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제물’은 불가피, 김무성도 파도에 휩쓸려 ‘칼’에 베일 위기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폴리뉴스 정찬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서슬 퍼렇게 날이 선 ‘칼’을 빼들었다. 박 대통령이 빼어든 칼날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향해 거침없이 날라 들어갔고 어느 누군가라도 베지 않고선 칼을 회수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박 대통령은 25일 오전 언론에 공개되는 국무회의 모두발언 중 국회법 개정안 부분에 이르러서는 목소리의 톤을 높이면서 유 원내대표를 직접적으로 겨냥했고, 아울러 김무성 대표와 비박계 의원까지 싸잡아 “배신의 정치”를 하고 있다면서 이들을 “심판해 달라”고 했다. 비박계가 이끄는 새누리당과는 정치적으로 결별도 불사하겠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의 강도와 수위, 그리고 비박계 의원들에 대한 섭섭함의 표현들을 볼 때 김무성 대표가 유 원내대표를 ‘희생의 제물’로 삼더라도 이번 사태의 고비를 제대로 넘어갈 지 여부도 불투명해 보인다는 점이다.

애초 25일 오전에 열린 국무회의는 정부로 이송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공식화하는 자리로 전망됐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대통령에 의해 개정안이 국회로 되돌려 보내지면서 비록 갈등과 논란의 여진은 있겠지만 점차 수습국면으로 나가는 중요한 계기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날 국무회의는 이러한 상상을 완전히 넘어섰다. 박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위헌성 문제를 언급함과 아울러 정치권에 대해 ‘유감’ 어린 질책을 할 것이란 예상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박 대통령은 이제까지 벼리고 벼리던 ‘칼’을 예고도 없이 불쑥 내던진 것이다. 그리곤 자신의 명을 어기고 도전한 수하 장수인 유 원내대표의 목을 본인이 직접 베는 초유의 상황을 연출했다.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들의 ‘칼’은 ‘칼집’만 슬쩍 보여줘 정치적 해결을 도모하거나 빼더라도 던지는 시늉으로만 자신의 ‘정치력’을 발휘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달랐다. ‘칼집’을 보여주면서 막전막후로 정치적 해법을 도모하지도 않다가 느닷없이 유 원내대표의 목에 칼을 휘둘렸다. 보통은 자기 측근진영의 대리자를 통해 일을 도모하지만 이조차도 없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뛴 지난 2012년 총선을 상기시키며 “정치적으로 (나를) 선거 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당을 함께 하는 인사들에게 할 수 있는 발언 수위가 아니다. 사실상 비박계 의원들을 ‘심판해 달라’는 뜻으로서 이들은 당을 함께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이 전제되지 않고선 나올 수 없는 수위의 발언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김무성-유승민 비박계 지도부를 단순히 주저앉히는데 만족하지 않고 이들과 아예 결별하겠다는 각오까지 묻어난다.

박 대통령은 나아가 “당선되기 위해 한 결 같이 말은 ‘다시 기회를 준다면, 다시 국민들이 기회를 주신다면 신뢰정치를 하고,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맹세에 가까운 선언을 했다”며 “그러나 신뢰를 보내준 국민들에게 그 정치적 신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저도 결국 그렇게 당선의 기회를 달라고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며 “그런 정치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민들뿐이고, 국민들께서 선거에서 잘 선택해 주셔야 새로운 정치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거듭해 비박계 의원들에 대한 심판을 강조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 여야합의를 이끈 유 원내대표를 직접 겨냥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 정치사를 보면 개인적인 보신주의와 당리당략과 끊임없는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뒤흔들어 놓고 부정부패의 원인제공을 해왔다. 이제는 개인이 살아남기 위한 정치를 거두고 국민을 위해 살고 노력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면서도 유 원내대표가 주도한 국회법 여야합의에 대해선 “그 상생의 정치에 국민들을 이용하고 현혹”한다고 쏘아붙였다.

아울러 “국회와 정치권에서 국회법 개정 이전에 당연히 민생 법안의 사활을 건 추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묶인 것들부터 서둘러 해결되는 것을 보고 비통한 마음마저 든다”며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의 경제살리기에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라고 유 원내대표를 공격했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유 원내대표의 정치행위를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면서 “여당에서조차 민생법안을 관철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거부권 행사의 이유를 밝혔다.

여당 정치적 후폭풍에 직격탄, 유승민 사퇴 불가피...김무성도 위기

박 대통령의 이러한 국무회의 발언으로 인한 정치적 후폭풍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갈등, 당청 갈등, 청와대와 야권과의 갈등 등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화 국회의장으로선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자신의 땀이 뺀 여야 합의안을 ‘당리당략의 산물’로 폄훼된 것에 노골적으로 반발할 순 없지만 청와대와 국회 간의 갈등의 골을 패이게 한 것만은 분명하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계기로 박 대통령을 향한 공세의 수위를 높여갈 명분을 얻게 됐다. 문재인 새정치민연합 대표는 이날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대통령께서 이(중재안) 마저도 거부한다는 건 야당, 국회, 국민과 싸우자는 것”이라고 공격의 고삐를 죄였다.

그러나 정치적 후폭풍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새누리당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의 칼끝이 향하는 곳이 야당이 아닌 여당 ‘비박계 지도부’였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 수위를 볼 때 새누리당 비박계에서 유 원내대표를 비호하려해도 여의치 않은 현실이다. 일단은 유 원내대표를 ‘제물’로 대통령에 내놓는 과정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과의 결별’까지도 감수하겠다는 뜻까지 담은 ‘칼’을 던진 이상 김무성 대표도 이 파도에 휩쓸려 ‘칼’에 베일 위기이다. 유 원내대표 보호는커녕 자신도 위태롭다. 조만간 박 대통령에게 분명한 어조로 머리를 숙인다 해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비박계 의원들도 좌불안석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이들 의원들이 지난 총선에서 당선된 것이 자기 덕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비박계 의원들이 자신을 배신하는 정치를 했다는 생각이 확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에게 박 대통령의 발언은 보다 분명하게 줄을 서라는 압박에 다름 아니다.

김무성 대표 등 비박계는 박 대통령의 진노(震怒)에 당장 반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당장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등에 업은 당내 친박계의 공세를 차단하는 것이 급하기 때문이다. 서청원, 이정현 최고위원, 윤상현, 김재원, 주호영 정무특보 및 친박계 의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은 분명하다. 당 최고위회의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입장을 존중키로 한 것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이날 빼어든 ‘칼’로 국회법 개정안으로 불거진 당장의 당청갈등은 해결하겠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청갈등이 새롭게 전개되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다. 김무성 대표의 경우 지금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물러서더라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음에 발생할 총선이 걸린 ‘당청갈등’에선 물러설 여지를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박계’ 더 나아가 ‘새누리당과의 결별’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공세를 취했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방식은 두 번째에는 통하진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당에 대한 리더십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박 대통령의 이번 행위에 대한 평가도 시간이 갈수록 나빠질 것이다. 메르스 사태, 경기 침체, 가뭄 등 국정현안이 산더미처럼 쌓인 가운데 ‘정쟁’에만 몰두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두고 정쟁을 유발해 ‘메르스 무능’ ‘국정 실패’에 대한 비판여론을 잠재우려 한 것이 아니냔 말까지 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사태를 원인인 당청갈등을 조장한 것이 박 대통령과 청와대란 지적도 나온다. 당청갈등을 조율할 정무수석까지 빈자리로 둔 채 당과의 소통부재 상황을 만든 것이 청와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와대 정무특보가 3명이나 있지만 이들이 당청 간의 소통역할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 당 내외의 평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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