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반북’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가정체성 위에다 둬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난 20일 기자들과 만나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과 소속 의원 5명의 의원직 박탈 결정에 대한 질문에 이 같은 박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박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에게 정당해산이란 ‘반(反)민주적 결정’을 ‘민주주의 수호’라고 강변한 것은 ‘반북(反北)’이 곧 ‘민주주의’라고 주권자인 국민의 눈을 가리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일 따름이다.
마침 21일 교수신문에 따르면 전국의 교수들은 매년 실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를 선택했다. 지난해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도행역시(倒行逆施)를 뽑더니 올해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일컫는다는 지록위마를 선정했다. ‘옳고 그름’이 크게 뒤바뀐 한국사회에 통렬한 경고를 보낸 바탕에는 박 대통령과 박근혜 정부의 ‘사실과 본질 호도’에 있다는 것이 선정에 참여한 교수들의 설명이다.
교수들이 언급한대로 올 한 해 ‘세월호 참사’나 ‘정윤회씨 비선실세 국정개입 논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선거법 무죄 판결’, ‘역사교과서 논란’ 등 사실호도의 ‘지록위마’ 현상은 한국사회 여러 층위에 걸쳐서 발생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중심은 다름 아닌 박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년 동안 국정원 대선개입 정국과 세월호 정국 속에서 ‘진영대립정치’를 자신의 ‘정치적 전략’으로 삼았다. 정치적 위기가 올 때마다 주권자인 국민들을 ‘두 개의 진영’을 가르면서 위기를 돌파했다. 여기에 ‘종북(從北)’을 정략적 수단으로 사용했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종북’을 ‘정략적 수단’으로서 전가의 보도에 그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반북(反北)’이란 자신의 ‘정치이념적 가치’로까지 확장했다. 그러면서 주권자인 국민에게 ‘반북’이 바로 ‘자유민주주의’라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행위를 지난 2년 동안 행했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정국을 맞은 지난해 5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해 이른바 ‘NLL(서해북방한계선) 공세’를 통해 자신의 위기에 대응했고, 그래도 위기가 지속되자 지난해 8월말에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을 터뜨려 ‘대선개입 정국’을 묻었다. 또 대선개입 문제를 제기한 박창신 신부 등을 향해선 ‘종북’이란 이름하에 대대적인 이념공세를 펼쳐 ‘부정선거 문제제기 = 종북’이란 프레임을 만들기까지 했다.
이러한 사정은 올해에도 이어졌다. ‘세월호 정국’이 펼쳐지자 여권과 보수세력은 세월호 정국을 이른바 ‘종북세력’이 주도하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이 또한 ‘진영대치구도’로 치환했다. 또 지난 11월 28일 세계일보의 정윤회씨 비선실세 청와대 문건보도를 기점으로 새로운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자 어김없이 ‘종북 프레임’을 제기했고 지난 19일에는 헌재의 통진당 해산이라는 사상초유의 대응을 통해 이 또한 비껴갈 기세이다.
박 대통령은 비선실세 국정개입 논란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을 무렵인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재미교포 신은미씨의 ‘토크 콘서트’에 대해 “소위 종북 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이라며 “북한 방문 경험이 있는 일부 인사들이 북한 주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이나 인권침해 등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자신들의 일부 편향된 경험을 북한 실상인양 왜곡과장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직접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인권결의안이 지난 달 유엔총회 인권사회분과위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됐다. 그런데 당사자인 대한민국에서 그 정반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극히 편향되고 왜곡된 것”이라며 “이 모든 행위들은 헌법적 가치와 국가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대원칙 아래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자 한다”고 강경한 발언을 거침없이 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신씨의 토크콘서트를 ‘종북’으로 규정한 것에 그치지 않고 ‘헌법적 가치와 국가의 정체성’에 위배한다는 발언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반북 이념’을 ‘민주주의와 공화국’에 기반한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 위에다 둔 것이다. ‘반북’과 ‘종북 척결’을 헌법적 가치라고 주장한 것은 과거 ‘민주주의’란 헌법적 가치를 유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선포 논리의 연장선이다. 나흘 후에 나온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에 다름 아니다.
박 대통령, ‘반북 이념’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가정체성 위에다 둬
‘반북’을 이유로 ‘민주주의를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헌법적 가치’라고 삼은 것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역대 독재정권들의 공통점이다. 통진당 해산까지 나아간 박 대통령 집권 2년은 이들 독재자들의 계보를 잇는 ‘유사 독재 통치’에 다름 아닌 상황이다.
