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시대 장기화될 수도...최악의 경우 배럴당 20달러까지 점쳐

전문가들 사이에 국제유가가 당분간 약세를 지속할 것이란 데 이견은 없다.

유가 하락이 공급과잉 탓도 있지만 경제 불황과 저성장 기조로 인해 수요가 예전보다 부진해 가격 반등 요인이 많지 않다는 분석 때문이다.

에너지미래포럼(대표 이재훈)은 지난달 23일 새해 첫 행사로 ‘저유가의 영향과 대응 전략’을 각계 전문가들과 논의하며 이같이 진단했다.

참석자들은 지금의 저유가 상황이 적어도 올해 말까지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 유가는 예측 불가한 면이 있었지만 현재로선 변수가 적고 공급과잉과 함께 중국 성장세 둔화 등 수요 부진 가능성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보센터장은 지난해 유럽과 OECD의 석유 소비가 감소한 사례를 들며 적어도 1년 정도의 저유가 시기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보다 더 장기간에 걸쳐 저유가가 계속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정용헌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점차 세계 에너지 소비 시장이 석유에서 다른 자원으로 이동하는 구조적 현상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에너지 소비의 상당 부분이 전력으로 바뀌고 있고, 생산원료도 석유보다는 가스가 많이 쓰인다는 분석이다. 정 연구원은 공급이 줄어든다 해도 시장의 구조적 수요 감소로 과거 같은 고유가 시대가 오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김준 SK에너지 본부장은 국제유가가 60달러선 정도를 유지하기를 기대하면서도 최악의 경우 20달러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 경우 정유사는 재고 평가 하락이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규제 완화와 공정 경쟁 환경을 조성해 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스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하반기부터 OPEC을 중심으로 유가 조절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상반기 유가는 35~55달러 수준, 하반기 이후 유가는 50~70달러 수준을 예상했다.

천원창 신영증권 연구원은 최근 국제유가가 등락을 반복하는 가운데 1분기 중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격이 배럴당 40달러를 밑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달 22일 보고서에서 "아직 본격적 생산 감축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1분기 중 유가는 더 하락할 것"이라며 "가격 반등을 위한 OPEC과 비전통 원유의 생산 감축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WTI 기준 40달러를 하회할 가능성이 높지만 공급과잉이 하반기부터 완화될 전망이며 유가 반등은 2분기부터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유가가 30달러선까지 떨어지면 오히려 세계경제 침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조사결과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22일 미국 경제전문 마켓워치는 미국 투자회사 컨버젝스(ConvergEx) 그룹이 최근 306명의 투자자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 국제유가가 얼마나 떨어지느냐에 따라 앞으로 세계경제의 침체 여부가 결정된다고 보도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68%는 국제유가가 더 떨어질 여지가 있다고 봤으며 20%만이 바닥을 쳤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28%는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떨어질 때 세계경제가 침체 국면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16%가 배럴당 35달러 밑으로 떨어질 때 경기가 침체될 것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셀사이드(sell-side·증권업계), 헤지펀드 관계자였고, 25%는 은행, 브로커 딜러 등 바이사이드(buy-side·운용업계)였다.

하지만 정작 글로벌 분석에 정평이 있는 세계은행(WB)은 국제유가가 언제 회복될 것인지 구체적인 시기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날 또 마켓워치는 세계은행(WB)이 지난해 6월 대비 현재 반토막난 국제유가가 회복될 것이라면서 올해 석유 등 에너지, 금속, 곡물 등 주요 9개의 물가지수가 모조리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보도했다. 주요 상품가격지수가 모두 하락한 것은 12년만에 처음이다.

존 바프스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금까지 석유수출기구(OPEC)가 국제 원유 가격을 조정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최근 미국 셰일업체, 캐나다 오일샌드 등의 공급량이 늘면서 더이상 불가능하게 됐다”고 분석하고, "다만 이들 업체들은 원유 생산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선에서 유지되다가 60~70달러선으로 회복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회복시기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미 미국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석유 시추활동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5일 이후 5주동안 유전 시추기 숫자는 154개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셰일가스 업체들이 최근의 유가 급락으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다. 미국 휴스턴의 오일 정보서비스업체 베이커 휴스(Baker Hughes)는 올해 1월 9일 기준 미국에서 채굴 활동중인 석유·가스 시추기는 육상+해상 총 1천750개이며 그 중 석유 시추기는 1천421개로 집계됐는데 이는 2014년 2월 중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라고 밝혔다.

베이커휴스는 1944년부터 매주 미국내 원유 및 가스 시추공 숫자를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을 추정해볼 수 있는 기초자료다.

글로벌 은행 Credit Suisse도 향후 12개월~19개월에 걸쳐 전 세계 시추기 수는 15~20% 정도 감소하고, 이에 따라 OCTG(유정용 및 송유관용 강관) 가격이 최대 20% 가량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내 셰일오일 시추공은 지난 2008년 셰일오일·셰일가스 탐사가 본격화됐을 때 2천31개로 급격히 늘어났다가 이후 1천800~1천900개 수준을 유지해 왔다.

이번 셰일오일 시추공의 급감은 최근 국제유가가 장기간 급락하면서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던 셰일오일의 경제성이 떨어지자 미국 내 셰일 생산업체들이 생산량을 줄이려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들어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업체 WBH에너지가 파산을 신청했고, WHP인터내셔널과 엔데버인터내셔널, 호주 업체로 미국에서 셰일가스를 생산해 온 '레드포크' 또한 파산보호 신청을 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셰일가스 업계의 절반은 손익분기점이 배럴당 60달러에서 75달러 수준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올해 국제유가의 바닥은 40~50달러에서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확산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올해 유가 전망치를 40달러로 낮춰잡고 예산안을 편성했으며 대부분 중동 국가들도 올해 유가를 50달러 내외로 추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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