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정치 복원론’ 속에 자리 잡은 호남 민심의 역린(逆鱗)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8대 대선 패배 후 2년 만에 당의 간판으로 복귀하기 위한 몸 풀기 중에 있다. 아직 당권 도전선언은 않았지만 비대위원으로서 첫 공식발언이 정당과 정치혁신이 제가 정치를 하는 목적이고 여기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한 이상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문 의원의 당권도전은 7.30재보궐 선거 패배와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사퇴한 시점에 이미 예정됐다.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 파동은 그가 조금 빠르게 전면에 나서는 계기에 불과했다. 당내에서 대권주자 보호’, 친노패권 견제등을 이유로 이러저러하게 문재인 출마 불가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문재인 당권 도전의 명분을 희석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문재인 의원에게는 피할 수 없는 외길 수순이다. 당이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한가하게 이선에서 차기 대권후보로서 이미지 관리만 했다는 평가가 나올 경우 정치생명은 끝이다. 당 하나도 책임지지 못하느냐는 비난 속에서 대권을 논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당권이란 검증의 시험대에 올라야만 한다.

대선패배 이후 지난 2년 간의 야권재편과정은 문재인을 대신한 안철수 전 대표의 시험대였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이다. 대선 직후 1년 동안 진행된 야권재편은 안철수 옹립의 과정이었고 새정치연합의 탄생은 그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자신의 정치를 채 보여주지 못하고 6.4지방선거와 7.30재보선 관문에서 주저앉았다.

안 전 대표의 사퇴는 문재인 의원에게 바통을 넘겼다는 신호이다. 바통을 받지 않으면 당권 포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대권도 접어야 하기에 문 의원으로선 당권 도전을 주저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를 두고 문재인의 승부수라고도 해석하지만 오히려 지난 대선 때와 비슷하게 닥친 운명에 대한 순응에 더 가깝다.

문재인 의원이 당권에 도전할 경우 당 대표에 선출될 가능성은 크다. 당권에 도전할 것으로 보이는 정세균, 박지원 의원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15백만표를 얻었던 문 의원과 경쟁하기엔 버겁다. 게다가 문 의원의 독주에 제동을 걸 정치적 힘이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 밖에 있고 안 전 대표는 이선으로 물러난 상황이다. 문 의원의 당권도전에 큰 장애물은 없어 보인다.

이런 국면에서 도드라지듯이 나온 당권-대권 분리론호남 신당론은 문재인 의원의 당권 가능성이 높다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문 의원의 당권 장악을 염두에 두고 향후 정치적 포석을 미리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문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된다 하더라도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호남 정치 복원론속에 자리 잡은 호남 민심의 역린(逆鱗)

이 주장들 속에는 호남정치 복원이란 야권의 정치적 과제와 긴밀하게 결부돼 있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호남 민심의 역린(逆鱗)’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문 의원이 이를 잘못 다룰 경우 저류의 호남 민심 흐름을 자극하는, 역린 건드리는 정치적 우를 범할 수도 있다.

호남정치 복원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10년 이상의 긴 역사적 산물로 가까이는 지난 총선 이후 호남정치의 난맥상과 호남의 정치적 역할 약화로 인해 야기된 현상이다. 호남이 야권 전반을 아우르는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오히려 중앙정치에 휘둘리고 있다는 자성에서 비롯됐다. 여기엔 호남정치가 당의 중심에 서 당을 바로 잡아야한다는 욕구도 반영돼 있다.

문 의원이 대권-당권 분리론을 위기에 처한 당과 한국정치 현실과 거리가 있는 한가한 이야기라고 언급했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호남 신당론을 자신에 대한 견제로 이해하는 것도 호남 민심을 제대로 읽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안철수 전 대표의 실패반복을 예고할 뿐이다. 안 전 대표 리더십이 무너진 직접적 계기는 6.4선거와 7.30재보선에서의 윤장현 광주시장과 권은희 의원 등에 대한 전략공천에 있었다. 안 전 대표는 호남정치를 정리해내 자신의 리더십을 확실하게 구축해보고자 했으나 이 정치적 선택이 호남의 역린을 건드리는 결과를 낳았다.

