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라는 히든카드를 사용해야

한중 정상회담으로 동북아는 각자도생의 형세를 더욱 강화시켰다. 한일과 북중이라는 전통적 구도가 조금씩 흐트러지고 있음을 모두 지적하고 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고차방정식의 복잡한 외교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영원히 적일 것 같던 북한과 일본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는 것에 더하여 이번 한중정상회담은 한미일 삼각동맹하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꺼릴 수밖에 없는 한국이 더욱 더 중국으로 가까이 다가선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북일 관계 개선과 한중 관계 심화라는 최근의 외교적 사건이야말로 각자도생의 동북아 구도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례임이 분명하다.

   동북아의 각자도생 외교는 각국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을 증대시키고 외교적 입지를 확장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카드를 사용하게 한다.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아시아 회귀정책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미일 동맹 강화라는 고유한 카드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를 묵인하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은 일본과의 협력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재균형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전통적인 중러 협력을 더욱 심화시키는 한편 한미일 삼각협력을 막기 위해 북중 관계를 상대적으로 멀리하고 한중 관계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시진핑이 중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도 그 이유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있는 조건에서 중국과의 정치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최근에 북한과의 정치경제적 협력을 집중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외교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일본도 비장의 카드인 북일교섭을 성공시킴으로써 한중에게 공격당하고 있던 외교적 고립을 일시에 반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지지부진해지자 특유의 외교적 돌파력으로 일본과 극적 합의를 도출하는 한편 러시아와 부쩍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동북아 각국이 자신의 국가이익과 외교적 영향력을 위해 각자의 독자적 카드를 열심히 활용하고 있다.

  각자도생의 동북아에서 남북관계는 사실 한국이 갖고 있는 가장 우월한 외교적 카드이다.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우리가 대북 지렛대를 확보하게 되면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에서 우리의 발언권과 영향력을 그만큼 커진다. 반대로 남북관계가 중단되고 갈등을 지속하면 미국을 만나고 중국과 회담해도 우리는 그들에게 북한 소식을 전해 듣고 그들에게 북한에 영향을 미쳐달라고 요구하는 처지가 된다.

  실제로 과거 사례에서도 한국이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 경우 한반도 문제와 동북아 정세에서 그만큼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 2005년 장기간 교착된 6자회담을 재개시키고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 결국 북핵 해결을 위한 9.19 공동성명을 합의해낼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그해 6월 통일부 장관이 방북해서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만나 합의를 도출했던 이른바 ‘6.17 면담’이었다. 우리의 주도적 노력으로 대북특사를 방북시키고 결국 남북관계라는 지렛대를 통해 북한을 6자회담장을 이끌어 왔고 그 결과 2005년 9월 4차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채택될 수 있었다.

  2000년 10월 조명록 특사가 워싱턴을 방문해서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북미 공동코뮤니케를 발표하고 곧이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을 하면서 한국전쟁 이후 북미관계가 가장 극적으로 진전되었던 당시 2000년 말의 한반도 역시 그 원동력을 바로 그해 6월에 성사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었다. 6.15 공동선언 채택과 이후 진행된 남북관계의 개선이 결국 한반도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확대시켰고 결국은 북미관계의 극적 진전으로까지 나아가게 한 셈이다.

 남북관계야말로 한국이 동북아에서 자신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고 대외정책에서 발언권을 확대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이다. 경험적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라는 우리의 카드를 아직 쓰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남북관계는 더욱 험악해지고 있다. 금년 들어 어렵사리 조성되었던 남북의 우호적 관계는 2월의 이산가족 상봉 이후 악화일로를 겪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을 북이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서해 포사격과 대응 사격 등 한반도의 긴장이 지속되면서 지금 남북관계는 적대와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도 박근혜 정부를 맹비난하면서 대결 기조를 강화하고 있고 한국도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면서 원칙적인 강경 정책을 계속하고 있다.

