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복귀, ‘고립된 북한’에게는 호기(好機)

출처 청와대
▲ 출처 청와대
북한 국방위원회가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드레스덴 제안을 거부했다. 북한의 최고실력자 김정은이 제1위원장으로 있는 국방위원회가 실질적인 최고의사결정기구이기에 박 대통령이 북한에 제의한 민간교류와 경제협력 확대를 담은 ‘드레스덴 3대 제안’의 효력은 상실했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지난 1일 자신의 관영매체를 통해 박 대통령 실명을 동원한 드레스덴 제안 비방으로 일찌감치 예견돼 왔던 것이다. 다만 올 1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중대제안을 통해 남북한 간의 관계개선 의지를 내보인 만큼 이번 달 한미군사훈련 등이 마무리되는 시점을 맞아 형식적인 남북대화에라도 나설 가능성에 주목했으나 ‘역시나’로 귀결됐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북한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제안’ 불과 이틀 후인 지난달 30일 “다양한 형태의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초강수의 ‘카드’까지 내민 상황이다. 북 국방위가 ‘드레스덴 제안’ 거부에 앞서 지난 11일 국방위 정책국은 담화를 통해 “미국의 날강도적인 이중기준에 따른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는 한 그것을 끝장내기 위한 자위적인 대응조치들을 계획한 대로 밀고 나가게 될 것”이라며 ‘4차 핵실험’을 은연 중 시사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서서히 무르익고 있는 ‘6자회담’ 재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과 한국이 지금까지의 북한의 선행적이고 진정성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완화하면서 북한이 그간 주장해온 ‘무조건적인 6자회담 재개’와 절충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진입한 것과 맞물린다.

이는 6자회담에 재개에 대비해 자신의 ‘핵카드’의 칼날을 벼리는 수순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을 ‘체제 안전보장’의 ‘절대반지’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이에 상응한 조치가 나오지 않는 한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6자회담 참가국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신들의 ‘핵과 경제 병진노선’이 결코 ‘헛말’이 아니라는 뜻을 담은 것이다.

즉 6자회담 재개 분위기에 맞춰 북한은 자신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핵’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안전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제도적 장치는 북미-북일 수교와 한반도 정전체제 폐기와 평화협정 체결에 맞춘 것이다.

즉 한반도에서 정치군사적인 대결구조가 지속하는 한 남북한의 ‘교류협력 확대’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이에 북 국방위는 드레스덴 제안을 “나라와 민족의 이익은 덮어두고 몇 푼 값도 안 되는 자기의 몸값을 올려보려고 줴친(떠든) 반통일 넋두리”라며 “북남관계 개선과 발전과는 거리가 먼 부차적이고 사말사적인(자질구레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 뿐”이라고 폄하했다.

그러면서 “‘상봉’이나 ‘지원’에 따른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이 북남관계 개선의 선차적인 고리가 아니다”며 “7·4 북남공동성명으로부터 시작하여 북남기본합의서,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과 그 실천 강령인 10·4 선언에 이르기까지 북남관계 개선을 위해 내세운 최우선적인 과제는 언제나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의 해소”라고 주장한 것이다.

1991년 이후 한반도정세지형은 ‘고립된 북한’

이러한 북한의 태도와 입장은 1차 핵위기가 발생한 지난 1994년 이후 20년간 남북한 대화나 과거의 6자회담장에서 줄기차고 일관되게 펼친 논리였다. 따라서 이번 북한의 태도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의 6자회담 재개 흐름과 ‘4차 핵실험’ 위협을 보면 과거와는 분명 다른 변화가 내재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동북아 신냉전구도’가 새롭게 싹트고 있는 것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즉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23년간 지속됐던 한반도 정세지형은 종착점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정세지형이 펼쳐지려는 소용돌이 속에 있다. 북한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려는 기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1991년 소련의 해체와 미국 일극체제의 등장은 사회주의진영 국가였던 ‘북한’을 ‘고립된 섬’으로 만든 사건이었다. 위기에 빠진 북한이 핵개발을 전면화한 것도 바로 이 시점이고 한반도에서 한국이 대북 주도권을 행사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햇볕정책 vs 압박정책’ 간의 갈등구도는 사실상 ‘고립된 북한’을 어떻게 ‘요리’할 것이냐는 방법론적 대립이었다.

‘고립된 북한’은 20여년 간 한반도정세 지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한국은 지난 20년간 북한에게 제안한 고정 레파토리는 다름 아닌 “고립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에 있었다. 그처럼 급작스럽게 닥친 국제적 고립으로 북한은 곧바로 에너지 위기를 맞았고 이는 생산력의 약화로 이어졌고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

당시 러시아는 내정의 위기 때문에 자기 앞가림조차 하기 어려운 여건이었고 중국은 미국 주도의 세계무역시스템에 편입해 새로운 대미 편향의 생존전략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고난의 행군’은 중국-러시아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하는 고립된 북한이 겪어야 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1997년 국가부도 위기 당시 한국 국민이 가진 최대 불안은 ‘교역’이 끊기는 사태였다. 북한은 1991년에 이러한 상황을 맞이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한반도 귀환, 북한에게는 호기(好機)

그러나 이러한 한반도 정세지형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른바 ‘G2’로 떠오른 중국의 부상이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점차 개선된 것도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도 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북한이 중국과의 교역량을 점차 늘이면서 경제사정도 최악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눈치를 덜 보는 만큼 북한에게는 ‘고립무원’의 상황이 한발씩 개선되는 흐름이 태동했던 것이다.

그리고 2012년 중국의 시진핑 체제가 수립되면서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인 상호의존성은 인정하면서도 군사적인 대립구도는 강화됐다. 미국은 아태 재균형 전략이란 이름으로 동북아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높이는 집단자위권을 인정하면서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중일간의 갈등을 고조시키면서 필연적으로 북중간의 전략적 관계를 강화시키는 반작용을 낳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북한 핵에 대해 대해서만큼은 양보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해 온 것은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 그리고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전략의 명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일의 군사적 동맹의 강도가 강해지면 질수록 중국은 북한과의 동맹관계 유지강화는 불가피한 현실이다.

여기에 러시아의 팽창주의적 외교노선도 동북아 정세를 뒤흔들 변수로 등장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인 러시아의 대외정책이 한반도로 이동하는 것은 시간문제로만 남아 있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한반도정세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또 그 존재감 또한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크게 낮았다.

그러나 이번에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러시아는 새로운 태도와 입장으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러시아가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그 첫 단추로 북한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과의 문제는 있지만 한-미-일 동맹관계를 1차 경계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선 20여년 전의 냉전체제 당시의 후원국을 다시 얻는 과정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은 20여년간 지속된 ‘고립된 북한’이라는 한반도 정세지형의 판도를 바꾸는 쪽으로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주도해온 한반도정세가 점차 중-러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쪽으로 가는 이른바 ‘동북아 신냉전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최근 강경행보는 이러한 정세지형의 변화에 맞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담은 것이다. 그야말로 호기(好機)를 맞은 것이다. 반면 이러한 흐름은 ‘고립된 북한’이란 정세지형 속에서 남북한 관계를 주도해온 기존의 한국의 역할이 축소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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