정하지 못하고 50여일을 끌며 국정공백을 가져왔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다.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 1인에 의해 주도되는 정당으로 전락하면서 정국 또한 ‘박근혜 vs 야권’으로 급속하게 재편되면서 지난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꼽혔던 ‘통합의 정치’, ‘대립과 갈등의 정치 청산’이란 과제도 내팽개쳐졌다.

새누리당이 3월 25일에서야 청와대의 잇단 인사실패를 두고 뒤늦게 청와대에 인사책임자 인책론을 들고 나왔지만 악화될 대로 악화된 국민여론 수습용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 형편이다. 황우여-이한구-서병수로 짜여진 친박 지도부의 존재 때문이라기보다는 새누리당 자체가 ‘박근혜 그늘’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여건이기 때문이다. 당내 반박, 또는 비박 의원 존재도 10여명 내외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나라당에선 친이계가 당을 주도했지만 당 내부엔 친박세력이 완강하게 존재했고 여기에 당내 쇄신파들도 자기 목소리를 냈다. 이 전 대통령은 정국 장악을 위해선 야권보다 먼저 여권 내 정치게임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당내 정치가 활발하게 이뤄졌고 이것이 한나라당 위기시 새누리당으로 리모델링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지금 친이계는 사실상 정치적으로 소멸단계로 접어든 데다 쇄신파 또한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재오 의원이나 정몽준 의원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지만 이를 받아줄 세력이 없다. 오히려 지금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의존하지 않을 경우 더 혼돈 속으로 빠져들 형국이다.

새누리당으로선 박 대통령에 의존하는 당 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구심축 형성이 시급하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다. 최소한 2014년 지방선거 과정을 거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 스스로 당을 놓을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권의 특성상 위기가 발등에 떨어지지 않는 한 현상유지를 선택할 것 또한 분명하다.

한나라당의 새누리당으로의 변화는 2011년 10월 서울시장 선거 패배가 결정타였다. 그 변화를 이끈 힘은 코앞에 닥친 19대 총선 위기감과 ‘박근혜’란 강력한 ‘미래권력’의 존재가 결합한 탓이다. 그러나 지금 새누리당으로선 변화를 지향할 동기부여도 크지 않고 이를 추동할 세력도 없다.

지금으로선 4월과 10월 재보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패한다 하더라도 ‘당청관계’ 변화를 이끌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2014년 지방선거 성적표만이 새누리당을 변화시킬 유일한 동력이 될 전망이다. 그때까지 새누리당은 당 대표나 원내대표 등 지도부의 인적 변화는 있겠지만 ‘박근혜당’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화되는 박근혜 친정체제는 당의 새로운 구심축 형성을 저해할 것이다. 이는 ‘포스트 박근혜’를 차지하기 위한 당내 차기지도자들의 경쟁이 2014년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짐을 의미한다. 그러나 ‘박근혜’ 간판을 내세울 수 없는 2016년 총선을 고려하면 촉박한 일정이다. 불과 2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새로운 당의 얼굴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여의치 않다.

그럼에도 새누리당 내부는 차기리더십 구축에 대해 ‘아직 때가 아니다’고 보고 있다. 대다수가 내년 지방선거까지는 가보자는 분위기다. 차기군으로 분류되는 정몽준, 이재오, 남경필 등 중진의원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당내 의원들의 반응은 신통찮다. ‘이명박 정부’에선 ‘박근혜’가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에선 또 다른 ‘박근혜’의 부상을 허용하지 않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에게 이명박 정부 5년은 자신의 정치력을 키워나간 원동력이었다. 이 전 대통령이 정운찬 전 총리, 정몽준 의원, 김태호 의원 등 이른바 ‘박근혜 대항마 카드’를 끊임없이 내놓았고 박 대통령은 이에 응전하면서 형성된 것이 ‘대세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당내 정치투쟁이 ‘세종시’, ‘복지’, ‘경제민주화’ 등 이명박 정부와 대립되는 가치와 정책지형의 틀로 확장시켜 나가도록 하는 촉매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것이 국민들로 하여금 박근혜 정권을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로 인식하도록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선 거론되고 차기 지도자군들이 일부 중진의원을 제외하곤 숨을 죽이는 상황이다. ‘박근혜 카리스마’가 그만큼 강력한 것이 근본이유이다. 그리고 이에 기인해 박근혜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새누리당의 존재감도 상실햇다. ‘박근혜’의 동선에 갇힌 새누리당의 고뇌가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4.24 재보궐 선거와 안철수의 도전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서울 노원병 선거를 통해 본격 자기 정치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야권재편의 출발점을 알렸다. 안 전 교수의 타깃은 당연히 민주당일 수밖에 없고 야권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민주당은 또한 이에 긴장하는 상황이다.

