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NLL 대화록 공개로 맞불...진영 대립구도 형성

박근혜 정부는 출범 4개월 만에 이념과 진영 대립의 정치를 선택했다. 지난 대선에서 자신이 주창한 ‘대통합과 화합의 정치’ 구현이라는 정치적 구호는 대선 승리 6개월 만에 사장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국민 대통합이 아닌 ‘대결의 정치’로 정치행보의 진로를 바꾼 직접적 배경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이다. 사건의 파문이 국정원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로 이어지면서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 시비’로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이다.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이 국정원 국조를 추진하면서 박 대통령의 정통성에 대해선 시비를 걸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시민사회와 학원가 등 범야권의 대대적인 ‘국정원 불법선거 공세’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수세국면에서 빼어든 칼은 ‘전가의 보도’인 반북, 안보이데올로기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북방한계선(NLL) 발언 진위를 가리겠다며 국정원으로 하여금 총대를 메게 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6월 24일 기습적으로 공개했다. 이른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제치는 극단의 방식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공세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선택이 도모한 것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으로 야권이 집결하고 있는 흐름에 대응해 지난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을 지지한 영남과 보수세력을 묶어세우기 위한 것이다. 야권의 국정원 공세에 여권이 수세적으로 갈 경우 자칫하면 정권의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여기엔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로 정권의 위기가 발생한 데는 초기 대응 미숙 때문이라는 시각이 깔려있다. 이명박 정부가 일찌감치 진영구도 속에서 촛불에 대응했다면 위기관리가 용이했을 것이란 판단이다. 이에 현 여권은 국정원 공세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맞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 안보에 민감한 보수지지층의 결집을 도모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이를 통해 ‘야권의 국정원 공세 vs 여권의 NLL 공세’ 두 전선이 정면으로 대치하는 정국상황을 만들어 정권으로선 가장 껄끄러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자체를 교착국면 속으로 몰아넣어 보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정국의 흐름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대화록 공개에 대해 자신들이 관여하지 않았고 모든 것은 국정원의 판단 하에 이뤄졌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중대한 사안을 남재준 국정원장이 박 대통령과 상의 않고 독단으로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없다는 점에서 대치정국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청와대와 박 대통령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선택은 당장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희석시키는 데 효과를 거둘 진 몰라도 집권기간 내내 국정운영의 장애물을 스스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장차 대화록 공개에 따른 시빗거리마저 제공한 것만은 분명하다.

박 대통령은 대화록 공개를 통해 지난 대선국면에서 자신을 지지한 51.6%의 국민들의 결집에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공개된 대화록 속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실제 ‘NLL 포기’하는 발언이 없음에도 보수진영이 자신의 관성대로 맥락과 취지를 자신의 ‘이념적 감성’ 속에 녹여내 총공세를 펼치는 빌미 역할은 충분히 할 것이기 때문이다. 분단의 특수성에 기인한 반북-안보 이데올로기 정서는 보수언론을 매개로 맹위를 떨치면서 야권의 국정원 공세를 맞받아내는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전개의 귀결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48%의 국민들과 멀어지는 과정을 수반하면서 박 대통령은 여야 대치, 보수-진보 진영 대립의 한 복판에 서게 돼 향후 통합적 국정운영을 도모할 동력을 상실하는 계기점이 되는 것 자체도 피할 수 없다.

내년 지방선거 ‘정권안정론 vs 정권 심판론’ 맞서는 구도 만드는 계기점

그러면서 내년 6월 지방선거 구도는 ‘정권 안정론 vs 정권 심판론’이 팽팽히 맞서는 5:5 구도가 일찌감치 형성시켜 나갈 것이다. 대화록 공개란 극단적 카드로 박 대통령이 여권지지층 결집을 도모한 만큼 이는 역설적으로  민주당 등 야권이 대선패배 이후 떨어져나간 야권지지층을 재차 결집하도록 하는 장을 만들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치전선은 이르면 10월 재보선에서 모양새를 드러낼 가능성조차 있다. 지난 4월 재보선이 정부 출범 초기의 특성으로 인해 ‘정권 안정론’ 속에서 선거가 치러졌다면 이번 10월 재보선의 경우 ‘정권 심판론’이 고개를 들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여야 진영정치를 거부하고 있지만 야권지지층 다수가 ‘정권 심판’ 및 ‘반 박근혜 연합’에 대한 요구는 10월 재보선이 가까워질수록 증대할 가능성도 높다.

