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중국 겨냥한 MD완성이 기본축이고, 덧붙여 장비와 재래식 무기 판매까지 이익 챙겨”

<폴리뉴스>와 월간 <폴리 피플>은 지난 7월 25일 세종연구소 백학순 수석 연구위원을 모시고 최근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관계와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현안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등에 대해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백학순 수석 연구위원은 최근 북한이 한미일 해상군사훈련에 반발하여 연이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북한 나름의 위기의식의 발로와 그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라고 분석했다. 한미일 해상 합동 군사훈련이 방어목적이라고 하지만 핵을 탑재한 항공모함이 부산항에 입항하는 등 북한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백 연구위원은 정작 중요한 것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2013년 3~4월 한미합동군사훈련 시기에 1994년 제네바 북미기본합의와 2005년 9.19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른 ‘핵무기 사용과 사용 위협 금지’라는 금기가 북미 간에 깨어지고, 한반도에 ‘핵전쟁’ 위협이 본격화된 것과 그것으로부터 오는 온갖 외교안보 문제점 등 우리 국민들이 그 전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평화를 지키는 것이야 말로 대외정치에서의 최고 가치인데 박근혜 정부가 이 문제를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미국의 오바마 정부나 박근혜 정부 공히 그렇게 강조하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하는데 마치 북한과의 관계를 마치 ‘상대방이 없는’ 관계인 듯 대하는 태도로는 상대방의 반발만 키울 뿐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라 지적했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가 흡수통일을 전제하는 통일대박론 등에 집착하는 한 임기 내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백 연구위원은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지금이 오히려 남북관계에서 획기적 발상전환을 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북한의 붕괴흡수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화해와 평화정착, 협상을 통한 평화적 통일의 진전을 위해 봉사하는 방향으로 운용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최근 남북관계가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면 남북 간에 군사적인 긴장도 여전히 있고 그런 한편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북측으로부터의 대화 움직임도 있다. 양상만 보면 헷갈리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북한은 예측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현상들 하나 하나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북한 움직임과 우리가 어떻게 지혜롭게 위기관리를 잘하고 남북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지 박사님의 고견을 듣고자 한다. 우선 지난 7월 21~22일 한미일 합동 해상군사훈련이 있었다. 직전에 일본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허용이 있었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데 이번에 실시된 한미일 해상 합동군사훈련이 통상적인 것인가, 예외적인 것인가. 

한미간의 합동군사훈련은 대표적으로 봄에는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이 있고,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이 있다. 그 외에 합동해상훈련, 대잠함(潛艦)합동훈련, 합동공군훈련 등이 있어서 어떻게 보면 일년 내내 쉬지 않고 계속되는 셈이다. 제주 남방에서 실시하는 해상훈련에 일본 자위대가 참여한 것은 2011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이 일본을 합류시킨 명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군사적 위협이 일본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한미일 3국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중국에 대항하는 군사안보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 미국의 목적이다. 다시 말해, 미국이 요새 경제적,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워지면서, 지난 3월에 나온 미국방부의 ‘QDR’(4년 주기의 국방검토보고서)에도 잘 나와 있듯이, 일본과 한국의 군사력에 더욱 의존하고 또 일본과 한국에게 더 많은 군사안보적 기여를 요구함으로써 중국에 대항하고 포위하는 군사안보 시스템을 완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총력을 기울여 추진해온 것이 미국주도의 MD에 동맹국들을 합류시키는 것이며, 또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허용과 한일 간에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의 추진이다.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한 것은 결국 중국, 북한과 관련된 유사시에 일본군을 합류시켜서 그 군사력을 이용하고 의존함으로써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군의 능력의 제한점을 보완하려는 것이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이명박 정부 때 비밀리에 체결하려다가 국민들의 반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5월 말 싱가포르 샹그릴라 회의에서 한일 간에 ‘군사정보공유양해각서’의 필요성에 합의하면서 그것을 위한 실무단을 꾸렸다. 국회의 비준이 필요없는 양해각서(MOU)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목적은 GSOMIA와 전연 동일하다. 이명박정부 때 일본과 체결하려고 했던 GSOMIA에 대해 당시 ≪뉴욕타임즈≫는 이를 “military pack”(군사동맹조약)이라고 표현하면서, 그 목적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부상에 대해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우리정부는 한일 GSOMIA나 군사정보공유양해각서가 일본의 선진 정보수집 능력을 이용하여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관한 고급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이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만 강조하는 등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즈≫가 보도했듯이, 이는 주요 목적 중의 하나가 중국의 부상에 대처하기 위한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디자인이 들어가 있는 협정이요 양해각서인 것이다.

