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남북관계 전망: 두 경우의 '골든타임'(golden time)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2014년은 남북 모두 대화의지를 밝히고 상대방에게 대화를 제의한 한 해였다. 상호 대화의 노력이 지속되었지만 정작 대화의 성과는 미미했던 한해이기도 했다.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천명했고 곧이어 1.16일 국방위 중대제안을 통해 남북간 정치군사 의제를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신년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2월 고위급 접촉이 개최되었고 한미군사훈련 기간과 일정이 겹침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켰다. 2014년 상반기 남북대화와 이산가족 상봉은 양측이 한발씩 양보한 결과였다. 북은 키리졸브 훈련을 맹비난하면서도 훈련기간에 이산가족 상봉을 수용했고 남측 역시 북이 선제의한 고위급 접촉을 수용하면서 북의 관심사항인 정치적 비방중상 중단을 받아들였다. 남북 모두 상대방의 관심과 요구에 화답한 긍정적 결과였다.

  그러나 박대통령의 통일대박론과 뒤이은 드레스덴 선언은 북한에게 흡수통일과 북한붕괴 시도로 간주되었고 북한의 정치군사 회담 제의는 한국에게 진정성 없는 평화공세로 받아들여졌다. 남북은 각자 자신의 대화 제의에 상대방이 응하기만을 요구하면서 팽팽한 줄다리기로 시간을 허송했다. 서로 대화를 원하면서도 상대방의 대화제의는 거부하는 묘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북한은 6.30 국방위 특별제안을 통해 재차 정치 군사 의제를 논의하자고 강력히 주장했고 박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환경 민생 문화 인프라 등 작은통일부터 시작하자고 제의했다. 여전히 남북의 접근방식은 평행선을 달렸고 박근혜 정부가 8.11 제안한 2차 고위급 접촉에 대해 북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장기간 교착되었던 남북관계는 10.4 황병서 일행이 인천아시안 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인천을 방문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북한의 실세 3인방과 청와대 안보실장 등 남측의 대북정책 라인업간 면담이 이뤄졌고 2차 고위급 접촉을 갖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극적으로 합의된 2차 고위급 접촉마저도 실세 3인방의 방남 분위기를 살리지 못한 채 대북전단 살포 문제로 남북의 기싸움이 재연되었고 결국은 합의한 시기를 넘기고 무산되고 말았다. 북한 실세들의 전격 방문이 교착된 남북관계를 푸는 계기가 되었고 박대통령 역시 통준위 2차 회의에서 5.24 조치 해제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전향적 입장을 밝힘으로써 남북의 대화 불씨는 살아나는 듯했지만 전단문제를 둘러싼 남북의 양보없는 주장을 넘지 못하고 결국 고위급 접촉은 금년을 넘기게 되었다. 2014년은 남북 모두 대화의 의지를 갖고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인 한해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내용과 접근방식에서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큰 아쉬움을 남긴 한해였다.

  남북이 애초에 합의했던 고위급 접촉은 사실상 물건너갔다. 그러나 남북대화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2015년의 남북관계는 지금 멈춰버린 남북대화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남북이 2015년에 다시금 대화의 의지를 확인하고 남아 있는 대화의 불씨를 살려낸다면 남북관계는 모처럼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대내외 정세는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대화 진전을 마다할 리 없는 상황이다. 2015년 북러 정상회담과 북중 정상회담을 희망하는 처지에서 대결과 교착의 남북관계보다는 대화와 협력의 남북관계가 북한에게는 훨씬 유리한 환경이 될 것이다. 정치적 안정에 더하여 대외 경제개방을 적극 모색해야 하는 북한에게 남북관계 개선은 국제사회의 긍정적 평가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집권 3년차에도 남북관계의 정상화 계기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통일대박론이나 통준위 활동의 현실적 의미는 급감하게 될 것이다. 미중관계와 중일관계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을 감안할 때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라는 지렛대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에서 우리의 적극적 개입력과 발언권을 상실한 채 여전히 미중일 사이에서 끼여 있는 어려운 형국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 3년차에 남북관계의 동력이 상실되면서 2010년에 북한의 천안함 도발과 연평도 포격으로 남북관계가 되돌이키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린 경험을 반추해보면 2015년은 남북관계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2015년은 이중적 의미에서 남북관계의 골든타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이 대화의지를 견지하고 상대방의 요구와 관심사항에 성의를 갖고 대하면서 관계 개선을 이루기 위해 보다 유연하고 전향적인 접근을 한다면 2015년은 모처럼 남북관계의 ‘골든타임’(黃金期)을 맞이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경제회복을 위해 대외관계 개선이 절실하고 외부로부터의 투자유치가 필요하다면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기능주의적 접근을 무조건 백안시하고 거부할 게 아니라 인도적 문제와 민생 인프라 및 문화적 동질성 회복과 환경생태 협력 등 박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있는 대북접근에 대해서도 북이 적극적으로 응할 필요가 있다. 한국 역시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인 만큼 대화 재개를 위한 북한의 요구에 일정정도 전향적으로 화답할 필요가 있다. 어렵게 합의한 고위급 접촉을 성사시키고 여기에서 자신의 요구만을 반복할 게 아니라 상호 관심사와 요구사항에 대해 양보하고 절충하는 윈윈의 지혜를 발휘하면 2015년의 남북관계는 각자의 필요와 이해에 의해 오랜만에 맞게 되는 황금시간대의 골든타임이 될 것이다.

  그러나 2015년이 안타깝게도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쳐버림으로써 문제 해결의 ‘골든타임’(適期)을 허비해버리는 해가 될 지도 모른다. 골든타임을 허송해버리면 슬기롭게 위기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게 되는 것이고 위기극복을 위한 골든타임은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된다. 2015년에도 남북의 엇박자가 지속되고 상호 관심사에 대한 유연한 대응 대신 자신의 입장과 원칙만을 내세워 기싸움과 고집으로 일관한다면 남북관계 개선의 골든타임은 지나가게 된다. 골든타임이 지나버리면 집권 3년차의 박근혜 정부는 대북정책 추진과 남북관계 개선의 정치적 동력과 의지가 반감되고 북한 역시 임기 후반의 박근혜 정부와 진지하고 생산적인 관계 개선의 필요성은 크게 줄게 된다. 관계 개선의 최적기를 보내버리고 남북의 감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북에 대한 인권압박이 지속되고 북미, 북중 관계가 원만하게 진전되지 않을 경우 북한은 무모하게 4차 핵실험이라는 최악의 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2015년은 관계개선의 기회를 놓치는 골든타임이 아니라 남북관계 정상화를 꽃피우는 골든타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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