2.8 전대를 앞두고 호남 신당론이 제기되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다. 호남 정치가 중앙정치에 종속돼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민심과 차기 총선에서 호남 공천이 친노에게 휘둘릴 수 있다는 호남 정치인의 위기의식이 동시에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호남 신당론이 세를 획득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호남정치 복원을 주창하는 정치인이 자천타천으로 존재하지만 실제 구심은 없기 때문이다. 또 정치적 명분도 약하다. ‘호남 신당론이 한국정치의 새로운 비전으로 평가받기 어렵고 오히려 당내 공천 갈등의 산물로 인식될 수 있다.

당권-대권 분리론은 호남 신당론의 다른 버전이다. 이 또한 새정치연합 내 호남의 문제는 호남 정치인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며 당내 정치만큼은 호남의 주도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야권진영의 핵인 호남의 역량을 온전히 보전하고 동원해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승부를 걸 수 있다는 명분이다.

이러한 당권-대권 분리론과 호남 신당론의 대두는 차기 당 대표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은 문재인비호남 대권주자이기에 연유된 것이다. 문재인 의원에게 어떤 식으로든 호남과의 정치적 관계를 분명하게 설정하라는 주문이며 압박이다. 문 의원이 당 대표가 돼 자신들이 우려한대로 친노 패권주의로 가면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당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 문 의원을 겨냥해 여차하면 비토세력으로 갈 수 있다는 압박으로 자신의 정치적 포지션을 설정한 것에 가깝다. 그러면서 문 의원에게 호남 정치 복원이란 숙제도 함께 준 것이다.

당내정치만으론 해법 없어...‘문재인의 정치로 국민신뢰 얻어야

그러나 문 의원이 이 숙제를 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 숙제를 못 풀면 손학규 전 대표나 안철수 전 대표와 같은 전철을 밟는다. 이들이 당권은 잡았지만 민심을 얻지 못한 데는 호남 정치를 제대로 관리해내는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문 의원이 지닌 정치능력을 보면 과거 당 대표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부산경남에 뿌리를 둔 친노로 분류되기에 자신이 나서 계파 해체호남정치 복원의 길로 나설 경우 안철수 전 대표의 7.30재보선 전략공천 때보다 더 큰 반발을 살 수 있다.

문 의원은 이에 당 대표가 공천을 좌지우지 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전략공천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공정한 룰을 통해 공천이 이뤄지도록 하면 계파주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이는 현실정치의 냉혹한 이면을 너무도 안이하게 바라보는 것에 불과하다.

아무리 공정한 공천 룰을 만든다 해도 반발하는 세력은 반드시 형성되는 것이 정치이다. 또 매번 총선 때마다 터져 나오는 개혁공천, 물갈이 공천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는 당 대표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존한다. 이를 공정한 공천 룰에 떠맡긴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문제이지 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문재인 의원이 당권을 장악하더라도 당내 정치를 통해 자신이 직접 호남 정치 복원을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호남정치의 구심을 만드는 조력자 역할을 하려해도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또 아무리 계파 해소를 주창해도 반대진영 형성을 막을 방법이 없다. 공천문제와 결부돼 친노 패권을 비난하는 비주류세력 형성은 불가피하다. 이들이 대표 흔들기에 올인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런 정치 역학원리이다.

박지원 비대위원이 주창한 당권-대권 분리론에서 대권주자가 당권을 행사할 경우 정치적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은 이런 점에서 보면 진실이다. 그렇다고 이를 회피해도 문 의원은 대권의 꿈을 접어야하기에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결국 이 문제를 푸는 유일한 해법은 정당 혁신과 같은 당내 정치보다 문재인의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어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문재인의 존재가 국민의 신뢰도에 기반한 것처럼 향후의 문재인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의 비전이 국민, 특히 호남민심과 같이 호흡하면 그것이 리더십으로 발현되고 이것이 당내 정치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열쇠가 된다는 의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 강력한 리더십의 근원은 강력한 대중지지도에 있었고 이것이 공천의 칼자루를 쥐고 휘두르게 한 힘이었다. 문재인 의원의 정당과 정치혁신의 승패 여부도 문재인의 정치가 국민 속에 뿌리내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실패하면 추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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