강대국은 항상 강대국 간의 관계가 중요하고 그래서 강대국 외교를 정치외교의 기본으로 하는 법이다. 조그만 나라들에 대해서는, 이들 나라가 강대국 간의 관계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이익의 증진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는 이들을 이용하고 방해가 되는 경우는 이들을 버리는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부상하면서 모든 관심이 거기에 있다. ‘아시아로의 회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통해 중국의 부상에 대처하는 맥락 속에서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을 장기판 말(馬)로 사용하면서 이들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주도의 대중국 MD체계에 일본과 한국을 합류시키고, 한미일 합동해상훈련도 실시되고, 일본군에게 집단적 자위권도 허용하고, 한일 간의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독려하여 결국 한일양국의 군사력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안보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것이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미국은 한일양국에게 MD체계 등 관련 무기와 장비를 판매하면서 무기 판매금까지 챙기니 군사적, 경제적으로 이중적인 이익을 보는 셈이다. 이것이 강대국 입장에서는 강대국 외교의 묘수이고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 미국 핵항공모함이 부산항에 들어오고 이지스함도 움직이면 중국도 긴장하겠지만 북한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나름대로 자극적이고 신경질적인 행동을 나타낸다. 일반 국민들이 보면 ‘북한은 왜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쏘느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같은 군사적 대치가 반복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인가?

사실 국민들이 잘 알지를 못했던 것이 있다. 작년 3~4월 키리졸브-독수리훈련 시기에 예전의 합동훈련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북미양국이 상호 ‘핵무시 사용 위협’을 하면서 상호 ‘핵전쟁’ 위협을 했던, 유례없이 ‘실질적이고 명백한’ 전쟁 위험과 위협이 벌어졌던 일련의 상황이 있었다. 미국이 작년에는 ‘The Playbook’이라고 불린 작전계획을 세우고, 또 미국방부 부장관이 서울에 와서 이번 한미합동군사훈련에 B-52 전략포격기가 참여한다는 것을 아예 ‘공개’하는 등 B-52 전략폭격기, B-2 스텔스 폭격기, 샤이엔 공격형 핵잠수함을 들여와 훈련에 참여시키면서 북한을 겨냥하여 ‘모의 핵폭격’ 연습을 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한미합동군사훈련에 B-52 같은 핵폭격기가 참여하지도 않았고, 또 설령 비밀리에 참여했더라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작년에는 완전히 다른 행동을 취한 것이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B-2 스텔스 폭격기가 미국 미주리주 화이트맨 공군기지에서 6,500마일(1만여km)을 논스톱으로 와서 북한을 겨냥한 모의 핵폭탄 투하 훈련을 하고 바로 되돌아갔다. 이 폭격기가 한번 뜨려면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괌에서 떠서 한반도에 들어와 폭격연습하고 다시 괌으로 되돌아가는 B-52의 상대적으로 단순한 비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스텔스 폭격기가 뜨려면 온갖 관련 부대들이 협력해야 한다. 공중급유기도 참여해야 하고, 이 비행을 위한 명령지휘(command & control)도 특별히 마련되어야 하는 등, 이 폭격기가 뜨는 데는 확실히 무언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이 메시지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 이야기하기로 하자.

