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물타기 수사, ‘부패와의 전쟁’ 무덤으로 이끄는 지름길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국민안전처 회의실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현안 점검회의에서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여야 정치권 전체를 겨냥해 ‘정치개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사진=연합뉴스)
▲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국민안전처 회의실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현안 점검회의에서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여야 정치권 전체를 겨냥해 ‘정치개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정찬 기자]박근혜 정부 3년차 정국 운영전략의 ‘중심’은 ‘부패와의 전쟁’이다. 이는 지난해 말 정윤회씨 문건 사건 등으로 30%선까지 곤두박질 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려 집권 3년차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청와대의 전략이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박근혜 정부 3년차 국정운영 전체가 무너져 내릴 위기다. ‘성완종 블랙리스트’가 이완구 국무총리와 허태열-김기춘-이병기 등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과 홍문종, 유정복, 서병수 등 박근혜 정부 친박실세 7인들이 ‘부패의 몸통’으로 가시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애초 정부와 청와대가 기획한 ‘부패와의 전쟁’은 자원외교 비리 의혹 등에 대한 검찰수사를 통해 노무현-이명박 등 과거정권의 ‘부패’를 드러내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내고자 했으나 거꾸로 현 정권의 부패와 비리문제가 먼저 도마에 오르면서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무엇보다 부정부패 척결의 ‘전도사’이자 간판인 이완구 총리가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천만원의 금품을 건네받았다는 의혹에 대한 진상이 갈수록 ‘점입가경’으로 빠져들면서 집권세력의 ‘부패와의 전쟁’은 ‘용두사미(龍頭蛇尾)’는커녕 시작도 못하고 당장 멈출 상황이다.

이완구 총리는 지난 3월 12일 부패와의 전쟁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정부패 척결이야 말로 내각을 통할하는 국무총리로서 최우선 책무”라면서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 ‘부패와의 전쟁’을 통해 구조적 부패의 사슬을 과감하게 끊어 내겠다”면서 “부패에 관한한 철저한 ‘무관용 원칙’에 따라 다시는 부정부패가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근절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자신이 가장 먼저 이러한 ‘무관용 원칙’의 철퇴를 맞아야 한 판이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3월 17일 이완구 총리가 참석한 국무회의 석상에서 “우리 정부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오랫동안 쌓여온 부정부패 등 각종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라며 “이번에야말로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서 그 뿌리가 움켜쥐고 있는 비리의 덩어리를 드러내야 한다”고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과거 정권 비리를 캐 현 정국의 국정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 달 전에 시작한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맞춘 이완구 총리의 ‘부패와의 전쟁’은 이번 달 9일 성완종 회장의 죽음으로 애초의 정치적 의도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과거 정권 비리에 대해선 손도 대지 못한 채 현 정권 실세 비리로 그대로 옮겨 탔다. 그러면서 금품수수 의혹의 도마에 이완구 총리는 불과 한 달 만에 ‘부패와의 전쟁’ 총책임자에서 ‘식물총리’로 전락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친박실세게이트’로 확산되자 자신의 당혹감을 “최근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 문제는 정치개혁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고 넘어가야 할 일”이라는 애매한 태도를 내보였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입장은 ‘친박실세’의 문제라기보다는 여야 정치권 전체의 문제로 바라보는 태도에 가깝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우리 정치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한번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며 과거 정권 비리에 ‘현재 비리’를 더한 ‘부패와의 전쟁’을 주문했다.

그러나 지금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부패’를 다스리지 못한 ‘현재 권력’이 ‘과거 권력의 부패’을 칠 수 없다는 역사적 진리와 대면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과거와 현재의 부패를 동시에 척결하겠다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선행적으로 ‘친박실세 7명’에 대한 엄중한 처리가 전제돼야만 ‘과거권력의 부패’를 손댈 수 있기 때문이다.

성완종 물타기 수사, ‘부패와의 전쟁’ 무덤으로 이끄는 지름길

국민들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한국갤럽이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자유응답 방식으로 최근 언론에서 다뤄지는 뉴스 중 가장 관심이 가는 일이 무엇인지 물은 결과 44%가 ‘성완종 전 회장 사망 및 리스트 파문’을 첫손으로 꼽았다. 두 번째가 지난 16일로 1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 관련 뉴스’(13%)였고 ‘자원외교 비리 수사’는 0.6%에 불과했다.

이처럼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인 이유는 ‘현재권력’의 비리문제를 국민 다수가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거권력의 비리문제인 자원외교 비리수사에 대한 관심도는 반대급부로 크게 떨어진 것이다.

또 지난 3월 12일 이후 청와대와 정부가 손발을 맞춰 ‘부패 척결’을 선언하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난 4월 1주차에 갤럽 기준으로 40%에 도달한 것은 과거 정권 부패 척결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이 반영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기대감의 근저에는 박근혜 정부의 ‘도덕성’은 살아 있다는 일정한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했다.

박 대통령 지지율 또한 4월 둘째 주(7~9일) 성완종 파문이 반영되기 전 조사에서 39%였으나 불과 1주일 만인 지난 주 34%로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박근혜 정권의 ‘도덕성’에 대해 국민들의 회의감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친박실세 7인’에 대한 단죄의지를 보이기보다는 ‘미적’대는 행보를 보였다. 지난 16일 중남미 4개국 순방길에 나서기 직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만나 초미의 관심사인 이완구 총리 처리문제를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야 검토하겠다면서 중요한 국정현안을 뒤로 미뤘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자신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이병기 비서실장의 연루혐의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또한 유정복-서병수-홍문종 등 친박실세들의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서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의혹이 불거졌다는 이유만으로 유감표시 및 비리 의혹 연루자에 대한 현직 사퇴를 종용한 과거 대통령의 모습과는 달랐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태도가 제대로 시작도 못한 ‘부패와의 전쟁’에서 현 정권의 ‘패배’를 자초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기류에 편승해 <조선일보>가 연일 성완종 파문과 관련해 야권 인사 연루설을 흘리며 ‘현정권 실세 비리문제’를 ‘여야 정치인’의 문제로 확대하면서 이른바 ‘물타기’하는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19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친박뇌물게이트’의 실체가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낀 부정부패연루세력의 조직적인 ‘물타기’ 시도”라며 “물타기, 시간끌기 시도는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전 국민적인 분노와 저항만 가속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정치연합의 반발에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이날 국회브리핑을 통해 “‘야당 의원 연루설’ 보도에 물타기 수사 운운하며 검찰 흔들기를 시도하고 있다”며 “야당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야당인사에 대한 ‘보호막’을 치지 말라. 정치공세로 수사에 간섭하는 자체가 정치권 외압”이라고 맞받으며 ‘정쟁’으로 몰아갔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드러난 현재 권력의 비리를 엄단하기보다는 박 대통령의 언급처럼 ‘정치개혁’의 차원으로 여야 모두의 문제로 비화해 희석, 물타기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 새누리당, 검찰, 보수언론이 합작한 희대의 ‘성완종 리스트 물타기’다.

이러한 물타기는 박근혜 정부 3년차에 의욕적으로 출발한 ‘부패와의 전쟁’을 무덤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역사적으로 부패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주체는 ‘도덕성’을 갖춰야만 국민의 신뢰 속에서 이를 수행할 수 있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는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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