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이 북한 경제 자생력을 키운 역설적 상황 벌어져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남북이 계속 엇박자를 내고 있다. 서로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히면서도 정작 상대방이 내민 대화의 손은 맞잡지 않고 자신이 내민 대화의 손을 상대가 잡기만 고집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고위급 접촉을 제안했지만 북이 가타부타 화답하지 않고 있다. 5.24 조치 해제와 대북 삐라 살포 중단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면서 고위급 접촉 자체에 대해서는 결정을 미루고 있다. 이미 금년 들어 드레스덴 선언과 8.15 경축사 등을 통해 대북 협력을 제안했지만 북은 마땅치 않다는 태도다. 북한도 신년사 이후부터 1.16 국방위 중대제안과 6.30 국방위 특별제안, 7.7 공화국 정부 성명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남 대화를 제의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사실상 거부입장을 나타냈다. 대화는 하겠지만 자기 방식대로 주도권을 잡겠다는 기선잡기와 신경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의 엇박자가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북한은 어느 때보다 활발한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북미 협상이 중단되고 남북 대화가 교착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미국과 한국에 의존하지 않고 대체재를 통해 외교의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일본과 협상하고 러시아와 협력하는 데 이어 유럽과 동남아 및 중동과 아프리카에 공을 들이면서 북한의 외교적 공간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삼는 한 미국과 진지한 협상보다는 과감한 정면승부를 보겠다는 것이 북의 입장이다. 미국인 억류와 리수용 외무상의 뉴욕방문이 그런 맥락이다. 남북 대화에서도 북이 요구하는 조건이 만족되지 않는다면 남쪽에 고개 숙이거나 남쪽에 아쉬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게 최근 북의 대남 전략이다. 

 <!--[if !supportEmptyParas]-->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제안에 북이 소극적이거나 묵묵부답인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북한체제의 상대적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당정군에 대한 김정은의 리더쉽 확보가 안정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정치적 안정성이 확보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12년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성공하고 2013년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북은 대외적인 안보위협을 일정 정도 해소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2013년 3월 당중앙위에서 채택한 ‘핵무력과 경제건설 병진노선’이 바로 안보 자신감에 토대한 경제발전 의지를 과시한 것이었다.

  김정은 체제가 아버지 김정일 시대와 달리 체제유지에 자신감을 갖게 된 가장 큰 배경은 최근 호전되고 있는 경제상황이다. 김정일이 집권한 1994년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최악의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사상 최대의 위기였다면 김정은이 집권한 지금은 이른바 ‘강성국가’ 진입을 선언하면서 상대적으로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

  식량난이 완화되었고 대외 교역이 급증하면서 북한 경제에 활력이 돌고 있다는 게 북한 경제 전문가의 일반적 평가다. 달러가 되는 것이라면 자원도, 인력도, 심지어 주권도 넘기면서 과감하게 김정은 체제는 적극적 개방을 하고 있다. 6.28 방침으로 경제개혁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사실상 가족농 규모의 포전 담당제로 협동농장의 생산성을 높이고 공장과 기업의 지배인에게 확고한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공장별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수백배가 날 정도이다. 과거 김정일 시대에는 시장 경제를 묵인과 억압으로 반복해서 통제했다면 2010년 이후에는 아예 시장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국가 재정과 계획 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상 북한식 개혁과 개방이 시장경제와 공존하면서 일시적이긴 하지만 북한경제를 호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안정과 외교적 다변화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경제상황의 호전은 북으로 하여금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 남쪽에 굳이 고개 숙일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과거 경제적 절박함이 남북간 갑을관계를 만들고 북이 남쪽에게 경제적 지원과 혜택을 간절히 원해야 했다면 이제 북한체제의 자신감과 경제상황의 호전은 북이 남을 대하는 태도와 전략이 근본적으로 과거와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른바 남북관계에서 ‘게임 체인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명박 정부 동안 남북관계의 중단이 지속되면서 북은 나름의 대안을 찾아야 했고 그것은 구조적으로 북중 교역의 급성장과 시장경제의 허용 및 인력 송출과 자원 개발 등을 통해 북한식 경제회생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결과적으로 북한 경제의 자생력을 키워주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남북관계 없이도 경제상황이 호전되고 있다는 북한의 경험은 당연히 남북관계에서 북이 남쪽에 경제적 도움을 그리 절박하게 필요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잇따른 대북 제의에 북이 그리 호응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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