한편,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이 실행단계에 들어가 “실동(實動) 핵타격 훈련”으로 이뤄지면서 이제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표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현실적인 의미”를 띠게 되는 등 “미국에 의해 이 땅에는 핵대결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비난하면서, 네 가지 매우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했다. 그것은 첫째, 북한은 정전협정, 남북 간 모든 협정 등을 무효화 하고 북미 간, 그리고 남북 간의 모든 군사 및 당국 간 통신을 끊음으로써 전쟁위협의 수준을 높여갔으며, 둘째,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소집하여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로선’을 “새로운 전략노선”으로 채택하고, 바로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핵보유를 법제화했으며, 셋째, 미국본토와 하와이, 괌도 등 미군기지들과 남한과 그 주변지역의 군사기지들을 타격할 전략로켓군과 장거리 포병부대 등 야전포병군을 “1호전투 근무태세에 진입”시켰고, 마지막으로, 미국의 해·공군기지들이 있는 괌을 사정거리에 넣고 있으면서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무수단’ 중거리 미사일의 발사 준비를 함으로써 실제 물리적으로 미국에 대해 ‘핵전쟁’ 위협을 했던 것이다. 

북한의 ‘병진노선’만 하더라도 북한이 핵능력을 키워 미국과 남한으로부터 오는 군사안보 위협에 대해 그것을 억제력으로 확실히 사용하면서 이제부터는 자원을 오히려 경제발전에 투입하겠다는 것이긴 하나, 이는 결국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인데, 당시 3월 말에 북한에서 병진로선이 나왔을 때, 위에서 설명했던 것과 같은 맥락을 이해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이 무수단 중거리 미사일로 괌 등을 핵공격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무수단 미사일은 이동형 차량에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인데, 북한은 이를 동해안 쪽으로 옮겨서 은폐해버렸다. 이렇게 되니 언제 어디에서 발사할지 미리 알기가 어렵고 따라서 그에 대한 미사일 방어가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이 제3차 핵실험에서 핵무기를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했다고 하니, 만에 하나라도 무수단에 핵무기를 탑재하여 괌을 공격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북한이 요새 한미양국의 각종 합동군사훈련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각종 단거리,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는데, 이는 작년 3~4월 위기를 겪으면서 한미일 3국에 대한 ‘무수단’ 중거리 미사일의 ‘효과성’을 경험한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북한이든 미국이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다고 볼 때, 그렇다면 미사일 발사가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경고와 위협 수단이 되는데, 이미 ‘무수단’ 중거리 미사일을 갖고 있고, 그 외 대포동 장거리미사일, 또 인공위성 로켓발사 성공을 통해 초보적이긴 하지만 ICBM 능력을 획득한 북한으로서는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필요도 없이 최단거리 미사일, 스커드미사일, 로동미사일을 발사만 해도 그것이 주는 메시지를 명확한 것이다. 북한은 올 2014년 키 리졸브-독수리훈련이 시작되자, 한 달 여 동안에 90기나 되는 각종 미사일을 대량으로 쏘기도 했다. 앞으로도 북한이 한미 혹은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에 대응하여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일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은 또 꾸준히 미사일 성능을 개선해 나갈 것이다.

- 210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남북 간에 힘겨루기와 상대 의중 파악 차원에서 긴장이 고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이 실제로 핵무기를 북한에 사용할 수 있다는 위협을 북한에 가했고 이에 북한도 맞대응 하는 등 일촉즉발의 전쟁 위험상황까지 갔다는 것은 알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후 상황이 전정된 것은 미국이 입장을 바꾸었기 때문인가?   

그전에 미국 정보기관들의 정보판단은 북한이 미국에 대해 핵과 미사일을 사용하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의 대량보복을 받게 되면 북한 정권이 사라질 테니까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최우선적인 목표인 이상 북한이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작년 3~4월 모든 통신수단을 끊어버리고 핵공격을 하겠다면서 무수단 미사일 발사 자세를 취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을 보면서, 미국은 김정은의 성격과 리더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인데, 미국이 너무 과도하게 ‘핵무기 사용 위협’을 하는 등 북한에게 힘을 과시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오판’하도록 몰아붙이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커졌고,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이 정말 미사일 공격을 할지도 모르며, 만일 그가 무수단 미사일 공격을 한다면 당시 한반도와 일본, 서태평양에 있는 미사일방어 능력을 가진 구축함들과 레이더 시설만으로써는 완전한 방어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미국은 딜레마에 빠졌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선택지는 결국 The Playbook 작전을 중단하고, 북한에 대해 ‘대화 제의’를 함으로써 긴장을 낮추는 것이었다. 4월 11일 오바마정부와 박근혜정부는 동시에 북한에 대해 대화를 제의했던 것이다.