안 전 교수로선 당장 노원병 선거라는 관문 통과가 당면과제이고 당락에 따라 정치적 파급력 차이가 천양지차겠지만 안 전 교수나 민주당의 시선은 선거 이후에 맞춰져 있다. 안 전 교수의 의회 진출 후 펼쳐질 ‘새 정치’의 미칠 파괴력 정도와 신당창당에 모아지고 있다.

특히 국민들이나 민주당의 관심은 지금 안 전 교수가 신당 창당에 나설 것이냐를 두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민주당과의 정면승부를 의미하며 야권 헤게모니를 두고 ‘안철수 세력’과 ‘민주당’간의 혈투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2010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급속히 세력화되고 2011년 ‘안철수 현상’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세대구도’의 대표 ‘안철수 세력’과 30년 가까이 ‘지역구도’에 의지해온 ‘민주당’간의 전면전은 양 진영의 어정쩡한 분립이 아닌 한 쪽 진영이 다른 쪽 진영으로의 흡수 소멸을 강제하는 과정이기에 더 그렇다.

이는 안 전 교수가 ‘안철수 세력’만으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고 ‘민주당’ 또한 호남만으로 정권을 도모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2016년 총선 전까지 두 세력은 헤게모니를 두고 결판을 내야하며 이 토대 위에서 야권이 재편돼야만 한다.

따라서 2014년 지방선거는 양 세력의 명암을 가르는 승부처가 될 것이며 이를 좁히면 ‘호남’이 승부의 최종 귀결점이 될 것이다. 과거 여러 번 실패했던 ‘제 3신당’ 시도와 ‘안철수 신당’과의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이다.

1992년 박찬종의 신정당과 정주영의 국민당, 1997년 이인제의 국민신당, 2002년 정몽준의 국민통합21, 2007년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2009년 유시민의 국민참여당은 민주당의 심장부인 ‘호남’을 두고 승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철수 신당’은 전혀 다른 양상이다. 언론사의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신당 지지율은 20%대 중반으로 10%대의 민주당 지지율을 약 두 배 가량 앞서는 것으로 조사된다. 여기엔 호남민심이 민주당과 신당으로 양분되면서 수도권 등지로 파급되면서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양상이다.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자체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3월 18일 조사한 광주(700명)·전남(1천99명) 시·도민을 상대로 조사에서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어느 정당 후보를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광주지역 응답자들의 37.5%가 안철수 신당 후보를 35.8%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 양분됐다. 전남의 경우 42.7%는 민주당 후보를, 29.4%가 안철수 신당 후보를 찍겠다고 했지만 신당의 파괴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안철수 세력’은 ‘가치 집단’, 세력의 안정성 떨어져

안 전 교수가 수도권에 탄탄한 기반을 가진 ‘안철수 신당’을 이끌고 호남에서 민주당과 각축전을 벌일 경우 민주당으로선 숨이 막히는 상황에 직면한다. 지방선거에서 신당이 호남을 양분하고 수도권에서 우위를 점할 경우 민주당은 자연스럽게 안철수 신당 쪽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 전 교수에게도 난제는 쌓여 있다. 가장 선결적인 과제는 자신을 지지하는 ‘안철수 세력’을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유지 또는 확장해야만 한다. 지금 ‘안철수 세력’은 비민주당 성향의 야권지지층에 일부 여권지지층이 가세한 집단이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안정적인 세력이 아니다. 모였다가도 흩어지고 흩어졌다가도 모이는 유동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들은 ‘가치’를 중심에 두고 이동한다. ‘안철수 세력’은 안 전 교수의 ‘새 정치’란 가치를 보고 모인 집단이다. 안 전 교수의 ‘새 정치’가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면 언제든 흩어질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가 보여줄 ‘새 정치’의 밑그림이 불투명하거나 애매모호해도 안 되고 기존 정당문화의 답습이 돼서도 안 되지만 정당정치 현실을 외면해도 안 된다.

2011년 9월 대립과 갈등의 정치 청산을 표방했을 당시 ‘안철수 현상’에 구름처럼 몰렸던 세력이 불과 1년 뒤인 2012년 11월 단일화 국면에서 반감했다. 안 전 교수가 2012년 10월에 제시한 ‘새 정치’에 대한 밑그림에 실망한 층이 먼저 떨어져 나간 결과이다.

