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룰은 선거의 기본 전제 

지난달 31일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범국민 서명운동에 나선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철수, 김한길 공동대표. (사진=새정치민주연합)
▲ 지난달 31일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범국민 서명운동에 나선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철수, 김한길 공동대표. (사진=새정치민주연합)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가 공약했던 기초선거 공천폐지 문제를 둘러싼 여야 간의 공방이 그치지를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경합이 예상되는 수도권에서 정당 지지도에서는 자신들이 앞서있지만 현역 기초단체장이 야당인 지역이 많은 상태에서 정당공천을 폐지할 경우 선거에 불리하다는 계산을 하고 공천을 유지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야당은 기초단체 정당공천 폐지가 지난 대선의 공약사항이기 때문에 이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걸고 통합을 이루었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공천을 강행하더라도 무공천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상태로 6.4 지방선거가 치러진다면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전 지역에서 후보를 공천한 새누리당과 군소 야당 후보들, 그리고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무소속 후보들이 경쟁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에서 각급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가 핵심이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한 룰을 기반으로 하는 경쟁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추호도 부정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일 것이다. 

공정한 룰을 바탕으로 깨끗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결과에 대한 승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한 선거에서 두 가지 룰이 적용되어 자당 후보를 공천한 정당과 자당 후보들을 탈당시키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도록 한 정당이 경쟁할 경우 그것이 공정하다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대선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책임이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지만 이제 와서 새누리당은 정당이 공천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오히려 야당을 공격하고 있고 보수언론과 종편에서는 야당은 스스로 무공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라며 압박하는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6.4 지방선거가 룰의 문제로 기본적인 공정성과 정당성이 위협받을 상황에 놓여 있지만 대선 당시 공약을   한 당사자인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자 못하는 것 같다.       

이제라도 공약했던 대통령이 입장을 밝혀야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경환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새누리당)
▲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경환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을 중시하는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자산으로 가진 정치인이었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 경제민주화와 복지 그리고 국민통합 등에 있어 공약이 후퇴하거나 사라졌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 또한 사실이다.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20만원 기초연금을 제공하겠다는 공약이 소득이 낮은 일부 노인들에게만 지급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 당시 선거를 총괄 지휘했던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후보는 당에서 누가 써 준대로 읽었을 뿐 무슨 내용인지 몰랐다”고 말한 바 있다. 

대통령에게 돌아가는 여론의 화살을 당이 대신 맞겠다는 충정심에서 나온 말인 것 같지만 거꾸로 한 나라의 국정을 맡은 대통령을 자신이 공약한 내용이 무엇이고 그 공약을 실현하려면 재원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전혀 몰랐다면 이는 더 큰 문제라고 하지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1998년 15대 국회 재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이 된 이후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위해 사퇴하기까지 5선을 지낸 국회의원이고 그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정당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또한 당의 지지가 떨어져 위기에 처할 때마다 진두지휘하며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을 가지기도 했다. 

이런 화려한 정치경력을 가진 대통령이 지산이 공약한 기초단체 정당공천 폐지 문제에 대해서 정치권에서 논란이 거세지만 일언반구 언급이 없고 여의도 국회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고 한다. 

어제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대신 사과하는 모양새를 취했는데 그렇다면 이번에도 새누리당에서는 대통령은 내용도 모르면서 써 준대로 읽었을 뿐이라 할 것인가? 지금 SNS를 통해서는 대통령께서 지난 대선을 치르면서 기초단체 장과 의회 정당공천제의 폐해를 강조하면서 정치개혁을 위해 이를 반드시 폐지하겠다고 공약하는 연설을 담은 동영상이 광범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가 불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공약을 한 당사자인 대통령이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정치에서 한 발 벗어나 민생에 전념하겠다는 것 자체를 탓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이 공약한 사안에 대해 당시에 입장은 이런 것이고 지금은 다른 사정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현행대로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때 공약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던지 분명한 매듭을 짓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대로 6.4 지방선거가 치러져서 한 선거에 두 개의 룰이 적용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지난 대선에서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부정선거 논란에 이어 또 다른 정치적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