당시 내가 KBS 심야토론에 나간 적이 있다. 나의 이야기 요지는 이랬다. 모든 핫라인이 끊어져 있는 상황에서 우발적인 사건이 발생할까 우려한다. 서로 전쟁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공격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긴장이 고조된 심리상태에서 현지부대의 병사들이 만일 우발 사건을 발생시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정치가 모든 답을 다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에는 정답이 있는 것 아니냐. 국내정치에서 정답은 분열이 아니고 통합이고, 대외정치에서 정답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이며,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무조건 긴장완화 조치를 취하는 게 정답인데, 지금 박근혜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시 미국은 무수단 미사일의 발사를 가정하여 우리나라 이지스 구축함 3척과 일본의 이지스 구축함 6척을 모두 동원하고, 일본 요코스카에 기지를 둔 미 제15구축함전단 중에서 이지스 구축함 4척을 한국영해에 동원하고도 부족하여, 원래 The Playbook 작전 계획 속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7개월 동안 동아시아에서 임무를 마치고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모항으로 돌아가던 이지스 구축함 데카투어호를 태평양에서 회항시키고, 또 레이더함(SBX-1)을 하와이에서 서태평양 상으로 출발시켰다. 괌에 고(高)고도 미사일방어시스템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것을 설치하려면 수주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4월 15일 김일성 탄생일은 다가오고, 당시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은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을 쏜다면 3월 10일경이 될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시간이 촉박했다. 결국 위에서 언급했듯이, The Playbook 작전을 중단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두 가지 조치를 더 취했는데, 그 하나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4월로 예정되어 있던 ‘미니트맨 III’라는 ICBM의 실험발사를 연기하고, 다른 하나는 캘리포니아와 알래스카에 동아시아 쪽에서 ICBM이 날아올 때 이를 요격할 요격미사일을 14기 더 배치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기존에 30기의 요격미사일이 배치되어 있었으니까 이는 거의 50% 증가라고 하겠다. 

작년 3~4월 경험은 북한, 미국, 남한, 일본 모두에게 끔찍한 것이었다. 그 동안 타부시 되던 ‘핵무기 사용 위협’이 공개적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하나의 중요한 금기가 깨져버렸다. 그러고 나서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때 또 핵폭격기 B-52가 한반도에 들어와 훈련했다. B-52는 핵포탄을 20기나 실을 수 있는 폭격기인데, 올 2월 중순 평양을 방문한 도날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에게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 겸 6자회담 수석대표가 “B-52 공습의 기억이 (북한인들의) DNA 속에 박혀있다”면서, “특히, 핵무장 능력이 있는 B-52가 북한 영공에 출현한 것은 정말로, 정말로 끔찍한 위협”이었다고 말한 것을 들어봐도 북한이 얼마나 충격과 좌절을 느꼈는지 알 수 있다. 리용호는 북한이 케네스 배를 석방시키기 위해 방북하겠다는 로버트 킹을 두 번이나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것이 바로 B-52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오바마 이후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뜻을 나타냈는데, 이는 나중인 3월 14일 북한 국방위 성명에서도 그렇게 나왔고, 또 최근 7월 23일에는 ≪로동신문≫은 오바마 대통령이 ‘전략적 인내’를 고수하면, 북한은 오바마 이후까지 ‘인내’하겠다고 했다. 그레그 전 대사가 너무 답답하니까 리용호에게 ‘그래도 오바마 대통령에게 희망을 버리지 말고 미국과 대화를 나누라’고 했다. 지난 4월 25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의 결과에 실망한 북한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원숭이’에 빗대서 금도를 넘는 인신모독을 한 것은 이제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는 뜻이다. 

- 미국이 북한에 대해 B-52 전략폭격기 등 ‘핵무기 사용 위협’을 하면 할수록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할 리가 없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다. 한미양국 정부 대북정책의 목표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비핵화하는 것이다.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도록 비핵화를 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 위협을 하면 굉장히 모순적이다. 진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아야 하나. 