박 대통령이 당장의 국면 수습을 위해 집권 4개월 만에 보수대결집을 통한 이념대립을 선택한 데 따라 야권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공세 또한 보다 격렬하게 만들 개연성이 높다. 대화록 공개에 따른 후유증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온전히 감당해야 됨을 의미한다.

야당의 반발과 장외투쟁은 빈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새누리당으로선 민주당 주도세력이 친노무현 세력이 아니기 때문에 조기에 진화될 것이란 희망을 갖지만 김한길 대표 지도체제 자체가 확고한 야권 세력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지 못한 판단이다. 오히려 김 대표 체제로선 현재의 난국을 수습하기 위해선 대여 강경투쟁을 선도해야만 하는 입지로 내몰렸다는 점이다.

이는 국회 국정원 국정조사가 결코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으로선 대화록을 공개한 마당에 국정원 국정조사를 회피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국회 국정원 국정조사에 임하는 수위는 결코 간단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조사는 그야말로 여야 난타전으로 이어지며 정국을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할 것이다. 

이러한 여야 정국대치가 장기화되면 그 최종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돌아갈 것은 명약관화하다. 대통령은 정치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대립 정국의 장기화로 인해 박 대통령의 국정동력 또한 떨어질 개연성이 크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대통합 정치의 기치를 내려놓은 이상 재차 이를 도모한다는 것도 멋쩍을 뿐 아니라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다. 대화록 공개로 ‘대화합과 통합’이란 정치적 약속을 깬 탓이다.

박 대통령은 집권 4개월 동안 한반도 위기 정세를 겪으며 원칙적인 대북자세를 일관함으로써 지금 60%대의 높은 국정지지도를 유지하게 됐으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야권의 민심 이반으로 지금까지 보여준 전 국민적인 지지동력 확보가 더 이상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또 대화록 공개에 따른 후유증 때문에 향후 박 대통령은 지역과 이념을 초월해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기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한쪽 진영을 대표하는 이른바 ‘보수의 대통령’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단기적으로 국정원 사태로 위기를 맞은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기반 자체를 안정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향후 민생관리, 대북관계 등 국정현안 관리가 미흡해 지지층 이탈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을 맞게 되면 전임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하게 30%대의 국정지지도에서 맴돌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정원과 대화록 파문, 안철수 ‘정치공간’ 위협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쟁점이 정국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는 가운데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까지 공개하면서 진영 간 대립전선이 형성되면서 야권 진영 내부의 경쟁구도도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다.

민주당은 국정원 사건과 대화록 공개란 빅 이슈에 힘입어 대여 의회투쟁의 고리를 장악함에 따라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반면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통한 제 3신당 행보는 일단 주춤거리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4월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후 제 3신당 행보로 민주당을 압박해왔다. 안 의원은 지난 6월 19일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창립기념 심포지엄을 갖고 신당의 노선을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천명하면서 눈앞에 다가온 10월 재보선을 위한 포석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대선 이후 전개된 여론지형도 안 의원의 신당 행보를 반겼다. ‘야권 분열’, ‘진보적 자유주의’ 표방 등에 대한 민주당의 문제제기를 ‘시비걸기’ 수준으로 바라봤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6월 17~21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안철수 신당 창당 지지율은 27.3%로 민주당 14.8%에 여전히 2배가량 앞섰다. 

이러한 여론지형을 기반으로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안 의원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정책네트워크 내일’에 최장집 이사장, 장하성 교수 등 신선한 인사들을 포진시킨 것을 그 출발점으로 인식됐다.

그러면서 7월 5일 대전을 시작으로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전국을 도는 지역순회 토론회를 가지면서 ‘진보적 자유주의’ 주도권 확보와 신당 창당을 위한 본격적인 세 결집에 돌입할 계획까지 세웠다. 이는 안 의원이 지난 2011년 이른바 전국 대학가를 순회한 ‘청춘 콘서트’가 그 해 9월에 몰아닥친 ‘안철수 현상’의 밑거름이 된 것을 같은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안 의원의 행보는 국정원 사태와 대화록 공개 파문이 확산되면서 일정 제동이 걸린 것이다. 현실정치의 역동성이 안 의원의 계획된 행보에 찬 물을 끼얹은 셈이다. 신당의 동력이 되는 범야권지지층의 정치적 관심이 국정원 사태에 쏠려 있는 이상 이들의 관심을 끌어오는 데 어려움이 큰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게다가 여야가 6월 25일 국정원 국정조사에 합의함에 따라 국회가 정치무대의 중심이 되면서 안 의원 또한 의회에서의 활동을 통한 ‘존재감’을 국민에게 확인받아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여야 대치전선이 첨예한 의회정치는 127석을 보유한 민주당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안 의원이 이를 뚫기 위해선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내 지지층을 결집, 정치전선의 축을 형성해야 하나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여야가 대치전선을 형성할 때 ‘대립정치 청산’이란 요구가 힘을 발휘해 그의 ‘정치공간’을 넓힐 것이란 일부의 진단이 있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의회투쟁의 장이 펼쳐질 경우 새누리당과 집권세력에 맞서는 구심축은 민주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민주당의 정치공간과 가능성이 커지는 쪽으로 귀결되면서 안 의원의 정치공간을 좁히는 요인일 될 것이다.

