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두끼 먹어도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로 숨진 채 발견된 단원고 2학년 9반 담임교사 최혜정씨의 당숙 최형규씨가 국민들과 정치권에 울림을 주는 편지를 써 주목되고 있다.

22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최형규씨는 전날 경향신문에 보낸 편지에서 "세월호 침몰사고가 정리되면 1999년 씨랜드 화재사건으로 아들을 잃고 대한민국이 싫어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난 가족처럼 제2의 김순덕씨 가족이 나오진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며 "이제 우리는 하루 세 끼 먹는 나라보단 하루 두 끼를 먹어도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밝혔다.

최씨는 편지를 쓴 이유에 대해 "첫째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멀리 장례식장까지 조문을 오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서"이며 "둘째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정치권에 강력하게 호소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특히, 최씨는 정치권에 "조문 중 어느 정치인에게 말했던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라는 혜정이 아버지인 형님 말이 귀에 울린다"며 "말로만 안전! 안전! 일만 터지면 사후 약방문-땜질식 처방만 하지 말고 근본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하여 주길 관계당국에 강력히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해 3월 영어교사로 임용된 최혜정씨는 세월호 침몰당시 SNS로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이 나갈게"라는 글을 올리고, 10여 명의 학생을 구출한 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현재 트위터 등 인터넷에서는 "모두가 외면한 세월호 현장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킨 5명의 의인들…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그대들을 기억합니다. 박지영 승무원, 정차웅 군, 남윤철/최혜정 교사, 양대홍 사무장"이라는 트윗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

현재 정치권은 실종자 구조작업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대책 마련을 위한 준비에 착수한 상황이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문병호 의원은 지난 21일 <폴리뉴스>와 인터뷰에서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이번 사고는 대대적인 내각 총사퇴까지 거론할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가운영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을 촉구했다.

문 의원은 ‘안 공동대표가 어떤 대책을 고민 중’인지 묻는 질문에 “안전에 관한 것을 국가기본적 의제이자 국민 기본권의 하나로 승격시키는 국가운영의 전면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안철수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의 생각”이라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관련 기사<문병호①“세월호 정부대처에 통탄…안철수, ‘국가운영 전면변화’ 고민중”>)

다음은 최씨의 편지 전문이다.

혜정이를 보내며….

아침 식사를 하는데 눈물샘이 와르르 터지고 말았다. 하루 전 혜정이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에 쓰러진 후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한 아침 식사 자리에서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로 숨진 혜정이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내에서도 보물 같은 존재였다. 혜정이의 당숙인 나는 혜정이가 어려서부터 성장해 온 과정을 지켜보면서 유달리 남다른 면이 있음을 한두 번 실감한 게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무척 책임감이 강했던 혜정이는 중학생시절 학교에 다니면서도 직장생활로 밤늦게 귀가하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동생들을 돌보고 가르쳤던 아이다. 지난 명절 때 차례상을 차리던 혜정이에게 “어휴, 혜정이 맏며느리감이네”하고 던진 나의 농담에 “차례상 차리는 법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라고 답했던 조카였다. 그런 혜정이를 어제 보냈다. 당숙인 나의 마음이 이럴진대 부모인 형님 형수님의 마음은 어떨까?

오늘 내가 편지를 쓰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멀리 장례식장까지 조문을 오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서이다. 둘째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정치권에 강력하게 호소하기 위해서이다.

지난 3일간 나는 경황이 없는 형님을 대신하여 조문을 받았다. 장례식 결정에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가족회의 결과 가족장으로 결정했다. 우리 가족은 애당초부터 하루빨리 혜정이를 편하게 보내고 가족들도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부고를 낸 것도 아니었는데 너무나 많은 조문객이 다녀가셨다. 조촐하게 치르려고 했던 장례가 커지고 말았다. 유가족들 관계자는 물론이거니와 관계도 없는 많은 분들이 장례식장을 찾아오셨다. 출퇴근 길에 지나가는 장례식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들르셨다는 직장인분들, 장례식장 주위에 사신다면서 손녀 같아 들르셨다는 할머님들, 같은 동료 같아 오셨다는 수많은 선생님들, 같은 동네에 사신다고 오셨던 동네분들.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장례식장을 방문하여 진심어린 위로의 말을 전해주었던 그분들이 정말 고맙다. 그분들에게 딱히 고마움을 표할 길이 없어 막상 펜을 들었지만 아직도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계시는 실종자 가족분들을 생각하면서 여러번 망설였지만 염치없게도 편지를 쓴다.

이틀간의 조문기간 중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조문을 다녀갔다. 직책만 대면 알 정도로 사회 저명인사들이다. 어떻게 그렇게 지체 높은 분들이 바쁜 와중에 소시민이었던 우리 조카 장례식장에 왔을까 하는 의구심이 지금도 든다. 대부분이 위로의 말씀과 함께 앞으로는 이런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이번엔 확실하게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처음 한두 분의 말씀에는 공감이 가고 고맙게 느껴졌다. 이번 참사로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나라로 탈바꿈된다면 나의 조카 혜정이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슬픔도 잠시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연이어 조문 오신 분들의 말씀이 천편일률적이고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생색내기 조문인 것 같아 불쾌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조문 중 어느 정치인에게 말했던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라는 혜정이 아버지인 형님 말이 귀에 울린다. 말로만 안전! 안전! 일만 터지면 사후 약방문-땜질식 처방만 하지 말고 근본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하여 주길 관계당국에 강력히 호소한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가 정리되면 1999년 씨랜드 화재사건으로 아들을 잃고 대한민국이 싫어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난 가족처럼 제2의 김순덕씨 가족이 나오진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이제 우리는 하루 세 끼 먹는 나라보단 하루 두 끼를 먹어도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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