4.24 노원병 선거과정과 이후 정치행보에서 ‘새 정치’에 대한 큰 그림과 함께 이를 실현하는 콘텐츠도 보여줘야만 한다. 안 전 교수는 정치입문 전 ‘안철수 현상’으로 국민들과 ‘소통’하는 덴 성공했지만 막상 대선국면에선 정치비전 제시에 실패했다. 이를 극복해내는 것이 ‘안철수 세력’을 유지 또는 확장하는 열쇠이다.

지역구도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여론조사상 비민주당 지지층이 호남에까지 뿌리내린 것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이나 이를 찬찬이 뜯어보면 기득권화된 민주당에 ‘회초리’를 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에 대한 ‘회초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판단할 경우 민주당으로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민주당 쪽이 안 전 교수에게 민주당 입당을 종용하며 누누이 강조하는 대목이다. 이는 달리 ‘안철수 신당’의 ‘새 정치’가 민주당을 압도해내지 못하면 ‘안철수 세력’이 역으로 민주당에 흡수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이 경우 ‘안철수 신당’은 민주당 변화의 ‘자극제’로 운명을 다하는 게 된다.

안 전 교수로선 신당을 도모하기보다는 ‘민주당’과의 결합을 모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은 정치적 협상력 제고가 절실하기 때문에 신당에 무게를 두는 행보를 하겠지만 자신의 경쟁세력인 문재인 의원으로 대표되는 친노세력이 뒤로 물러설 경우 언제든 민주당 내 ‘안철수 우호세력’과 함께할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

안 전 교수는 비록 지난 대선국면에서 민주당 비주류세력과 상당한 교감을 가졌다. 민주당내 우호세력의 존재는 그에게 오히려 자산이다. 반면 ‘안철수 신당’을 만들 경우 ‘새 정치’에 부합되는 인사들로 면면이 구성되기보다는 기존 정치권에서 수혈될 가능성이 큰 것도 부담이다. 진열상품이 민주당에서 내놓은 인물에 못 미칠 경우 져야할 리스크가 크다.

분명한 것은 안 전 교수가 개인적으로든 ‘신당’을 통해서든 지방선거 전 민주당과 결합할 경우 그의 ‘새 정치’ 명분이 민주당을 통해 실현돼야 하며 그리고 자신이 당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식이 돼야 가능할 것이다.

■ 민주당 5.4 전대, 친노의 후퇴와 문재인

민주당 5.4 전대는 문재인 의원이 대표하는 친노가 후퇴하고 당의 얼굴로 나설 인물들이 뒤로 물러서면서 비주류의 대표격인 김한길 의원에 맞서 범주류로 분류되지만 대선책임론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이용섭, 강기정 의원 등 호남 의원들이 맞서는 구도로 흐르고 있다.

고 김근태 상임고문계의 민주평화연대(민평련)에서 누군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고 구 민주계 쪽에서도 준비를 하고 있으나 ‘대선책임론’ 때문에 주춤거리고 있다. 따라서 전대란 대형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이슈 파괴력이 떨어지면서 ‘혁신’ 이슈도 묻히고 있다. 오히려 당 밖의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전대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당권도전에 한발 가까이 다가섰다고 평가되는 김한길 의원은 지난 3월 24일 발표한 당 대표 출마선언에서 밝힌 주 내용은 ‘당원 주체의 정당 건설’, ‘안철수 세력과의 통합을 통한 야권재편’이다. 그가 말하는 당원 주체의 정당은 친노세력 견제용이라면 야권재편은 안 전 교수에 대한 러브콜이다.

김 의원은 당 혁신을 누차에 걸쳐 강조하고 있으나 지난해 1.15 전대 이후 1년간 당을 장악한 주류 쪽이 이제 패배의 책임을 지고 그만 운전대를 놓으라는 요구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민과 민주당 지지층을 묶어세우는 정치과제 제시까지 나가지 못하고 있다.

범주류 후보인 강기정 의원이나 이용섭 의원의 경우도 비슷하다. 계파주의 해체나 당의 리더십 문제, 민주당 자강론 등은 비유방식의 차이가 있을 지 몰라도 김한길 의원의 주장과 동일하다. 민주당을 위협하는 ‘안철수 신당’에 맞서 ‘민주당 자강론’을 재탕할 뿐이다.

모두 당의 대변혁을 통해 민주당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는 포부와 함께 당의 정비와 공천혁명 등 여러 다양한 과제들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과 실천가능성은 의문이다. 모두 민주당이 처한 위기의 본질을 타파하겠다고 하지만 겉도는 느낌이다.