B-52 전략폭격기도 그렇지만, 특히 B-2 스텔스 폭격기가 뜨려면 온갖 관련 부대들이 협력해야 하고 그 과정이 복잡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 폭격기를 한반도까지 보내 훈련에 참여시킨 데는 확실히 무언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고 아까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그 메시지는 다름이 아니라 미국이 일본과 한국에 대해 약속한 핵우산(확장억제) 제공을 행동으로 증명하여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핵우산을 제공한다는 것은 ‘우리가 북한의 핵무기를 막아줄 테니 너희는 절대 핵무기를 만들지 말라’는 의미이다. 만일 한일양국이 핵무장을 하게 되면, 동아시아에 핵무기 경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런 경우, 이 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지속될 공간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작년 3~4월 미국은 한반도에서 일종의 ‘핵전쟁’ 위협이 고조되는 데도 불구하고 한일양국에 대해 핵우산 제공 약속을 지켰다는 것은 미국의 정책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포기하고 이제 초점을 한일양국의 핵무장 방지에 맞췄다는 것을 의미했다. 작년 3월 애쉬턴 카터 미국 국방부 부장관이 서울에 와서 여러 가지를 얘기했지만, 조지 리틀 미국방부 대변인은 미국이 북한에게 ‘핵무기 사용 위협’을 통한 ‘힘의 과시’를 하게 된 데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일양국에 대해 ‘핵우산 제공 약속을 지키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고 이야기했다. 미국 국방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모두 나오는 이야기다.

미국은 그 동안 ‘공식적으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정책을 견지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제1기 오바마정부 시절에 이미 국무장관이나 국방장관, 그리고 NSC 사람들이 의회 청문회 증언 같은 곳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지칭하곤 했다. 그런데 작년 봄 한미합동군사훈련 기간에 미국이 보여준 The Playbook 작전은 확실히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희망을 갖고 있지 않음을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미국은 그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포기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한 상황에서도 북한은 작년 6월 16일 미국에 대해 비핵화를 논의하기 위한 고위급회담을 제의하지 않았는가. 북한이 왜 그렇게 했는가? 그리고 당시 한반도 상황과 직접 관련된 당사국이기도 한 중국은 어떤 입장이었나?

작년 3~4월 위기가 끝난 후, 5월 하순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특사로서 중국에 가서 미국과 대화를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중국정부더러 그것을 미국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중국도 그해 한반도의 지극히 위험한 전쟁위험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반도에서의 위기와 불안정을 그대로 그냥 두면 안 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중국으로서는 무엇보다도 한반도에서 군사충돌이나 전쟁이 발생하여 그것이 미국과의 신형대국관계에 악영향을 주면 안 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중국과 북한이 아주 면밀한 정책공조를 해서 6월 16일자 북한의 대미 고위급회담 제안이 나오게 됐던 것이다.

