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대전환 없다면 재앙은 반복된다

박근혜 대통령. ©YTN
▲ 박근혜 대통령. ©YTN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 백번을 양보해서 사고야 불가항력이었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대응만 제대로 했더라면 이렇게 많은 생명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환한 아침 시간에 2시간 넘게 떠있던 배가 어린 생명들을 가둔채 구조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대로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선장이 배에서 탈출하라는 말만 제대로 전달했던들, 군경구조대라도 신속하게 배안에 있는 승객들에 대한 탈출 유도와 구조에 나섰던들 이렇게 많은 생명이 바다 속에 잠겨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외신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를 가리켜 이해할 수 없는 후진국형 사고라고 보도하고 있다. ‘인재’(人災)라는 그 흔한 말로는 이 참사의 충격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 살아 돌아올 수 있는 아이들을 그대로 수장을 시켜버린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세월호 참사에는 우리 사회의 그늘들이 응축되어 있다. 나 하나 살겠다고 수백명의 어린 생명들을 배안에 가둬두고 달아난 선장과 선원들의 모습은 극단적 개인주의로 삶을 영위하여 책임윤리가 마비된 군상을 상징한다. 노후된 배를 개조하여 기본적으로 안전성이 의심되는 배를 운항했던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했던 잘못된 규제완화는 생명에 대한 경시를 그대로 드러냈다.

혼자서 달아난 선장 이상으로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은 정부의 무능이었다. 사고 직후 초동대처의 실패로부터 내내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던 정부. 잇따른 실수와 혼선, 그리고 거짓말의 가운데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국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재난으로부터의 안전을 구현할 시스템 보다는 대통령의 의중이나 지시에 맞추어 상황은 전개되었다. 그러면서 세월호는 가라앉았던 것이고 아이들은 아직까지 한 명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어디 세월호만 침몰한 것이겠는가. 함께 침몰하고 있는 대한민국호에는 우리가 타고 있다. 이미 배가 기울기 시작한지 오래이다. 다만 국민행복이니 선진한국이니 하는 신기루같은 언설들로 인해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이대로 배와 함께 모두 가라앉지 않으려면 구명정을 펴야한다. 그런데 우리가 타야할 구명정도 쇠사슬에 묶여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바로 다음 날, 고리원전 1호기의 발전이 재개되었다. 이미 지난 2007년으로 30년간의 설계수명이 끝났음에도 연장운영에 들어간 것인데 계획예방정비를 마치고 재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그 수명연장을 둘러싼 우려는 그치지 않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농성 움막 철거가 다음 달로 예정되어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와중이라 그나마 다음 달로 미뤄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뒷전으로 밀어넣은 정책들이 위세를 떨치는 이런 사회에서 과연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구조작업이 끝나고 나면 정부와 정치인들은 수많은 안전대책들을 쏟아낼 것이다. 재난대책기구도 정비하고 시스템도 마련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매뉴얼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가치가 바뀌지 않는한 사후약방문식의 수많은 대책들이 결국에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생생히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삶의 위기에 내몰렸을 때 국가는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이것이 이번에 우리가 확인한 슬픈 현실이다. 그게 어디 바다 위에서만의 일인가. 안전을 위협하는 각종 정책 앞에서,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고단하기만한 생활에서, 우리의 삶은 갈수록 불안하기만 하다. 걸핏하면 전쟁을 하면 이긴다는 남북 당국자들의 호언장담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는 무모한 모습일 뿐이다. 이 사회를 덮고 있는 가치, 위정자들에 머리에 담겨있는 가치의 전환이 없다면 또 다른 재앙은 언제 반복될지 모른다. 

어찌할 것인가. 국가도 정치도 우리를 구조해주지 못하고 구명정을 펴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손으로 쇠사슬을 끊고 구명정을 펴는 수밖에. 누구를 믿겠는가. 우리가 힘을 모아 우리의 아들 딸들을 지켜야지. 그리고 나를 지켜야지. 우리가 슬픔을 딛고 각오를 다져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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