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막기’에 ‘갈아타기’ 인사, ‘정치공작’ 이력 논란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후임으로 우여곡절 끝에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이 최종 낙점됐다. 열흘 동안 ‘경제 살리기’, ‘정국관리’ 등 여러 콘셉트로 15여명의 인물이 거론됐지만 예상과 동떨어진 인사를 발탁됐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현직 국정원장을 빼다가 돌려막는 인사를 단행하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선택은 청와대가 어떠한 말로 해명해도 여론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집권 3년차부터 ‘돌려막기 인사’를 감행한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인데다 이병기 비서실장이 과거 대선에서의 ‘정치공작’에 연루돼 있는 것도 문제다. 단순히 야권의 반발을 사는 인사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과연 집권 3년차 ‘청와대 쇄신’에 맞는 인물인가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만 키울 수 있다.

여기에 이병기 실장 임명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민경욱 대변인이 이날 오전 비서실장 인선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곧바로 여권발 보도로 현명관 회장 비서실장 임명설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경제살리기’란 집권 3년차 국정운영목표에도 부합하는 데다 박 대통령과 현 회장이 전화통화까지 했다는 말까지 겹쳐지면서 오후 발표될 비서실장은 현 회장으로 확정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후 현 회장에 대한 인적사항이 본격적으로 스크린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민감한 의혹들이 줄줄이 밟히면서 청와대 내부 기류가 변하고 있다는 말들이 청와대에서 흘러나왔다. 이에 청와대 기자들 내에서도 자칫하면 이날 중 비서실장 인사 발표도 물 건너가는 것이 아니냔 얘기까지 나왔다.

이 경우 오전에 비서실장 인선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공개한 청와대는 더 큰 곤경에 처할 것이고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은 또 다시 도마에 오르면서 박 대통령의 ‘불통-수첩인사’ 논란이 재차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병기 비서실장 임명은 현명관 임명설을 급하게 덮기 위한 ‘갈아타기 인사’가 아니냔 의심을 들게 했다. ‘돌려막기’인사에다 ‘갈아타기’ 인사란 비판까지 겹치는 대목이다.

이러한 잡음거리보다 더 큰 문제는 청와대는 이병기 실장 임명으로 집권3년차에 맞춘 ‘청와대 개편’이란 소기의 목적조차 달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점이다. 이병기 신임 실장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비슷하게 야권이나 국민들이 보기엔 ‘정치공작’의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청와대의 비서실장 인선발표가 있자마자 국회 브리핑을 열고 “사상 유래 없는 잘못된 인사”라고 혹평하며 “소통과 국민 통합에 매진해야 할 비서실장에 현직 국정원장을 임명해서 정보정치, 공안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을까”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음지에서 일하는 정보기관의 수장을 국정운영의 중심인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은 사상 유례 없는 잘못된 인사”라며 “인사혁신을 통해 국정운영기조를 바꾸라는 국민의 요구를 거부한 불통 인사이며, 국민 소통과 거리가 먼 숨 막히는 회전문 인사”라고 숨이 가쁠 정도로 이병기 실장 임명에 날을 세웠다.

야권의 ‘정치공작’에 강한 경계심, ‘김기춘 시즌2’ 우려

이러한 야당의 우려와 경계심은 이병기 실장의 이력을 보면 이해가 된다. 이 실장은 단순히 박 대통령이 신임해온 친박 핵심그룹 중 한 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보공작과 정치공작에 능한 인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8회) 출신이나 1981년 노신영 전 장관 주선으로 12,12 쿠데타 실세인 노태우 정무장관의 비서관으로 가면서 외교관의 길을 접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긴 시간을 호흡했고 1988년 대통령 취임 후에는 의전수석비서관을 맡았다.

1992년 대선국면에서는 김영삼 정권의 출범에 기여했고 이에 따라 김영삼 정부에서 해외와 북한을 담당하는 안기부 2차장으로 기용돼 활동했다. 1997년 대선 국면에서 그는 2차장으로서 ‘북풍(北風)’ 공작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아직도 받고 있다. 당시 안기부는 김대중 후보를 비방하는 기자회견을 했던 윤홍준씨에게 20만 달러를 제공했는데 당시 안기부 2차장 산하 해외조사실이 이를 실행했기 때문이다.

1998년 안기부 북풍사건 검찰수사 이후 정치에서 거리를 둔 이병기 실장은 지난 2001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정치특보로 복귀해 2002년 대선국면에서 이 실장은 한나라당 지도부의 요청에 따라 당시 자민련 부총재였던 이인제 의원 측에 활동비 5억원을 전달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병기 실장의 ‘공작’ 여파인지 이인제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하고 자민련에 입당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이병기 실장과 박 대통령의 인연은 과거 노태우 정권 시절 의전비서관으로 일할 때 맺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대통령과 직접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2004년 총선 국면이었다. 당시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을 구하기 위한 ‘천막당사’ 아이디어가 이병기 실장에게서 나왔다. 그럼에도 2004년 총선에서는 2002년 대선과 관련한 ‘공작’문제로 배제됐지만 수시로 박 대통령에게 조언을 하는 관계를 형성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기 실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선대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여의도연구소 상임고문을 맡는 등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항상 분류돼 왔고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주일대사로 임명됐고 지난해 6월 국정원장에 발탁됐다.

야권으로선 이러한 이력의 김 실장의 발탁을 김기춘 비서실장에 이은 ‘김기춘 시즌2’로 바라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정원 대선개입 정국으로 정권이 위기에 몰린 지난 2013년 8월에 임명되면서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등으로 ‘공안정국’을 조성했듯이 이병기 실장 또한 비슷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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