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총 공개처형과 졸아서 죽었다는 내용은 국정원의 과잉 언론플레이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북한 내 군부 2인자의 숙청과 처형 소식을 접하고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21세기 개명된 세상에서 그런 비정상적이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이다. 너무나 당혹스러운 나머지 일각에서는 숙청 보도를 믿지 않거나 국정원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놀라움과 의아함을 넘어 현영철 숙청과 관련해 우리는 균형된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불안정이 더해가는 북한일수록 한쪽에 치우치거나 과도한 기대로만 들여다보지 말고 최대한 객관적인 접근과 균형적인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 북한의 실상과 향후 북한의 미래에 대해 정확히 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영철 숙청과 관련한 첫 번째 논란은 사실 여부와 국정원의 태도에 대한 것이다. 숙청 이후에도 기록영화에 현영철이 등장하고 있고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가 숙청 사실을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현영철의 숙청이 사실이 아니거나 해임되었더라도 공개처형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국정원이 정식으로 청와대에 보고하고 국회 정보위에 알리는 수준이라면 종합적인 판단과 상호 교차 체크를 통해 적어도 숙청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2011년 김정일 사망처럼 국정원이 북한 내부의 결정적 동향을 제때 파악하지 못한 적도 있다. 그러나 장성택 숙청처럼 이미 국정원이 확신을 갖고 판단을 내린 경우라면 신빙성을 최소한 갖추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만 숙청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고사총에 의한 공개처형은 여전히 확실한 정보가 아닌 첩보 수준임을 구분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현영철 숙청과 관련해 국정원의 브리핑과 언론 플레이가 바람직한 것이었는지는 분명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국가 정보기관으로서 불안정한 북한 내부 동향을 항상 면밀히 예의주시하는 것은 당연한 임무이자 역할이다. 그러나 매번 민감한 권력 동향을 포착할 때마다 국회 정보위에 보고하고 여야 간사들이 이를 통해 언론에 통째로 전달하는 행태가 과연 남북관계에 유리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 권력의 이상 징후를 신속하게 포착하고 대통령과 유관기관에 보고하는 것은 응당 해야 할 일이지만 국정원이 언론사 속보 경쟁하듯 정보를 흘리는 것은 분명 온당치 못한 일이다. 더욱이 확실한 ‘정보’로 분류된 것뿐만 아니라 엄밀한 분석과 판단이 요구되는 ‘첩보’ 수준까지도 가감없이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우리 내부의 대북인식을 왜곡시키는 측면은 분명 경계해야 할 일이다. 현영철 숙청이라는 사실보다 아직 첩보에 불과한 고사총 공개처형과 졸아서 죽었다는 내용이 오히려 대서특필되는 기현상도 그 때문이다. 6-8월의 남북대화 모색 국면에서 국정원의 이같은 과잉 언론플레이는 분명 우리의 대북인식과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현영철 숙청과 관련한 두 번째 논란은 김정은식 공포정치의 효용에 관한 것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고위급의 잦은 처형 소식은 김정은 체제가 고강도의 공포정치로 유지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잔혹한 숙청과 무자비한 처형이 권력 엘리트들과 주민들에게 공포를 유발시켜 독재자의 권력장악을 용이하게 한다는 분석은 일견 맞는 말이다. 공포는 피지배자로 하여금 결코 권력에 저항할 수 없게 하는 묘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도 군주는 사랑을 베푸는 것보다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 효율적인 통치임을 간파한 바 있다.

  그러나 김정은식 공포정치가 단기간에 정권의 안정성을 가져오지만 지나치게 장기간 지속되거나 근거없는 이유로 과잉공포를 조장할 경우 두려움은 통치자에 대한 미움으로 전환되고 미움은 결국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공포정치는 정권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이라는 동전의 양면을 갖는 셈이다. 향후 김정은 체제도 단기적 안정과 장기적 불안정이라는 양 측면을 정확히 봐야만 북한의 미래에 대해 우리가 올바른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영철 숙청과 공포정치에 대해 치우치지 않는 균형된 관점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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