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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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 전쟁이 발발한지 65주년이 되던 날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전체 회의에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는 5월 29일 새벽 244명의 의원이 참석해 찬성 211표, 반대 22표, 기권 11표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렇다면 국회법 개정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국회법 제92조의 2는 국회에서 결의한 법을 집행하기 위한 시행령이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합치하지 않을 경우 소관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통보 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었다.  개정안에는‘법률의 취지 내용이 합치하지 않을 경우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변경 요청 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 하여야 한다.로 바뀌었다.

이 개정안 통과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국회가 정부의 시행령 등의 내용까지 관여할 수 있도록 하고 법원이 아닌 국회가 시행령 등의 법률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정부의 입법권과 사법부의 심사권한을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헌법이 규정한 3권 분립의 원칙을 훼손해 위헌 소지가 크다. 이것은 사법권을 침해하고 정부의 행정을 국회가 일일이 간섭하겠다는 것으로 역대 정부에서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안이라 하였다.

시행령이란 영어로 Enforcement Ordinance, 즉 시행령 또는 집행규정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백과사전에는 시행령을“법률시행에 필요한 모든 규정을 내용으로 하는 명령”이라고 되어 있다. 시행령은 법률이 아니라 법률을 집행하는 규정이다. 대통령께서 이 개정안이 정부의 입법권, 사법부의 심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3권 분립의 정신은 정부에 입법권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정부가 입법권이 있다면 봉건제와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정부가 어떤 특정한 사안에 대해 의회에 입법을 요청할 수 있다. 이때 발의는 정부로 표시된다. 정부는 법을 만들어 공포할 수 없고 필요에 따라 의회에 법제정을 요청 할 수 있다.그러나 이것이 입법권은 아니다. 대통령께서 거부권을 행사하기 전에 헌법재판소에 국회가 제정한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인지 아닌지 판결을 구했다면 어떠했을까! 대통령과 청와대는 위헌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그 권한은 사법부에 있다. 특히 위헌의 소지에 관한 모든 것은 추측이나 추정으로 결정할 수 없다. 

만약 거부권을 행사하기 전에 여야 대표들을 불러 헌재의 판결이 날 때까지는 개정안의 집행을 보류하고 빠른 시간 내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협상할 수 없었을까!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지혜가 있다. 가장 성공적인 협상 결과는 모두가 만족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아쉽지만 불만이 없을 때가 성공적인 협상결과이다. 만약 모두가 만족한다면 얼마가지 않아서 더 큰 욕심을 내게 된다. 그러나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되었다고 서로가 생각 할 때 그 협상은 오래 간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더 이상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서로의 양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께서 곧 바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헌법재판소에 판결을 구했다면 한국 정치는 오늘과 같이 소란스럽지 않고 좀 더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지 않을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국민은 지금 불안하다. 대통령께서도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야당이 아니라 여당의 지도부를 맹비난 하셨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친박비박 간의 유승민 원내대표를 사퇴시켜야한다, 아니다로 매우 소란스럽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일부 언론에서는 대통령의 탈당 후 신당창당 이야기까지 나온다. 국정운영의 안정은 대통령과 여당이 함께 난관을 헤쳐 나갈 때 이루어진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공포, 가뭄, 경제적 어려움 등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지는 못할지언정 왜 불안하게 만드는가, 이것은 대통령이나 집권여당이 할 일이 아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잘했던 잘못했던, 의리가 있는지 없는지 대부분 국민들은 잘 모른다. 그러나 만약 유승민 원내대표가 청와대의 압력으로 원내대표직을 사임한다면 여당은 협상력을 잃고 청와대 심부름이나 하는 집단으로 인식될 것이고, 야당은 더 이상 새누리당과 협상하지 않고 곧 바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에게 달려들 것이다. 의원들에 의해 선출된 원내대표가 청와대의 지시로 해임된다면 여당인 새누리당이 야당의 공격에 제대로 된 방패막이 될 것인가 의문이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임하면 야당의 대표를 상대해야 하는 사람은 김무성 당대표가 아니라 박근혜 대롱령이 될 것이다, 그 혼란은 상상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곧 총선이 있을 것이고, 2년이 지나면 대선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새누리당의 혼란을 보며 한국의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세계 시민혁명의 원조인 프랑스 국기는 삼색으로 되어 있다. 파랑색은 자유, 흰색은 평등, 빨간색은 박애의 표시이다. 휴머니즘이 없는 자유와 평등은 강팍하고 고집스러운 민주주의 사회를 만든다.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인간화 현상, 보복운전, 갑의 횡포, 성공만을 위한 인생, 이 모든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고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등 1948년 대한민국 건국 후 31년 7개월을 우리 국민들은 군사권위주의의 정권하에 살아 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에 집착한 사람들을 우리는 청문회에서 무수히 봐왔다.

군대는 전쟁을 위한 조직이다.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만을 목표로 훈련하고 살아간다. 군사정권 하에 수많은 군인들이 장관이 되고, 국무총리가 되고, 공기업으로 가고 심지어는 민간기업의 간부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문화 속에 관용과 포용력 보다는 성공과 지배력, 또한 갑질이 보편화 되었다. 이제는 우리 정치부터 관용과 포용력을 지닌 박애정신이 자유와 평등을 지켜내는 모습을 보여야만 국민도 여유로움과 심리적으로 안정될 것이다.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이며 국민대표자 모임이다. 과거 군사 권위주위 시대에 독재권력에 반대하는 국회를 부패하고 무능한 집단으로 몰아 국민들이 국회를 불신하게 만들려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강제로 국회를 해산하는가 하면 유신헌법으로 유정회를 만들고, 국보위를 만들어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세력을 짓밟으려 했던 사례가 있다. 국회는 권력의 시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통치의 도구로 삼으려 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국회의 부패와 행정부의 부패 중 어느 것이 국민을 더 힘들게 할까. 부패하고 무능한 국회의원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회는 국민과 함께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국민의 헌법기구다. 

박영식 약력 

■ 1948년 대구 출생
■ 유성환 전 의원 보좌관
■ 통일국시론 원고 작성으로 구속
■ 박찬종 전 의원 정책실장
■ 신정당 정책실장
■ 영국 NEXT SOCIETY 연구소 동북아시아 담당 연구원
■ 현 폴리뉴스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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