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들과 잘 지내는 사람에게 글 가르쳐야 조직 분열 오지 않는다”

사진=이은재 기자
▲ 사진=이은재 기자
<폴리뉴스>는 4월 9일 공자의 ‘논어’를 독특한 시각으로 재해석한 ‘좌파논어’를 출간해 화제를 모은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와 서울시 양평동 <폴리뉴스> 컨퍼런스룸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1970년대 학생운동, 1980년대 노동운동을 거쳐 1990년에는 민주노동당 정책분야에서 중책을 담당했으며 민주노동당이 분당하는 과정에서 탈당한 이후 2012년 총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경남 창원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시도했다가 좌절한 이력이 있는 주 대표는 이날 <폴리뉴스> 이명식 편집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정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주대환 대표는 인터뷰에서 사회민주주의연대는 한국적 토양에서 크게 자리잡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사회가 발전하고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보수는 자유민주주의 정당으로 자라잡고 진보는 사회민주주의의 정책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제3의 영역에 자리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현 야당이 미국의 민주당처럼 사회경제 정책에서 진보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사회에서 그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한국현대사,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의 건국에 대해서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고 동아시아에서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공자의 ‘논어’를 다시 읽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뷰 전문 2부]

- 제3 정당으로 있는 정의당이나 통합진보당 등이 사민당화 되는 것이 아니고, 야권의 큰 흐름 자체가 사민당으로 되고 사민주의를 강령이나 노선으로 채택하는 것을 말하시는 것 같다. 사회 정책 자체를 조금 더 사민주의로 가자는 것인가.

사회, 경제 정책에서 지금 우리가 하는 정도가 아니고 획기적으로 하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도 사민당이라고 본다. 미국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하는 것을 보면, 미국판 사민주의이다. 미국 토양 속에서 하는 것이다.

- 사민주의, 사민당을 얘기하면 북유럽 모델을 많이 들고, 조금 더 찾아본다면 프랑스나 독일, 영국에도 그런 흐름이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 민주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들어서고 사회경제 정책에서 그런 면이 있지만, 지금까지 미국의 공화당이나 미국 민주당이나 대외정책 등에서는 그게 그것이라고 봤다. 미국 민주당도 사민주의 정당이라고 본다는 것인가?

내가 조금 특이하다면 특이한 주장을 펼치는 셈이다. 3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미국 정치가 바뀐 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그 이후의 민주당, 루스벨트, 트루먼, 존슨 대통령 시절의 민주당은 사민당이지 그것을 보수정당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된다. 그 이후에 조금 후퇴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있었지만, 존슨 대통령에까지 이르는 기간 동안 워낙 성과가 많았다. 미국이 진짜로 중산층 국가가 됐다. 원래 미국이 중산층인데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무너졌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이 되살려낸 것이다. 

민주당이 굉장히 장기 집권을 했다. 중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잠깐 하고, 존슨 대통령까지 거의 계속 했다. 미국의 황금기를 만들어냈다. 워낙 좋다보니까 국민적 여유도 생겼고, 후퇴를 많이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후퇴 이후에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미국과 스웨덴의 차이는 무엇인가. 미국은 생각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미국의 토양 때문에 조금 다르다고 본다. 미국은 워낙 생각보다는 전통과 제도 자체가 개인주의적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비슷하다. 결코 스웨덴이나 독일식이 될 수 없다. 독일은 미국과 스웨덴의 중간쯤이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형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형 복지국가라는 것이 20~30년 후에 반드시 나올 것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 그 특이한 점은 한국은 굉장히 자립, 자조적이고 개인들이 독립적이다. 한국은 평등하고 계급이 없다. 영국은 계급사회이다. 계급간의 관계가 있다. 한국은 개인이 전부 원자화되어 있다. 193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미국 민주당이 공화당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관점이다. 미국 노동자들이 바라보는 민주당과 영국 노동자들이 바라보는 노동당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 점에서 미국 민주당은 영국노동당 플러스 자유당이라고 본다. 영국 같으면 노동당적인 요소와 자유당적인 요소가 같이 공존하는 것이다. 한국도 그런 정도가 되지 않을까 본다.

