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전방위적 ‘자진사퇴’ 압력, 반전 실마리도 안보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는 이완구 총리(사진=폴리뉴스 이은재 기자)
▲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는 이완구 총리(사진=폴리뉴스 이은재 기자)
[폴리뉴스 이성휘 기자]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된 이완구 국무총리가 20일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2월 17일 제 43대 국무총리에 취임한 지 불과 62일 만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사의 표명 시점만 따지면 역대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국무총리실은 21일 이 총리가 중남미 4개국을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오는 27일 귀국 후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21일 예정돼 있던 국무회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경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신 주재할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언론외압의혹’, ‘병역비리의혹’, ‘부동산투기의혹’ 등에 시달렸던 이완구 총리는 2월 16일 국회 본회의장 표결에서 찬성률 52.7%로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이후 이한동 총리(찬성률 51.1%)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찬성률로 간신히 턱걸이 인준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박근혜 정부의 실세책임총리로 자리매김하며 차기 여권 대권주자의 자리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주가를 올렸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권의 자원외교의혹 등을 표적으로 한 ‘부패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과정에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궁지에 몰렸다.

성 전 회장은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2013년 4월 충남 부여·청양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이 총리의 선거사무실에서 3000만 원을 전달했다”며 “이 총리야말로 사정대상 1호”라고 폭로했고, 현 정권 핵심인사들이 망라된 소위 ‘성완종 리스트’에도 이 총리의 이름을 올렸다. 

이에 이완구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성 전 회장과 잘 아는 사이가 아니다”며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라고까지 말하면서 결백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 총리의 전직 운전기사인 윤모씨의 ‘성 전 회장과 이 총리가 선거사무실에서 독대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이 총리의 주장과는 달리 그가 성 전 회장과 밀접한 사이였다는 각종 정황증거들이 언론보도를 통해 나오기 시작하면서 여론은 극도로 악화됐다. 

당장 새정치민주연합등 야당은 이완구 총리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며 이 총리 해임건의안을 오는 23일 국회에 제출하는 것을 공식화하는 등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결국 박 대통령은 16일 해외순방 출국 직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의 긴급단독회동을 통해 이 총리의 거취에 대해 “돌아와서 결정하겠다”고 밝혀 이 총리는 사실상 ‘시한부 총리’, ‘식물총리’의 처지에 몰렸다. 

새누리당 내부 기류도 타이밍의 문제일 뿐 이 총리의 ‘자진사퇴’는 피할 수 없다는 분위기로 기울었다. 당초 박 대통령이 귀국할 때까지는 기다려야한다는 것이 당의 공식입장이었지만, 4.29 재보선을 앞두고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여론에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다.

당 지도부는 20일 오전 서울 관악을 오신환 선거사무소에서 가진 선거대책회의 비공개회의에서 ‘이 총리의 자진 사퇴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당내 개혁성향 초·재선 의원모임인 ‘아침소리’도 같은 날 “이 총리가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박 대통령이 귀국하기 전에 거취에 대한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며 야당의 해임건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찬성하겠다는 뜻도 내비췄다. 

하루 전인 19일, 4.19 기념식 때만 해도 “차질 없이 국정을 수행하겠다”며 박 대통령 귀국 때까지 총리직 유지 의지를 드러냈던 이 총리가 조기 자진사퇴를 고민한 것도 이 시점인 것으로 보인다. 

언론을 통해 매일 각종 의혹들이 터져 나오지만 악화일로인 여론을 반전시킬 카드도 마땅히 없는 상황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해임건의안에 찬성하겠다는 의견이 20일을 기점으로 공개적으로 분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버텨봤자 이 총리 개인의 상처만 더욱 커지고, 집권3년차를 맞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도 더욱 어려워진다는 판단에 박 대통령의 귀국을 기다리지 않고 선제적으로 총리직을 던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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