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사정’ 앞세운 국정운영 예고, 野 “야당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

[폴리뉴스 정찬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이완구 국무총리 사퇴 25일 만인 21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했다. 집권 3년차 국정운영 변화를 도모하기보다는 지난 1, 2년차의 정국운영 방식을 변함없이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공표한 것이다.

이번 박 대통령의 인선과정에서 드러난 특징을 보면 국민들의 신임 총리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떨어진 점이다. 언론들 또한 이를 반영한 듯 과거처럼 연일 쏟아내던 후보자 인선 예상 보도의 비중을 낮췄다. 그만큼 국민들이나 언론 모두 박 대통령이 향후 국정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이다. 황교안 후보자 지명은 이 예상을 적중시켰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총리 후보자 내정이 국민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현실 자체이다. 이를 달리 국민들이 임기가 2년 반 이상 남은 현 정권에 더 이상의 기대를 걸지 않고 ‘체념’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박 대통령은 변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대통령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총리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보다도 못하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매 정부 출범 때나 중요한 정치적 고비 때 마다 총리 인선에 남 다른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이것이 지니는 고유한 정치적 의미에 있다.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가치, 그리고 향후 국정운영의 방향 등이 총리로 선택되는 ‘인물’을 통해 국민에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박 대통령의 이번 선택은 집권 1, 2년차 국정운영기조의 연장을 위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 공백 메우기’로 읽혀진다. 청와대는 황 후보자의 내정에 대해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고,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정치개혁을 이룰 수 있는 적임자”라고 강변했지만 ‘황교안’이란 인물이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김기춘 대용’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황 후보자에게서 국민들이 바라는 남북관계 질적 변화나 지역갈등 해소와 국민통합, 대립정치 청산을 위한 정치혁신, 경제개혁, 사회적 불평등 해결, 후퇴한 민주주의의 진전, 기득권 철폐, 경제민주 실현 등 넘쳐나는 당면 국가과제나 가치들을 떠올릴 수 없다. 오로지 ‘칼’과 ‘사정(司正)’ 밖에 떠올릴 것이 없다.

황 후보자 내정소식을 두고 모든 언론들이 ‘사정정국 예고’로 해석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청와대는 “경제 재도약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부정과 비리, 부패를 척결하고 정치개혁을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지만 경제 재도약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사정정국’을 펼쳐야 한다는 설명은 ‘논리 비약’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은 황 후보자를 통해 ‘정치개혁’을 얘기했으나 이를 달리 검찰 중심의 사정의 ‘칼’을 휘둘러 정치권을 옭아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범위를 넓히면 자신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이나 국민들에게는 ‘공안정국’이다. 지난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정국과 2014년 세월호 정국에서와 같이 앞으로도 ‘진영정치’를 펼치겠다는 대국민선언에 가깝다.

야권, 야당에 대한 선전포고이며 공안통치 선언한 것 반발

황 후보자는 지난 2년간 김기춘 전 실장이 주도한 ‘공안통치’의 핵(核)이었다.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검찰수사 때 청와대와 손발을 맞춰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를 감행하고 ‘검찰 길들이기’를 통해 수사를 방해해왔다는 야권의 비난을 받고 있다. 또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해 ‘공안정국’ 조성의 한 축으로 기능했다. 2년간의 법무부 장관으로서 행보를 보면 ‘김기춘 전 실장’과 호흡 맞추기에 급급했다는 평가이다.

이러한 이력의 황 후보자 지명에 야권은 반발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21일 “공안통치를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고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황교안 장관은 국정원 댓글 사건 축소 은폐 의혹으로 야당이 최초로 2번씩 해임건의안 제출을 한 사람”이라며 “이 분을 총리로 내정한 것은 야당에 대한 선전포고이자 국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공격했다.

정의당 김종민 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채동욱 전 검찰총장 내사, 정당해산 심판 등의 사건에서 진실과 정의가 아닌 박근혜 대통령과 이 정권에 충성을 다 해 온 인물”이라며 “더욱이 공안검사 출신을 정부의 수장에 앉히겠다는 것은 집권 후반기 공안통치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어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러한 야권의 반발은 박 대통령의 향후 국정기조가 야당과의 타협보다는 지금까지와 같은 대결의 정치를 하겠다는 신호로 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검찰을 ‘정권 보위’의 첨병에 세워 야당을 압박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이 물러나면서 ‘공안통치’의 그늘이 걷힐 것으로 기대했으나 황 후보자의 총리 등극으로 이를 접은 야당의 반발은 거셀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성완종리스트 검찰수사에 대한 야당의 불만 또한 큰 상황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황 후보자 내정에 대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은 “잘 된 인사”라고 얘기하고는 있지만 흔쾌한 환영의 뜻을 나타내진 않고 있다. 공식 논평을 통해 “총리로서 법치주의 확립을 기반으로 국가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며 차분하게 수용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황 후보자의 인선으로 청와대가 ‘검찰’을 전면에 내세워 정국주도권을 행사하려는 것이 아니냔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

전관예우-병역-삼성 떡값 의혹 등으로 인사청문회 격돌 예고,

이러한 박 대통령의 ‘김기춘 공백 메우기’는 인사청문회장에서의 격돌로 이어질 조짐이다. 황 후보자가 지난 2013년 2월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 문제로 거론된 사안들이 다시 불거지면서 과연 부패와 비리를 척결하는 적임자인지 여부가 도마에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에 야당은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등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황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들을 제대로 짚질 않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또 당시에는 새 정부 출범까지 겹쳐 있어 야당은 발목 잡기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따라서 야당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황 후보자에 대해선 ‘봐 주기’한 측면이 있었다.

먼저 전관예우 논란이다. 이는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와 비교되면서 자격시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황 후보자는 2011년 8월 검찰에서 퇴직한 직후인 9월 법무법인 ‘태평양’에 들어가 법무장관에 내정되기 전인 2013년 1월까지 16개월 동안 16억 원의 보수를 챙겼다. 안대희 전 후보자나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자 낙마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또 황 후보자는 자신의 병역면제 문제도 걸림돌이다. 황 후보자는 1977년부터 79년까지 3차례 징병검사를 연기하다 80년 제2국민역(5급) 판정을 받았다. 만성담마진이라는 두드러기 질환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이다. 그리곤 이듬해인 8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를 두고 국회 인사청문특위는 재차 검증할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황 후보자는 이른바 ‘삼성 떡값’ 수수 의혹도 가지고 있다. 본인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1999년 그가 서울지검 북부지검 5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삼성 그룹 변호사였던 김용철씨로부터 15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서 병역과 전관예우, 그리고 삼성 떡값 논란 중 어느 것 하나도 쉽게 넘어갈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김기춘 공백 메우기’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부터 여야간 대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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