민주당의 위기는 어느 순간 민주당은 개혁과 변화를 지향하는 젊은 세대의 지지를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부터 민주당은 386 운동권 세대를 전면에 내세워 이들을 묶어냈으나 지금 그 기능이 정지됐다. 민주당의 위기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은 ‘야권연대’의 힘을 톡톡히 업으며 승리했다. 지역기반을 가진 야권의 맏형이기에 가능했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선 무소속 박원순 시장에게 야권후보 자리를 내줬으나 2012년 당 밖의 문재인-이해찬으로 대표되는 친노세력과 시민사회세력과의 결합으로 위기를 수습해 간신히 4.11 총선과 대선을 치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여전히 민주당은 87체제의 변화를 지향하는 야권지지층을 흡수하지 못하면서 젊은 유권자들을 유혹하는 힘을 잃었다. 이에 아직 창당하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 지지율 대비 절반 수준의 정당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럼에도 당권주자들은 ‘당원주의’를 내걸며 그나마 노쇠한 당 외연확장의 중요한 보급원인 시민집단의 참여를 막았다. 친노의 시민 동원력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 탓이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위기극복 대안으로 ‘안철수 세력’을 껴안거나 호남 중심의 ‘민주당 자강론’을 내세우며 겉돌고 있다. 그 과정에서 호남 민심조차 흔들리는 상황이다.

지금 당을 수습하는 길은 광범위한 야권지지층을 묶을 수 있는 인물을 당의 간판으로 내세우는 것이 필수이나 이 길이 막혀 있다. 문재인 의원은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요구 받았다. 그나마 당의 간판 역할을 할 수 있는 차세대 지도자급인 박영선, 이인영 의원 등도 대선책임론 앞에 뒤로 물러섰다.

결국 민주당 5.4 전대가 대중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인물군들이 자취를 감춘 맥 빠진 전대로 가면서 안 전 교수의 노원병 출마와 대비되는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안 전 교수의 화려한 정계복귀는 민주당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그가 가로막고 있는 민주당의 확장통로 복원도 요원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문재인, 정당과 정치혁신 과제 두고 안철수와 경쟁 준비

지난 대선당시 당의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은 이러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에게 주어질 역할은 부산 영도구 선거지원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5.4 전대에서의 문 의원은 발이 묶여 있다. 지금 당내 현안에 대해 발언할 경우 곧바로 당내 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

또 그는 지난 대선패배 직후 꿈을 접었다고 말했다. 권력에 대한 의지를 내려놓은 모양새다. 물론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의 가능성이 있지만 안 전 교수가 지난해 출마선언 당시 돌아갈 다리를 불살랐다는 의지를 나타냈고 대선 후에도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한 것과는 대비된다. 이는 문 의원을 중심으로 한 구심력 형성을 제약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 의원은 자신이 약속한 민주당 혁신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만은 강고하다. 비주류 일각의 의원직 사퇴요구를 일축한 것은 이러한 입장의 연장선이다. 그리고 문 의원은 여러 회동에서 민주당의 혁신이 좌초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말들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그는 5.4 전대는 아닐지라도 향후 지속적으로 이 관문에 도전함으로써 자신과 친노세력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할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친노세력은 비주류의 공격에 이선에서 후퇴하면서 ‘혁신’에 대한 요구를 당내에 이정표로 남겼다. 정해구 교수가 주도한 정치혁신위원회는 친노를 대변한다는 구설 속에서도 정치혁신방안 보고서를 내놓았다.

문 의원이 다시 대권을 꿈꾸든 그렇지 않든 민주당의 혁신과 한국 정치혁신 과제를 국민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정치행위에 들어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문 의원이나 친노진영은 안 전 교수와 ‘안철수 신당’을 정치혁신의 경쟁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문-안 경쟁 2라운드’를 맞이할 태세다.

‘친노세력’와 ‘안철수 세력’의 공통점은 모두 호남에 직접 기반하지 않는 정치세력이란 점이 다. 따라서 서로 교집합을 공유하고 있다. 또 두 세력은 현행 선거제하에선 호남과 결합해야만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세력의 경쟁은 ‘민주당’ 또는 야권세력 전체의 확장성에 기여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차이라면 ‘친노’가 영남지역 특히 부산경남(PK)에 대한 진출이 전략적 목표라면 ‘안철수’는 세대지형 선점과 수도권 중도지형 확보가 큰 그림이다. 또 ‘친노’가 진보에 대한 친화력이 강하다면 ‘안철수’는 중도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 의원과 ‘친노세력’은 2012년 1.15 전대를 기점으로 비록 본류는 아니라하더라도 ‘민주당’의 한 축이 됐다는 점이다.

안철수 전 교수의 정계복귀와 ‘새 정치’ 실천, ‘안철수 신당’ 추진은 문 의원이나 친노세력에게 위협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문 의원과 친노에게는 기회이다.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간의 경쟁체제가 형성되면 문 의원과 친노가 당내에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