북한의 6.16 대미 제의는 여태껏 나왔던 수많은 북한의 성명서들과 비교해 가장 뚜렷하게 북한이 왜 핵을 갖고 있고, 핵보유의 성격이 무엇이고, 또 어떤 조건 하에서 핵을 포기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 동안 북한이 핵 포기 조건으로서 일관성 있게 주장해온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이다. 평화공존을 하자는 것이다. 둘째,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 전환이었다. 그런데 6.16 대미 제의에서 세 번째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이다. 미국이 그해 3~4월에 미국의 ‘핵무기 사용 위협’을 당하면서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은 후, 한반도를 비핵지대화하여 한반도에 미국의 핵무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미국의 핵사용 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킬 필요를 절감한 것이다. 이는 지극히 중요한 제의인데, 왜냐하면 북한이 6.16 대미 제의를 통해 ‘한반도 비핵무기지대화’의 개념과 정책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10월 23일 외무성 담화를 보면, 북한의 “변함없는 정책적 목표인 조선반도 비핵화는 결코 우리의 일방적인 선핵포기가 아니며 그것은 동시행동으로 조선반도에 대한 외부의 실제적인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기초하여 전 조선반도를 핵무기없는 지대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1980년 김일성 주석이 6차 당대회 개회사에서 연방제 통일방안을 제안하는데, 그는 이 연설에서 한반도를 “영원한 평화지대, 비핵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김일성이 1994년 7월 사망했는데, 직전인 6월 30일 벨기에 로동당 중앙위원장을 만나서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언급할 때까지, 제가 ≪김일성 저작집≫을 찾아 본 적이 있는데, 15년 동안 무려 36번이나 반복해서 ‘조선반도 비핵평화지대’를 제안했었다. 1981년에는 일본사회당과 공동으로 ‘동북아 비핵평화지대 창설에 관한 공동선언’을 했고, 1986년에는 북한정부가 ‘조선반도 비핵평화지대 창설’을 공식 제안했고, 1987년에는  북한 외무성은 ‘조선반도 비핵평화지대에 대한 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1986년과 1988년에는 평야에서 ‘조선반도 비핵, 평화지대’를 논의하기 위한 대규모의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그리고 1992년 1월 20일, 북한은 남한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했는데, 이는 북한이 다른 관련 당사자와 맺은 한반도 비핵화 관련 첫 공식 합의였고, 이는 동북아비핵무기지대 창설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이었다. 그런데 1993~94년 1차 핵위기 당시 미국과 맞붙으면서, 북한은 한반도 비핵지대화 주장이 쑥 들어갔고, 주지하다시피, 그 동안 북한은 핵능력을 강화해와서 이제는 실질적인 핵보유국의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비핵지대화 제의가 작년 6월에 다시 나온 것이다. 이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제의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6.16제의는 한반도 비핵무기지대화를 다시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그해 3월 말~4월초에 북한이 채택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로선’과 그것의 법제화를 폐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6.16 대미 제의는, 위에서 이미 지적한 것이지만, 북한이 단독으로 한 것이 아니라 실제에 있어서는 북중 양국이 면밀한 정책공조를 통해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한미양국은 이 제의를 완전히 무시했던 것이다.

북한은 최룡해가 베이징을 방문하여 대미 대화를 제안한 5월 하순부터 10월 2일 한미양국이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한미국방장관회의)를 통해 북한에 대한 ‘맞춤형 억제전략’을 내어놓을 때까지 일관성 있게 ‘대화와 평화’의 드라이브를 걸었다. 예컨대,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합동군사훈련 때 B-52가 다시 날아와 모의 핵폭격 연습을 했는데도, 북한은 예전과 달리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기간 동안 한 번도 미국에 대해 비판하지 않았다. 당시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어디에도 미국을 비난한 기사가 없었었다. 그 대신 북한은 ‘평화’와 ‘평화환경 조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훈련이 다 끝나고 난 뒤에야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0월 2일 45차 한미 안보협의회에서 한미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맞춤형 억제전략’에 합의하는 것을 보고 한미양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맞춤형 억제전략’에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선제타격 개념이 들어가 있다. 소위 북한의 ‘핵무기 사용 임박단계’에서 선제타격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를 자신에 대한 ‘핵선제타격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작년 5월 하순부터 10월 2일 ‘맞춤형 억제전략’이 나올 때까지의 4개월 여의 기간에 한반도 국제정치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북중양국 vs. 한미양국 간의 정책적 불균형’이었는데, 구체적으로, ‘북한의 ‘대화와 평화’ 공세 vs. 미국의 ‘전략적 인내’ 견지‘였다. 달리 표현하면, 북중양국은 면밀한 공조 하에 매우 강력한 대화와 평화 드라이브를 걸었고, 한미양국은 면밀한 공조 하에 무시와 무대응으로 일관함으로써 생기는 정책적 불균형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이 불균형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금 생각해봐도, 한미양국이 작년 북한의 6.16 대미 제의를 받지 않은 것은 너무도 안타깝고 잘못된 일이다. 북미관계와 북핵문제 해결, 그리고 한반도 평화정착에서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기회였는데, 한미양국 리더십의 북핵문제와 비핵화 역사에 대한 지식의 부족과 전략적 판단 능력의 부족으로 그것을 놓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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