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회 판매·유통사업 경제지주 이관 앞두고, 노조·지역조합 "경제사업 활성화 도움 안된다"

농협중앙회가 내년 2월까지 경제사업을 경제지주로 이관하는 게 옳은지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충정로 농협중앙회 건물.
▲ 농협중앙회가 내년 2월까지 경제사업을 경제지주로 이관하는 게 옳은지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충정로 농협중앙회 건물.

'농민과 국민을 위한 농협으로 거듭나기 위해' 2012년 3월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떼어내(신경분리)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를 설립한 농업협동조합중앙회가 갈림길에 서 있다. 농협법 부칙에 따라 내년 2월까지 중앙회의 판매·유통 사업을 경제지주로 이관해야 하는데, 노동조합과 지역 농협 조합장 등이 경제사업 활성화에 도움이 안 된다며 거세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농협중앙회가 신용사업에 치중해 농축산물 판매·유통처럼 농업인을 위한 경제사업을 소홀히 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2011년 3월 31일 '1 중앙회-2 지주회사' 체제로 결정했으니, 이듬해 3월 2일 발표한 일정에 맞춰 경제사업을 경제지주로 이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농협노조 등은 "사업구조개편 목적인 경제사업 활성화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폴리뉴스>가 농협중앙회 판매·유통 사업의 경제지주 이관 논란을 살펴봤다.

노조 "정부 주도 사업구조개편은 실패작" 규정="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합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에 이바지 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 1조에 규정된 농협법의 목적이다. 이는 농협중앙회 판매·유통 사업의 경제지주 이관을 앞두고 11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김춘진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 고창·부안)이 소개한 규정이기도 하다.

'농협 경제사업 지주회사 이관 무엇이 문제인가!'란 이름의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국회 농림어업 및 국민식생활 발전 포럼' 공동대표인 김 의원은 농업인을 위해 만들어진 농협이 애초 설립목적에 맞는 구실을 해왔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 의원은 50여년 역사의 농협이 설립목적을 얼마다 달성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도 했다. 다른 공동대표인 김영록 의원(새정치민주연합, 해남·완도·진도)과 홍문표 의원(새누리당, 홍성·예산)은 농협 사업구조개편 계획을 발표하며 정부가 약속한 1조원 현물출자가 지켜지지 않은데다, 경제사업을 경제지주로 이관하면 공정거래 위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 패널로 나선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NH농협지부 위원장은 '농협 사업구조개편의 실체 및 경제사업 지주회사 이관의 문제점'이란 제목의 발제를 통해 "정부 주도의 사업구조개편은 실패작"이란 주장을 폈다. 허 위원장을 발제 내용을 종합하면, 이명박정부 때 강행된 사업구조개편으로 농협은 위기에 빠졌다. 극에 달한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 폐해의 대안으로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였던 2012년 MB정부가 농협중앙회를 두 주식회사(금융지주와 경제지주)로 분할한 결과 11조원에 달하는 빚과 지금도 지출되고 있는 수천억원의 비용만 남았다.

특히 농협법과 정관 등에 내년 2월까지 소매·생활물자 유통, 양곡사업을 경제지주로 이관하도록 정한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경제사업 이관은 1157개 지역 조합 및 300만 농민과 직결된 사업을 수행하는 곳이 비영리법인 중앙회에서 영리법인 주식회사로 바뀐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주회사 바람이 불었던 금융권에서 조차 우리금융지주가 해체됐고, 시티금융지주와 산은금융지주도 지주회사 체제를 벋어나려 하는데 협동조합의 경제사업을 주식회사로 넘기는 것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나? 더구나 경제지주는 아무데도 없다. 중앙회 경제사업의 경제지주 이관은 충분한 검토 없이 MB정부가 졸속적으로 사업구조개편을 밀어붙인 결과다.

판매·유통, 양곡사업이 경제지주로 넘어가면 협동조합 정체성이 훼손된다. 지역 농·축협 지도지원 기능 중심 경제사업 운영체(중앙회)에서 직접 사업체(경제지주)로 바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역 농·축협과의 경쟁도 불가피하다. 중앙회 이사 조합장들이 경쟁 문제를 제기하니 경영진은 경합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전국 12개 하나로클럽과 10개 유통센터 등 중앙회 판매장은 지난해 103억7000만원의 적자를 냈다.

'농산물 유통의 메카'로 포장된 농협안성물류센터도 물류센터 구실을 제대로 못하며 수백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내고 있다.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와의 경합 등을 이유로 취급품목이 제한된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익을 거둬야 하는 주식회사가 경합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어찌 믿을 수 있나.

'옥상 옥 지배구조'도 문제다. 농협은행, 농협생명, 농협손해보험 등 농협금융지주 자회사는 중앙회에다 금융지주 통제까지 추가로 받는 옥상 옥 구조여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기형적 지배구조를 경제사업까지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11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농협 경제사업 지주회사 이관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발제를 하고 있다.
▲ 11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농협 경제사업 지주회사 이관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발제를 하고 있다.

"MB정부 입안자 고발하고 통째로 바꿔야" 주장도=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지역 농협 조합장들도 중앙회 경제사업의 경제지주 이관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충남 아산시 송악농협의 이주선 조합장은 전국 농·축협 조합장 1157명과 250만 조합원들의 우려를 전하기 위해 패널로 나섰다면서 경제사업 이관이 협동조합 정체성에 맞는지, 지역 농·축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과연 농업인 실익과 경제사업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지 등을 따졌다.