- 최근 논어를 독특한 관점에서 재해석해서 ‘좌파 논어’라는 책을 냈다. 공자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있었나.

논어는 한문으로 되어 있다. 웬만한 식자라고 해도 한자를 잘 안 쓴다. 고등학교 한자에서 거의 못 벗어나고. 신문에서 쓰는 한자를 보는 정도이다. 논어를 원문인 한문으로 본다는 것은 거의 엄두를 못 내는 일이다. 오랜 동지인 황광우 씨가 ‘논어를 한 번 해보라’고 했지만 안 하고 있었다. 지난 총선 때 권영길 씨 쪽에서 편법으로 민주당을 경유해서 야권 단일 후보로 하려 했다. 권 대표가 진보당 후보가 맘에 안 드니까 이상한 편법을 보좌관들에게 시켜서 정동영 의원을 불렀다. 제가 메신저 역할을 했다. 결국 실패하고 망신만 당했다. 참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다. 

몇 달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 있으면서 논어를 읽어봤다. 글자를 모르니까 한자 한자 찾아서 읽었다. 옛날 사람들처럼 소리를 내서 읽기도 해봤다. 그래서 심정적으로만 느껴지는 바가 소리를 내서 읽어보니까 조금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페이스북에 몇 번 소감 비슷한 것을 올렸다. 사람들이 읽고 ‘재미있다’고 했다. 직장 생활 다 하고 퇴직한 친구들은 대부분 보수적이다. 서울에서 괜찮은 학교 나와서 괜찮은 직장을 다녔던 사람들이다. 보통 임원을 하고 그만뒀는데 그 친구들이 나를 다르게 봤다. ‘자네, 언제 논어를 그렇게 공부했어’라고 했다. 이상하게 논어를 읽는다는 게, 해석한다는 게 굉장한 내공이 있어야 하는 일로 되어 있다. 

조금 더 쓰고, 페이스북에 넘버링을 해서 ‘주대환의 논어’라고 연재까지 했다. 어느 정도 했는데, 미디어스라는 인터넷신문의 젊은 한윤영 기자가 ‘연재하라’고 했다.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재편집하고 주제별로 묵어서 24편으로 매주 주말마다 연재를 했다. 6달 정도 했다. 그것을 묶어서 이번에 책으로 냈다. 

- 공자를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는 활동가로 보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규합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봤다. 당을 일정 정도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봤다. 재미있는 관점이다. 공자 시대는 춘추전국시대이니까 여러 제후들과 만나고 어떤 때에는 대접을 받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냉대를 받아서 굶주리는 과정도 있다. 주대환 대표께서 살아오시던 젊은 시절과 여러 가지로 연동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그렇게 동일시해서 해석을 했는지도 모른다. 유교가 국교였던 시절이 동아시아에 굉장히 오래 지속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이 그랬고, 동아시아 전체로 보면 중국의 한나라 때부터 거의 국교였다. 당나라 때에는 조금 달랐다. 유교가 국교라는 것은 북한에서 주체사상이 갖는 것과 같은 권위를 갖는다. 유교 경전으로서 논어는 거의 성경이라 보아야 한다. 해석을 일인독재 왕정체제에 맞춰서 했다. 해석상 왜곡이 많다고 느꼈진다. 

