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弱者)에 대한 공격 본성’은 비열함의 전형

정치의 역할은 국가공동체 내부의 사회적 이해관계를 조정해 장기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주체인 ‘국민’의 권리 제고와 편익 증진, 그리고 대외 ‘외교’를 통해 공동체의 안전을 도모하는 데 있다. 이러한 정치의 제 기능을 다 하기 위해선 선행적으로 충돌하는 여러 집단들 간의 이해관계를 국가공동체란 큰 범주의 틀에서 녹여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인류역사 속에서 이러한 ‘리더십’의 창출은 시대적 변화에 맞춰 수학이나 물리법칙처럼 작동돼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보다는 공동체 내부에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면서 막대한 ‘희생’을 수반해왔다. 이는 우리의 근현대사 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공통된 현상이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근현대 국가’ 형성과정은 여러 차례에 걸친 내전(內戰)의 쓰디쓴 경험과 맞물려 있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시행착오 속에서 공동체 내부의 ‘대립과 반목’을 합리적으로 ‘조정’해내야만 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는 ‘명제’에 도달했고 지금 ‘서구 민주주의’가 미국을 거쳐 아시아 등 세계 각국으로 확산돼 세계사적 보편성을 획득한 제도로 인정받아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가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렇게 구축된 ‘민주주의’도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지금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국가 간 또는 국가 내부의 분쟁과 갈등에서 여전히 ‘결함투성이’며 지난하고 어려운 이행과제를 안고 있는 불완전한 상태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불완전한 상태는 법과 제도 미비 이전에 ‘인간’과 ‘인간집단’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맞물려 있다. ‘인간’의 오래된 집단적 본성인 타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배타성, 소수집단에 대한 배제, 약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성 등이 현대 민주주의가 맞이한 ‘적(敵)’이다.

이는 다름 아닌 ‘사회적 약자(弱者)’에 대한 추악한 공격 본성이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또는 자신에게 가해진 억압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자신보다 더 ‘약자’를 공격하는 패턴은 과거부터 반복돼 왔고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도 공공연히 발생하고 있다.

1929년 일본 관동 대지진 때 재난으로 실의에 빠진 하층 일본인들은 일본 지배층에게 항의해 정당한 수습조치를 요구하기보다는 ‘유언비어’와 결합해 약자의 마지막 고리였던 재일조선인을 자기 불만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 과거의 사례라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 미국 퍼거슨시 사태, 윤 일병 살해사건과 군대내 병영사고 등은 현재진행형이다.

현대 민주주의 적(敵), ‘사회적 약자(弱者)에 대한 공격 본성’

1987년 6월항쟁 이후 보편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길로 접어든 대한민국은 ‘약자 공격’이 아직도 일상화된 사회이다. 국민들 다수는 학교와 군대, 직장 등을 거치면서 ‘약자 공격’을 일상적으로 겪으며 그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오며 적응해왔다.

또 우리 사회 거의 모든 곳이 ‘서열과 패거리’로 얼룩져 있다. 합리와 진보, 인간존엄성에 대한 목소리가 점차 강해가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서열과 패거리’에 기반한 ‘약자 공격’은 이를 상쇄할 정도로 강력하고 뿌리가 깊다.

우리 정치가 욕을 먹고 있는 근본적 배경도 여기도 있다. 사회집단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정치가 강자에게는 약하지만 약자(弱者)는 배제하려는 ‘서열과 패거리 문화’가 현실적으로 강한 힘을 발휘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치에서 공화당 이래로 이름을 여러 차례 달리하며 맥을 이어온 지금의 새누리당은 지역과 이념구도에서 다수동맹일 뿐 아니라 사회적 강자인 기득권 계층을 대변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은 소수집단들의 연합체로 이에 대항해온 것이 한국 정치사이다.

이런 정치구조 역학관계는 여당인 새누리당에게 유리하고 야당에겐 불리하다. 새누리당 의원 비리는 ‘이슈’로서 파급력이 약하지만 ‘상대적 약자’인 새정치연합은 이보다 덜한 죄질일지라도 더 큰 비난에 휩싸일 뿐 아니라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정서도 강하다.

또 정치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국민들은 여당보다는 야당에 더 큰 짜증을 느낀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이 여당과 정부에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강자에게 관대하고 약자에 대해선 공격적인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정치에 그대로 투영된 결과이다.

‘유민아빠’ 김경오 씨에 대한 SNS 상의 공격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분명 딸을 잃은 ‘피해자’임에도 ‘강자’인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공격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여권지지층의 ‘공격대상’이 됐다. 구조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구조를 하지 못한 ‘가해자’ 정부에 항의해 46일간이나 단식을 한 ‘유민아빠’를 음해한 것은 ‘약자에 대한 공격’ 기제가 가진 힘을 이용한 것이다.

비난의 방식 또한 사실관계에 벗어난 ‘음해’에다 ‘음식물 사진’까지 게재하며 비아냥거리는 등 정당하지 못하고 비열하기조차 했다. 모든 ‘약자에 대한 공격’이 갖는 비열함의 전형이다. ‘약자에 대한 공격’이 갖는 근본 특성은 비열함이다. 사회적 강자를 공격할 경우 뒤따를 보복이나 추궁은 무섭지만 사회적 약자는 방어능력이 취약해 ‘안전한’ 폭력임을 자각하고 취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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