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사건에 총체적 비판…“핵심은 정권 유불리 아닌 법 원칙”

▲  문재인 민주당 의원. ©폴리뉴스
▲ 문재인 민주당 의원. ©폴리뉴스

대선 이후 5개월여 만이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4일 국가정보원 사건에 대한 입장을 담은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이후 문 의원은 팔로워 43만여 명이 가입된 자신의 트위터로 이를 전파했다.

해당 글은 A4 1장 분량의 짧은 글이지만 문 의원은 해당 사건을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의혹 사건’이라고 명명하며 국정원 사건에 대한 총체적인 ‘쓴소리’를 했다.

문재인 의원측에 따르면, 문 의원은 해당 글을 발표하기에 앞서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깊은 고민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기적으로 문 의원은 오는 19일 공직선거법의 공소 시효 만료를 앞두고 본인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국정원 사건을 본인 당사자 사안으로 보고 있어”

한 관계자는 <폴리뉴스>와 통화에서 “문 의원은 이 사건을 본인의 문제, 당사자의 사안으로 보고 있다”며 “‘공소시효 180일이 마무리 되는 상황에서 이 사안에 대해 회피하는 것이 맞나’는 고민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들이나 ‘조력자’들이 문재인 전 대선후보를 비방하는 댓글 등을 남기는 등 대선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상황에서,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 국민 앞에 당당하지 않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문 의원은 해당 글에서 “이 사건에 대한 정의로운 법 집행에, 정치적 피해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제가 가장 먼저 박수를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 국민의 바람”이라고 밝혔다.

더군다나 지난 3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원세훈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 영장을 청구하는 것을 막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것도 4일 성명 발표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에 대한 재정신청 가능성을 감안할 때 공소시효 열흘 전인 9일까지는 구속 영장 여부를 결론내야 한다.  

내용적으로는 문 의원이 ‘법과 원칙’의 문제와 ‘정권의 정통성’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의원측 관계자는 “문 의원은 ‘법과 원칙이 제대로 서야 정권의 정통성이나 국민의 지지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문 의원은 해당 글에서 법, 원칙, 정의 등의 키워드를 여러 번 사용하며 강조했다. 문 의원은 “이 시점에 꼭 필요한 것은 국민의 주권행사를 왜곡 시키는 그와 같은 행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 “반드시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길”, “수사기관이나 권력기관 스스로가 정의로워져야” 등이라고 썼다.

“잘못된 과거와 용기 있는 결별” MB와의 결별?

특히, 문 의원이 이번 사건에 대한 원칙적 처리를 강조하면서 ‘정권 정통성’ 문제를 거론한 점이 눈길을 끈다. 문 의원은 “대통령도 법무부도 검찰도, 잘못된 과거와 용기 있게 결별한다는 각오로 각자의 정도를 걸어야 법의 정의가 바로 선다”며 “잘못된 과거와 용기 있게 결별하는 것만이, 정권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세우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문 의원이 “잘못된 과거와의 결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풀이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결별’이다. 현재 국정원 사건 관련 사법처리 대상으로 오르는 최고 책임자로 원세훈 전 원장이 거론되고 있지만, 사실상 이번 사건의 핵심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지적이 야권에서 잇따라 제기된 바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22일 이른바 ‘박원순 제압 문건’과 관련해 원 전 원장을 고발하면서, 이 전 대통령의 연루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민주당 ‘국정원 헌정파괴 국기문란 사건 진상조사특별위원회’는 고발장에 “원세훈 전 원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점, 국정원이 대통령 직할기구라는 점, 국정원 2,3차장 인사는 대통령의 재가사항이고 육군 소장 출신이 이례적으로 3차장으로 인선된 점, 원세훈이 수시로 대통령을 독대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는 (국정원 사건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개입이 있었다고 볼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신경민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개입에 대한 심증이 있지만, 뚜렷한 입증 자료가 없어 이번 고발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면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실상 피고발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문 의원이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서 과감하게 최고 책임자를 단죄해야 한다”고 밝힌 대목의 ‘최고 책임자’를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할 경우 결과적으로 ‘MB와의 결별’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 의원측이 “이 전 대통령을 지적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신경민 “선거법 혐의 들어낼 경우, 박근혜정부 5년 고단한 내무생활”

또 문 의원이 “잘못된 과거와의 결별”을 사용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 자신을 둘러싼 문제와도 관련돼 있다. ‘정권 정통성’ 문제로 비화될 것을 우려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국정원 사건을 판단해 오던 것에서 벗어나, 원칙으로 돌아갈 것으로 주문한 것이다. 이 지적은 결국 문 의원이 박 대통령을 겨냥해 ‘원칙’ 문제를 시험대에 올린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원칙과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자신을 부각시키는 정치 행보를 보여왔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정부 당시 세종시 문제에 대해 ‘약속대로 이행’을 주장했고, 이 같은 행보가 지난 대선에서 충청권 표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국정원 사건에 대해서는 원칙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4일 대선 후보 당시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당은 구태정치를 멈춰라. 국정원 사건이 터무니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문재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선 이후 국정원의 대선여론 조작, 정치개입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침묵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이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원칙에 따른 처리를 할지 여부가 향후 박근혜정부 5년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신경민 의원은 <폴리뉴스> 통화에서 “문 의원이 ‘잘못된 과거와 용기 있게 결별하는 것만이, 정권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세우는 방법’이라고 밝힌 대목이 명문(名文)”이라며 “‘용기 있게 결단해 법적 처리를 해야 앞으로 (박근혜정부) 5년이 편안하다’고 지적한 것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박근혜정부가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불리하다며 선거법 혐의를 들어낼 경우 오히려 5년 내내 고단한 내무생활이 될 것”이라며 “정권의 정통성, 정당성을 생각한다면 법대로 처리하는 게 맞다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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