예를 들면, 충이라는 글자가 자주 나오지만 신하가 군주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쓰인 적인 딱 한 번뿐이다. 보통 모든 사람에게 진심을 다 해라, 친구에게도 진심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진정성을 갖고 사람을 대하라는 그런 뜻으로 쓰여진다. 군신관계로 하는 것은 딱 한 번 밖에 없다. 그것도 조건부이다. 군주가 신하를 예로서 대하면 신하는 군주를 충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효도 마찬가지다. 일방적이거나 복종하라는 뜻이 아니다. 효는 부모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즉 동아시아의 고대시대가 그 중간에 있었던 2000여년의 기간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사상의 자유가 있고, 일반 민초들은 잘 모르겠지만 사(士), 지식인들, 공자가 속했던 계급 정도만 되면 굉장히 자유로웠다. 계약 관계 비슷하게 만났다가 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논어의 말들이 국교였던 시절의 해석으로 인해 우리에게 선입견으로 많이 남아있다. 유교라고 하면 봉건시대, 전근대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고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고대에는 분위기가 굉장히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인(仁)의 개념에 대해서도 연대의 의미로 해석했다. 군자무본(君子務本)도 가까운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해석했다. 특히 이 책 내용 중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게 주위 가까운 사람들에게 잘 대하고,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감싸라고 했다. 과거 운동권을 보면 내부에서 서로의 잘못을 들춰내고 비판을 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시피 했던 시절도 있었다. 

누구는 페이스북 연재를 보고, ‘NL, 그것도 주사파, 그 중에서도 경기동부가 가장 잘하는 것인데 그 사람들이야말로 군자네’라고 했다. 그 분들도 자기들 내에서 갈등도 있는 것 같다. 갈등이 있어도 잘 조절한다. 서로 양해도 하고, 배려도 하고 이해도 한다. 그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굉장히 잘한다. 그런 소감을 누가 얘기를 했다. 공자의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서 생명력이 있었던 데에 그런 이유가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부모 형제와 잘 지내는 것이 군자’라고 강조하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 동지들과 잘 지내는 훈련이 그것에서 비롯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그런 소양을 미리부터 갖고 있는 사람이라야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글을 가르쳐도 조직의 분열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 혼자만 잘난 것이 아닌 게 된다. 

그런 것을 미리 알고 했는지, 우연히 그랬는지 모르지만, 공자의 가르침이 사회 전체에도 영향을 미쳐서 동아시아 사회가 그런대로 평화를 유지했는지 모르겠지만, 직접적으로는 공자당을 만드는 것에는 효과가 확실하게 발휘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제자백가들의 경쟁에서, 여러 다양한 주장과 사상들이 있었지만 최후의 승자는 유가가 되었다. 다른 분파의 정책적 주장을 다 받아들이면서 승자의 위치를 누렸다. 정책적 주장이 조금 다른 것은 다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유가는 본래 배우는 것을 강조했다. 항상 배움을 강조했기 때문에 스폰지처럼 다른 주장들을 받아들인다. 조직생활 잘하는 사람들, 경기동부 같은 경우는 학습은 잘 안 한다. 군자들인데 공부에 게으른 군자들이다. 조직생활을 잘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니까 유가의 강점이 있었지 않나 싶다. 

- 이번에 논어를 하신 것을 바탕으로 삼아서 고전 쪽으로 조금 더 들어갈 생각이 있는지 궁금하다. 맹자도 내용이 재미가 있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공자보다는 맹자에 재미있는 말이 더 많다고도 한다. 그런 계획은 없는지.

할 일이 없고, 심심하면 할 것이다. 요즘 하고 있는 작업은 한국 현대사를 하고 있다. 현대사 공부가 조금 바쁘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건국 전후인 45년대부터가 현대사이다. 공부의 목적은 박정희는 친일파인가, 이런 당연한 질문을 다시 던져보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꺼내는 것 자체를 굉장히 위험시 한다. ‘그런 질문을 던지다니 당신은 제정신이야’라고 했다. 설사 그것이 의미가 있을지라도, ‘지금 그것을 왜 하나, 박근혜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냐’는 말도 듣는다. 

사실 ‘박정희는 친일파인가’라는 질문을 두고 토론회를 하고 싶었다. 내 맘은 그렇다. ‘박근혜가 집권하고 있으니까 나중에 하라’고 누군가 그랬다. ‘오해도 받고 그래야 노이즈 마케팅이 돼서 사람들이 오지,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도 몇 번 토론회를 해도 신문에 안 나간다, 섹시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한국사 전공자 누구에게 그 질문을 던졌다. 그 친구도 광징히 고민스럽다고 했다. 