의회의 장에서 안 의원은 첨예하게 펼쳐지는 현안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여야 대치상황 자체를 ‘여야 정쟁’으로 보고 원론적인 답만 반복할 경우 지지층의 이반을 감수해야 한다. 심지어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른 정치현안에 대한 ‘애매한 원론’ 전개는 오히려 역풍의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국민들은 일반적으로 일상적인 여야 대치와 정쟁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실제 국민의 정치적 의사결정을 보면 정치에서의 변화와 역동성을 더 강하게 희구한다.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겠다는 층들은 ‘여야 대립구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만 형성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안 의원이 보여준 변화와 역동성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한 탓이다.

대선 이후 6개월 동안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 것은 다름 아닌 민주당의 지지부진에 있었다. 대선 직후 민주당 지지층이 급속히 이탈하면서 현재 상당부분이 안철수 신당 지지층으로 모여든 것이다. “민주당 꼴 보기 싫다”는 야권지지층의 정서가 안철수 신당 지지율의 바탕이란 뜻이다. 즉 지금의 여야 대치전선 속에서 지금까지 보인 “여야 모두 문제 있다”는 정치적 입지 설정은 위험성까지 내포하는 상황이다.
 
민주당, 국정원과 NLL대화록 공개로 전기 맞아

반면 민주당은 대선 이후 6개월 동안의 침체에서 벗어나는 호기를 맞았다. 국정원 사태와 대화록 공개로 고전적인 여야 진영 대립의 정치지형이 복원된 데다 여야 정치투쟁의 중심지가 장외가 아닌 장내 의회로 집중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룡 야당’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으나 이제 야권의 중심축으로 다시 설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이다.

5.4 전대를 통해 김한길 지도체제가 수립됐음에도 두 달 동안 민주당의 존재감은 희미했다.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민주당은 국민적 신뢰대상이 될 수 없었다. 국민들은 김 대표를 당의 ‘간판’으로 인식하지 않았고 민주당을 ‘주인 없는 정당’ 또는 ‘127명 모두가 주인 행세하는 정당’으로 바라봤다.

이는 김 대표체제가 세력의 대표성을 가지지 못한 데 있다. 이는 호남과 친노무현이란 민주당을 구성하는 두 개의 세력 축을 담아내지 못하면서 이 두 세력이 민주당으로부터 멀어져 간 데 갔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호남에서조차 안철수 신당 지지도에 밀리는 상황까지 몰렸다. 이러한 흐름이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로까지 이어질 경우 민주당은 안철수 신당에 흡수될 처지로까지 밀릴 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당의 위기를 구한 것은 국정원 사태의 진전과 새누리당이었다. 검찰의 수사발표 이후 국정원 국정조사가 급물살을 타고 이에 위기를 느낀 새누리당이 NLL 대화록을 공개하는 악수까지 두면서 민주당이 의회투쟁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한 당사자인 문재인 의원의 존재까지 민주당에 더해졌다. 게다가 NLL 대화록 속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없었다는 점까지 확인했다. 민주당으로선 더 이상 깔 것이 없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를 향한 공세의 주도권을 행사할 일만 남긴 상황이다.

민주당이 가까이는 10월 재보선, 멀리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 주도권 경쟁에서 안철수 신당에게 밀리는 국면을 전환하는 계기점을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전개가 민주당에게 모든 것을 약속해 주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당 내부의 의사결정체계의 문제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의원이 당원 중심의 운영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시민 참여를 주장한 것은 당의 조직노선과 의사결정방식에 대한 내부의 갈등을 보여준 단면이다.

또 국정원 국정조사가 본격 진행되는 7월, 민주당이 국민의 기대수준이나 야권지지층의 정서에 부응할 정도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 하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국정원 국조가 여야간 장기간 교착국면으로 흐르면서 국민들에게 실망감만 남길 경우 .민주당은 모처럼만에 찾아온 기회를 날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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