통진당의 당 강령에 나온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 주체사상에 근거한 국가체제 구현과 연결된다는 구체적인 물증은 없다. 나아가 그들은 민주주의의 최고수단은 ‘다수결의 원리’를 담은 ‘선거’를 적극 수용했다. 그러나 헌재는 이석기 의원 등 일부 조직원의 ‘종북적인 사고와 태도’를 근거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했다며 ‘정당해산’을 결정했다.
이는 ‘헌법적 가치’인 ‘민주주의’를 ‘반북’이란 잣대로 훼손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국민들의 ‘반북정서’에 편승한 ‘판단’에 불과할 뿐 ‘유신독재’와 마찬가지로 ‘헌법적 가치’과는 무관한 한국사회의 ‘반북정서’가 낳은 또 다른 ‘기형아’일 뿐이다.
‘반북정서’는 한반도의 비극적 현대사의 산물이며 절대 부정될 수 없는 한국정치의 ‘특수성’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19일 헌재의 통진당 해산결정에 대해 국민의 60.7%가 ‘올바른 결정’이라고 답한 반면 ‘무리한 결정’이라는 의견은 28.0%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p). 이러한 조사결과는 우리사회 내부의 뿌리 깊은 ‘반북정서’를 고려하면 ‘올바른 결정’이란 답이 예상보다 낮은 편이다.
분단과 전쟁의 상처로 형성된 한국사회의 ‘반북정서’는 정당이나 정파들 간의 정치적인 싸움의 수단이 되는 것은 현실적이고도 당연하다. 각 정파들이 국민들을 상대로 정치적 수단으로서 이를 ‘이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반북’이 ‘민주주의와 인권’이란 인류보편의 가치이자 대다수 국가들이 헌법적 가치로 수용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훼손할 순 없다. 이는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본말전도(本末顚倒)’이며 심각한 민주주의의 후퇴이다.
이러한 본말전도는 역사적으로 횡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주의 국가들이 내세운 ‘인민민주주의’이다. 북한은 지금도 이를 국명에도 넣어 ‘인민공화국’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여기엔 ‘당’과 ‘계급독재’란 가치가 ‘민주주의’를 훼손해 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의 ‘유신독재’는 본말전도의 전형이다. ‘반공’과 ‘북한의 위협’을 막기 위해 ‘종신 대통령’을 옹립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유보시켰다. 그러면서도 그 이름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명했다. 무식한 국민을 가르치겠다는 ‘교도적 민주주의’를 내건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독재체제도 비슷한 예이다.
지금 박 대통령이 ‘종북’과 ‘반북’을 기치로 정치적 반대진영을 공격하는데 머물지 않고 이를 ‘헌법적 잣대’로 해 ‘정당해산’을 하고 ‘정치사상의 자유’까지 박탈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훼손한 20세기 독재자들의 전철(前轍)을 밟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강변하는 것은 ‘지록위마’일 따름이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은 이를 한국사회의 ‘분단의 특수성’을 감안한 조치라고 주장하겠지만 ‘특수성’이 ‘보편적인 민주주의의 가치’에 앞설 순 없다. 북한이 자신의 잘못된 ‘세습 유일영도체제’를 우리와 비슷하게 ‘분단의 특수성’에서 찾고 설명하지만 세계 어디도 이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통진당 해산이 있던 19일 <국제앰네스티>는 ‘정당 해산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또 다른 신호’라는 논평을 통해 “(한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가장해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축소 시켰다”고 평가한 것은 ‘인류보편의 시각’에서 타당한 지적일 수밖에 없다.
로젠 라이프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사무소 조사국장은 “통진당 해산은 당국이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존중할 의지가 있는지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한다”며 “정당 해산은 극도로 자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국자들이 반대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이용하고 있다”며 “국가 안보를 들어 정치적 반대자의 표현의 자유를 부정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덧붙였다.
<뉴욕 타임스>나 영국 <비비시>(BBC) 방송 등 주요 외신들도 이번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이 한국에서 표현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반북’을 헌법적 가치로 삼으려는 박 대통령의 ‘지록위마(指鹿爲馬)’에 대한 외신들의 뼈아픈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