반민특위 시절에 규정된 처벌 대상자로서의 친일파가 있다. 반민족행위 특별법에 규정된 것이 있다. 박정희가 그것에 해당되는 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된 것이 없다. 사람이 어떤 시각을 갖고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해방 당시 박정희는 엘리트 청년, 야심이 많은 청년인데 27살인가 그랬다. 조금 노력해서 출세도 할 뻔한 사람이었다. 졸업한지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어떤 행위이든지 크게 행위를 한 것이 별로 없었다. 남로당에서도 군부 내에서 엘리트를 영입해야 하기 때문에 선발한 것이다. 엘리트가 있어야 조직을 구축할 수 있고 박상희의 동생이니까 눈에 띤 것이다. 그때 남로당 군사부장이 이재목이라는 군목인데, 그 분이 박상희 친구이니까 특별히 박정희를 스카우트한 것이다. 해방 당시에 친일파라고 하면 자작, 남작 등 작위를 받아서 60, 70살이 돼서 호의호식를 하고 나쁜 짓을 오랫동안 한 사람들이 많았다. 친일파라는 개념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박정희는 그들에 비해 어린 애들이라서 아무것도 아니다. 

얼마 전에 ‘윤길중 선생은 친일파야, 친일파 맞아’라고 했다. 윤길중 선생도 친일파 목록에 올랐다. 일제시대 고시에 합격해서 군수를 했다. 일제시대에 군수까지 했으면 고위직이다. 조선인이 일본 치하에서 군수를 했으면 친일파가 아니고 무엇인가. 윤길중 선생은 친일파라고 했지만 당시 나이가 27살인지 28살인지 박정희와 비슷했다. 약관 24살인가, 23살에 군수가 됐고, 해방 후에는 유진오가 불러서 헌법 기초위원을 했다. 엘리트 청년 정도로 생각했다. 친일파가 전혀 아니었다. 

- 일제 시대에 군수를 지냈던 홍익대의 이항녕 교수는 나중에 자신이 친일을 했다고 고백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분은 스스로 ‘나는 친일파였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 정신병이 종북 프레임과 비슷하다. 딱 종북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아닌 사람이 없다. 거의 종북이다. 대부분 한국 보수들이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김대중 전 대통령도 종북이라고 한다. 

- 가장 오래 시달렸던 정치인이다.

대통령까지 했으니까 조금 그렇지만, 이쪽 사람들은 박정희가 친일파라고 아주 대놓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종북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하면서 우리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굉장히 확신을 한다. ‘독립군 잡으러 다니는 사람이 친일파 아니면 누가 친일파인가’라고 한다. 혈서도 썼다고 한다. 

- 해방 후 활동했던 선배 정치인들 중에서 죽산 선생, 몽양 여운형 두 분을 말씀하셨던 것을 봤다. 아까 말씀하셨던 사회민주주의 전통 내지 줄기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평가가 다를 수도 있지만, 몽양은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가셨고, 죽산도 상당한 대중적 인기가 있었지만 결국 이승만 대통령에게 당했다. 우리 정치 현실과 비춰서 이제는 사회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는 토양의 변화가 됐다고 보나.

통일 이후를 대비해서 백범이나 몽양 선생에 대해서는 평가를 유보해야 하겠지만, 죽산은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 중 한 분이다. 근현대사 공부를 하는 이유도 대한민국 건국에 대해서 다시 보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DNA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긍정적인 DNA를 찾아내서 되살려내야 한다. 대한민국의 좋은 점들이 분명히 있었는데 무너졌다. 다른 조건들에 의해서 퇴색됐기 때문에 되살려내야 한다. 