  남북이 대결정책의 지속으로 관계가 악화되고 교류협력과 경협 등이 봉쇄되어 있는 조건에선 당연히 우리의 외교적 입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남북의 강경과 대결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북일 교섭은 더더욱 한국의 외교력을 위축시킬 게 분명하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고 개선됨으로써 한국의 대북 지렛대가 확보되고 결국 한반도에서 외교적 영향력을 늘릴 수 있음에도 작금의 현실은 정반대의 대결정책으로 동북아에서 한국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남북관계의 복원이야말로 각자도생의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이 외교적 입지를 확보하고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금년 초만 해도 남북은 각자 관계 개선의 의지를 표명했다. 북한은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적극적 의지를 밝혔고 박근혜 대통령도 신년기자회견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면서 관계 개선에 호응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되었지만 이후 한미합동훈련은 지속되었고 북은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언사로 화답했다. 남북관계는 순식간에 경색되었고 남은 6.15 남북공동행사를 불허하고 북은 개성공단 공동위원회 회담에도 무응답으로 거부했다.

  남북관계 개선은 남이나 북이나 원칙적으로는 공히 동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에서 인도적 문제 해결과 민생 인프라 등 경제협력 강화 및 민족 동질성회복을 위한 교류 확대 등을 제안했다. 경제적 협력과 사회문화적 교류 확대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결국은 공동체 건설을 통해 평화통일을 이루겠다는 이른바 기능주의적 접근을 재확인하고 공식화했다. 과거 남북관계가 순항했을 때를 감안한다면 경협과 사회문화적 교류는 남북이 함께할 수 있는 유용한 접근방법이었다. 지금이라도 남과 북이 상호 신뢰를 가지고 합의한다면 얼마든지 관계 개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북한의 싸늘한 거부와 비난이었다.

  북한 역시 지속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제안을 해왔다. 남북의 고위급 접촉을 제안해서 성사시켰고 한미훈련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시켰다. 특히 북은 1.16일 국방위 중대제안에 이어 6.30 국방위 특별제안을 통해 정치군사 이슈에 대한 남북대화를 제의했다. 상호 비방중상 중단과 서해상 군사적 충돌 방지 그리고 핵재난을 막기위한 조치 등을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우리 정부는 위장평화공세로 간주하고 즉각 거부했고 북은 국방위 중대제안을 수용할 것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요구했다. 사실 남북관계 경색은 북의 중대제안을 우리 정부가 거부하면서부터 가속화되었다.

  동북아 정세에서 우리의 외교적 영향력과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이 절실하다면 지금이라도 서둘러 관계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 현실적 방도는 남북이 한 발 짝씩 양보하면서 상호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즉 북한은 박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이 밝히고 있는 기능주의적 접근으로서 사회경제적 교류협력을 받아들이고, 마찬가지로 남측은 북의 국방위 중대제안을 전향적으로 수용하면 된다. 상호 신뢰가 조성된다면 북이 드레스덴 구상을 못받을 리 없고 또한 우리 정부도 중대제안을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북은 경제협력과 사회문화적 교류를 통해 얼마든지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중대제안의 의제들 즉 정치적 비방중단과 서해 군사적 충돌방지는 사실 우리가 먼저 북에 요구해서 얻어내야 할 것들이다. 핵재난 문제 역시 남북이 핵문제를 의제로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전향적으로 수정제의할 수도 있었다. 일단 북의 제안을 수용하면서 회담을 시작하고 진행과정에서 우리의 요구와 수정제안을 충분히 관철시킬 수도 있다. 북의 중대제안이 다소 표현이 거칠고 부담스럽다고 해서 단숨에 위장공세로 간주하고 거부해버린 것은 사실 과거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우리가 먼저 북에게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국방장관회담과 장성급회담을 요구했던 점을 돌이켜본다면 우리로서도 성급한 대응이었다. 이제라도 북의 중대제안과 남의 드레스덴 선언이 동시에 수용되는 방식으로 남북이 관계개선의 시동을 걸어주길 바란다. 정치군사적 접근과 사회경제적 접근은 서로의 기싸움으로 선후를 다툴 문제가 아니라 동시병행하는 것이 향후 성숙한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남북의 성숙한 대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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