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는 사면제도 개선 추진, 권력의 사유화

어제가 어린이 날이어서 공휴일임에도 정부는 특별사면 제도 개선 관계기관 회의를 열었다. 집에는 어린이들도 없는지 각 부처 관계자들이 다 모였다. 마치 긴급 위기상황을 맞아 비상대책회의라도 여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다음 달까지 특별사면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다들 알다시피 박근혜 대통령이 특별사면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긴급하게 소집된 회의이다.

우선 대통령이 한마디 하자마자 속전속결로 정부 차원의 회의를 여는 장면 자체가 거북하다. 지금 특별사면 제도 개선 문제가 그렇게까지 시급을 다투는 일인가. 그렇다면 이제까지는 어째서 아무 소리없다가 이렇게 갑자기 요란을 떨고 있는 것인가.

그 배경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정권 실세들의 비리 의혹이 대두되자, 어떻게든 야당 쪽의 문제를 부각시켜 국면전환을 이루겠다는 대통령의 결기가 특사 제도 개선론에는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강조한 정치개혁의 첫 카드로 특사제도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자기 측근들의 비리 연루 의혹에 대해 책임을 통감해야 할 대통령이 순식간에 정치개혁의 기수로 둔갑한 모습이다. 참으로 대단한 재주이다.

박 대통령의 논리대로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성완종 전회장을 사면시켜주었기 때문에 그가 박근혜 정부 사람들에게 불법 자금을 주었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모든 것은 ‘노무현 탓’이다. 억지이고 궤변이다. 박근혜발 특사제도 개선론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있었던 성완종 특사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야당 측을 수세로 몰아넣겠다는 꼼수가 깔린 국면전환용 카드이다. 따라서 대단히 정략적인 술수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신들을 위기에서 구출하고 야당을 공격하기 위해 국정을 이렇게까지 정략적으로 운영해도 되는 것인지,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게 된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특사제도 개선을 이렇게 당당하게 외칠 처지가 되지 못한다. 19대 국회에서 사면법 개정에 관한 논의가 있었을 때 야당 의원들의 대통령 사면권 제한 요구에 대해 새누리당 의원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한 정부도 사면권 제한은 위헌 논란의 소지가 크다는 반대 의견을 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던 정부와 여당이 성완종 특사 의혹을 부각시키려는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허겁지겁 사면제도 개선을 외치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꼴볼견이다.

그동안 대통령의 사면권 제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그것대로 시간을 갖고 논의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이 시기에 대통령이 나서서 사면권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행태이다. 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사면행위는 그 적절성에 대한 정치적 비판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범죄행위의 아무런 단서조차 없는 상태에서 진상규명 운운했던 것부터가 초헌법적인 발상이었다. 대통령 사면의 정치적 적절성을 어떻게 검찰이 나서서 판단하는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대통령 개인의 비논리적이고 정략적인 지시에 정부 관계자들이 공휴일에 허겁지겁 모여 춤추는 광경을 보니 국격을 생각하는 국민으로서 낯이 뜨거워진다. 권력의 사유화라는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일게다. ‘짐이 곧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런 식으로 나라를 운영해서는 안된다. 무슨 나라가 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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