죽산의 경우에는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변절자라고 했다. 공산당으로부터의 변절이야 당연히 그랬지만, 왜 욕을 먹었냐 하면 제헌국회 선거에 참여를 했다. 신익희 선생 같은 경우에도 한독당 임정계열로부터 이탈해서 참여를 했다. 공교롭게도 둘 다 변절자이고 왕따인데 국회의장도 하고, 나이가 20살 정도 차이 났는데 나란히 이승만 대통령에게 대통령 후보로 도전자가 된다. 이 두 사람이 대한민국 건국에 적극 참여를 했다. 김성수 선생이 뒤에서 백그라운드 역할을 하면서 조직에 돈을 댔다. 유진오 선생도 김성수 계열이라고 볼 수 있다. 김성수, 신익희, 조봉암 같은 사람들 입장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알고 싶다. 백범의 눈으로 바라보면 완전히 다르겠지만 그 분들은 나름 주어진 조건 속에서,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 고심을 했고, 만들었다. 

- 죽산은 초대 내각의 농림부 장관을 지냈고 농지개혁에도 상당히 역할을 했다. 

그 당시 시점에 일류를 만들었다. 농지개혁은 기적과도 같다. 국제 정세에서 유리한 점을 잘 살렸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미군정에서 이것은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해서 했다. 인류 역사에서 사회혁명이  일어나서 토지개혁을 하지만 보통 그 효과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토지개혁은 그 어느 토지개혁보다 사실 성공적이었다. 농민이 다 자유농이 됐다. 그 자유농들이 밤낮 없이 일해서 자식들 교육시키고 해서 기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것을 다시 봐야 한다. 

제가 쓰는 표현에 따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약간 사생아 비슷한 것이다. 사생아인데 훌륭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 공자도 사생아였다. 사생아라고 해서 미군정이 강간하고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이상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맞다. 건국의 과정이 그렇게 떳떳하지 못하고 독립운동 세력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겨우 건국했고 바로 분단으로 이어졌다. 사생아로 태어났다고 해서 훌륭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대한민국은 사생아이지만 훌륭한 DNA를 갖고 태어났다. 

주로 보수에서 지금 발전에 대해 박정희의 리더십이나 정주영과 이병철 등 기업가의 활약을 말한다. 그것보다 훨씬 깊은 최초의 뿌리가 있는데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보고 설명을 해야 한다. 이것이 내 생각이다. 조봉암도 그 속에서 자기의 족적을 남겼으니까 굉장한 행운아다. 언젠가는 재평가가 될 것이라고 본다. 신익희, 조봉암 등이 자기 동지들을 떠나서 변절자가 돼서 정권에 참여했을 때 그 사람들의 판단과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이 사람들이야말로 정확하게 읽은 것일 수도 있다. 

- DJ도 백범이 건국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전략적으로 잘못한 것이라고 강조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결국 우리나라에 더 좋은 정치가 형성되거나 발전하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 그런 식의 방법을 취하는 것은 정치인으로 자격이 부족한 것이라고 했다.

DJ는 그 시절을 겪으면서 다 보았을 것이다. 

- 긴 시간 말씀해주셔서 고맙다. 주대환 대표께서 말씀해주신 한국 현대사에 대한 긍정적인 유전자를 재발견하는 것이나, 공자에 대한 재해석, 한국의 진보세력이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사회경제 정책으로 변화, 발전하는 것이 이뤄지기를 같이 소망한다. 

기회를 주셔서 고맙다. 한국이 사회민주주의가 필요한 발전 단계에 왔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발전한 단계에 왔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사회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사회민주주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것이 외래사상이라서 우리 사회에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니까, 대한민국 건국 과정의 제헌헌법이나 농지개혁 등 그 역사 속에서부터 있더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도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 뿌리는 한국 토양에 맞는 것을 찾아서 단감 등을 접을 붙이는 것이니까 원래 있던 나무의 뿌리를 찾아서 하면 속성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 현대사 공부를 다시 하고 공자의 ‘논어’를 다시 읽는 것도 그 일환이라고 보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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