이 조합장은 먼저 경제지주로 경제사업을 이관할 경우 벌어질 지역 농·축협과 불가피한 경쟁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중앙회 경영진은 경합 사업을 안 하겠다고 계속 이사 조합장들한테 보고하고 있으나 그러면 왜 경제사업을 주식회사로 넘기느냐는 것이다. 그는 수익창출이 목적인 주식회사가 지역 농·축협과의 경합 사업을 안 하겠다면서 "어떻게 경영을 할 수 있을까"라며 자신이 사는 지역 사례를 소개했다.

중앙회가 최근 천안아산 신도시에 유통센터를 건립하려 했으나 천안축협의 반대로 무산된 사례였다. 이 조합장은 중앙회 경계사업 종사자들에겐 야속하게 들리더라도, 천안축협의 반대는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그는 비영리법인인 중앙회여서 지역 농·축협과 경합을 피할 수 있었으나, 수익을 내야 하는 주식회사인 농협경제지주가 농·축협과의 경합을 조절하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지적했다. 또 만약 "경합을 조절한다면 농협경제지주가 무슨 재원으로 명칭사용료를 내고 직원들 급여를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이 조합장이 내린 결론은 경제사업 이관이 "농업인의 실익과 경제사업 활성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약이나 농자재 등의 가격을 조절하면서 지역 농·축협에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하는 중앙회가 지주회사로 사업을 넘기고, 지주회사가 현재보다 이윤을 더 붙이게 되면 지역 농·축협과의 갈등이 일어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 그는 지역 농·축협들이 별도의 별도로 농약과 자재의 계통구매를 시도할 수도 있다며, 그러면 당연히 지역 농·축협에 대한 중앙회의 '이용고배당'이 줄어 지역 농·축협의 피해로 이어진다고 내다봤다. 때문에 이제라도 경제지주로 경제사업을 이관하기보다 더 시간을 가지고 대한민국 협동조합의 상징인 농협을 살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이 조합장은 주장했다.

그는 농협이 바뀌지 않는다는 정서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경제사업을 경제지주로 이관하는 것만이 경제사업 활성화 방안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면서, "지금 필요하나 것은 중앙회가 지역 농·축협을 통해 경제사업 활성화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고민"이라고 짚었다. 이어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조합장들이 MB정부 당시 입안된 중앙회의 사업구조개편에 찬성표를 던진 이유는 농업인과 조합의 사업에 더 도움이 된다는 조건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경제사업 이관 후 예상되는 문제점이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조합장뿐 아니라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충남 지역의 한 조합장도 경제사업을 경제지주로 이관해선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는 "MB정부 당시 사업구조개편 입안 관계자를 고발하고 계획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계획대로 내년 2월까지 이관 마무리 계획"=이렇듯 농협노조와 여러 지역 조합장들이 중앙회 경제사업의 경제지주 이관에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계획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허권 위원장, 이주선 조합장 등과 함께 이날 토론회에 패널로 나선 김종훈 농식품부 농업정책국장은 '농협 경제사업 이관 제약사항 및 해소방안'이란 제목의 발제를 통해 내년 2월까지 경제사업 이관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현재 ▲공정거래법 등 법적 문제 ▲국세 및 지방세 감면 등 조세 문제 ▲사업구조개편에 따른 부족자본금 가운데 정부에서 현물출자하기로 했던 1조원에 대한 출자 지연 문제 등이 걸림돌로 꼽히지만 국회 등과 긴밀히 협의하며 보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적·세무적 쟁점은 농협법 및 하위법령 개정으로 대부분 해소될 전망"이며, "현물출자도 기재부·금융위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빠른 시일 내에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허권 위원장이 지적한 자본금 지원 문제에 대해선 "농업금융채권 4조원에 대한 이자보전은 2012년부터 차질 없이 지원 중이며 현물출자 1조원 중 5000억원은 이차보전으로 전환하여 내년부터 4조5000억원에 대한 이자 약 177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남은 5000억원 지원을 위해 관계부처와 협의했으며, 정기국회에서 추가 지원 및 현물출자 이행 등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허 위원장은 이자보전 방식의 정부 지원은 실질적 도움이 안 된다며 반발했다. "정부가 돈이 없어 자본금 출연을 못했고, 이자보전은 결국 없어지는 돈"이란 게 허 위원장의 주장이다. 그는 정부가 출연 약속을 지키지 않아 사업구조개편 목적을 이루기 불가능하다면서 "정부 추가 출연 및 사업구조개편 비용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5월 20일 농협노조가 농식품부 장관에게 보낸 사업구조개편 비용 지원 요청 공문을 통해 총 7958억원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2012년과 2013년 정부의 이차보전이 각각 1206억원과 1427억원에 불과해 사업구조개편 부족자본금 차입에 따른 이자비용 2554억원과 사업구조개편 관련 비용 5404억원을 합해 7958억원을 더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한편 김영록 의원은 토론회 개회사에서 농협 사업구조개편의 핵심은 소비자에게 값싼 우리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농업인은 제값에 농산물을 팔아 소비자와 농업인 모두 이익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애초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정부가 약속한 부족자본금 지원은 농협채권 발행으로 대체되면서 오히려 부채만 가중시켰고, 현물출자 1조원도 지원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어 "비영리법인에서 영리법인으로 전환함에 따라 농업인의 실익에 기여하지 못하고 영리 추구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우려 외에 앞으로 예측이 어려운 문제들이 도출될 때마다 인적·물적 낭비를 되풀이하는 거시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 이주현 기자 yikj@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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