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전령이 된 정무특보 당청가교보다는 갈등 부채질만

[폴리뉴스 정찬 기자]연일 이어지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둘러싼 집권여당 내 친박 대 비박 간 점입가경의 갈등이 국민들의 눈살을 한껏 찌푸리게 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이를 수습해 국민들을 안심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수수방관하며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이후 청와대가 한 일은 오로지 유 원내대표를 사퇴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익명의 관계자 명의로 언론에 내보낸 것 외엔 없다.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 폭탄을 던진 당일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다수 의원들이 유 원내대표를 재신임하자 이를 번복하기 위한 액션만 했을 뿐 실질적인 ‘정치력’을 발휘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청와대의 무책임한 행보가 지금 새누리당의 혼란을 가중시키면서 국정운영 전반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지난 달 25일 이후 일주일 동안 집권여당은 국정보다는 집안싸움으로 날을 새기에 바빴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이 조만간 수습되기보다는 오히려 여권 내 갈등을 확산시키는 쪽으로 가고 있지만 청와대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2일 열린 최고위원회의 파행의 책임은 오롯이 청와대가 져야할 몫이다. 친박계가 3일 전인 지난달 29일 긴급최고위회의를 통해 유 원내대표에게 자신의 거취문제를 결정할 시간을 주기로 하고선 이날 김태호 최고위원이 공개발언을 통해 유 원내대표 사퇴를 재차 요구한 것이 발단이다.

이는 유 원내대표가 빨리 물러나길 원하는 청와대의 뜻을 받든 친박계의 과잉액션으로 볼 수 있다. 서청원 최고위원 등 친박계 스스로 유 원내대표에게 준 ‘생각할 시간’을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이 있는 6일까지라고 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자신의 말을 번복해 도발했고 김무성 대표는 이에 발끈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유 원내대표가 명분을 가지고 물러설 수 있는 퇴로 마련에 모든 정치력을 쏟고 있는 김무성 대표로선 친박계의 이러한 행동에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김 대표 스스로가 유 원내대표의 사퇴에 총대를 메고 음으로 양으로 온갖 방식을 동원해 유 원내대표를 압박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날 예정된 국회 운영위 연기를 자신이 주도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는 청와대를 배려한 조치로 청와대와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보였다. 또 1일 열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을 위한 추경 편성을 논의하는 당정협의에 유 원내대표를 빼고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주재토록 했다. 김 대표가 ‘유승민 왕따’를 통한 사퇴 압박을 표면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러한 상황을 모른 체 하며 당내 갈등 수습에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심지어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이날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가 이날로 예정된 국회 운영위가 연기된 것이 청와대 연기 요청 때문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그런 사실이 없다”며 모든 것을 김무성 대표에게 떠넘겼다.

지난 주말 무렵 의원총회의 결과를 뒤집기 위해 여러 언론에다 ‘유승민 불가’를 유포하던 청와대 관계자들도 3일 전 긴급최고위회의 이후 싹 사라졌다. 지금 청와대의 태도를 보면 사태 수습의 책임을 김 대표에게 지우고 ‘강 건너 불구경’으로 일관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실패하면 김 대표에게도 책임을 묻겠다는 식이다. 이날 김태호 최고위원 등 친박계 최고위원들의 ‘유승민 몰아세우기’는 이러한 기류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정무특보, 청와대 전령에 그쳐 당내갈등 부채질만

이러한 청와대의 태도는 갈등 조정이란 ‘정치’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청와대 스스로 자신의 ‘정치력’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정치적으로 대립하면 ‘찍어내기’와 ‘줄 세우기’란 봉건적 ‘권력질서’ 확립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는 식이다.

이 같은 청와대의 ‘정치력’ 부재가 지금 새누리당의 당내 갈등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 김 대표의 온갖 수습노력을 계속 꼬이게 만들 뿐만 아니라 유승민 원내대표로 하여금 ‘여기서 밀리는 안 된다’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사실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던 날 ‘사과’했고 다음날인 지난달 26일에는 ‘사죄’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청와대와 박 대통령의 처분을 기대했다. 이는 청와대가 자신의 ‘사죄’에 대해 ‘정치력’을 조금만이라도 발휘하면 물러날 수도 있다는 시그널에 가까웠다.

그러나 청와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병기 비서실장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관들의 정무적 기능이 약하다면 청와대 정무특보인 윤상현·김재원·주호영 의원을 통해서라도 정치적 해결을 도모할 수 있었겠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청와대 정무특보들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진원지 구실을 하며 당내 갈등의 골을 깊게 패도록 하는 역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무특보들이 당청, 당내 친박-비박 간의 갈등을 조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청와대의 뜻을 전달하는 전령(傳令) 역할에 머물었다. 나아가 유 원내대표 찍어내기를 위한 당내 사령부 역할을 하며 갈등을 부채질 하고 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당청 간의 가교(架橋) 역할을 해야할 정무특보가 사실상 무용지물(無用之物)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지금 청와대의 정치력은 당내 반대세력을 설득해 돌려세우는 데는 변변한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대립적이고 갈등지향의 ‘찍어내기’의 ‘퇴행적 정치’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청와대의 무책임한 정치가 ‘유승민 사태’를 장기화하고 키우는 요인이다.

자기 세력 하나 제대로 이끌고 가지 못 하는 상황을 스스로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내 세력 분포에서 대통령과 함께 하는 ‘친박계’가 여러번에 걸친 당내 선거에서 소수로 몰린 배경도 여기에 있다. 2013년 집권 1년차만 해도 새누리당에는 ‘비박’은 없고 모두가 ‘친박’이라고 했던 상황이 2년 만에 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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