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입’에 달린 상황, 스스로 ‘명예로운 퇴진’ 기회 만들었지만...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폴리뉴스 정찬 기자]‘오리무중(五里霧中)’의 ‘유승민 정국’을 수습하는 ‘정치적 해결자’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본인의 손에 놓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유 원내대표의 ‘원내대표직 사퇴’란 최종 종착점을 만들어내는 정치력을 갖추지 못한 여권 내 정치적 현실에서 비롯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유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인’을 몰아세울 때만 해도 청와대는 기세등등했지만 지금은 무기력 그 자체이다.

김무성 대표 또한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과 갈라서게 되는 ‘파국’을 막겠다면서 유 원내대표가 스스로 명예롭게 물러나도록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자임했지만 아직 사태의 ‘해결자’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친박계와 비박계 양쪽의 눈치를 보는 ‘정치력’의 한계를 보였다.

청와대의 의중을 대리하는 친박계는 정권을 주도하는 세력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한심한 정치력을 보이고 있다. 권력핵심세력이라면 당연히 보여야할 용이주도함은 찾을 수 없다. 이장우, 김태흠 등 초선 의원 몇몇과 신박(新朴) 김태호 최고위원 등이 펼치는 ‘돌격대 놀이’만이 유일한 ‘정치력’이다.

김무성 대표나 친박계는 지난달 29일 긴급최고위원 회의 직후 유 원내대표 사퇴 시한이 오는 6일이라고 은연 중 공표하면서 유 원내대표를 압박했지만 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언론에 공표한 사퇴 시한 6일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란 ‘불안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감’이 지난 2일의 ‘콩가루 최고위원회의’를 만든 배경이다. 친박계는 6일이란 사퇴시한이 자신들의 ‘희망사항’에 그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무성 대표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김태호 최고위원이 콩가루 발언을 한 것은 이러한 초조감을 나타내는 듯 했다.

김 대표 또한 자신이 어찌하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임을 최고위회의에서 보여줬다. 스스로 회의장을 뛰쳐나간 것은 유 원내대표 설득이 여의치 않다는 신호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 최고위원이 나서 불을 지르자 발끈하고 나간 것이다. 이처럼 김 대표와 친박계가 ‘이심전심(以心傳心)’이 아닌 불안한 동거관계다 보니 김 대표가 왔다갔다 행보만 하는 것이란 인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유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에 대해 “가능한 20일까지 처리되도록 상임위와 야당의 협조를 구한다”며 다른 현안 법안까지 묶어 자신이 원내대표로서 업무를 차분하게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친박계가 정한 6일 사퇴시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승민 ‘입’에 달린 ‘유승민 정국’, 스스로 명예로운 퇴진 도모 기회 얻어

바로 이 시점부터 자연스럽게 유 원내대표는 자신으로 인해 비롯된 ‘유승민 정국’을 주도하게 됐다. 청와대, 친박계, 김무성 대표 3자 모두가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좌지우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본인의 ‘정치력’으로 ‘유승민 정국’을 풀어내야 하는 정치적 상황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유승민 정국’은 사건의 형식적 종착지는 유 원내대표의 ‘사퇴’이다. 애초 유 원내대표는 이 사건의 ‘피동적 대상’으로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의 정치력에 따라 결정되는 ‘처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청와대와 김 대표 모두 정치력을 보이지 못해 유 원내대표 스스로가 당내 정치 ‘해결자’의 위치에 선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유 원내대표의 ‘입’만 바라봐야만 하는 상황이다. 친박계가 정한 6일이 되든 아니면 추경예산이 처리되는 20일 되든 유 원내대표 사퇴를 결정하는 주도권을 ‘유승민’ 본인이 쥐고 있다. 사건의 종착점이 유 원내대표 사퇴에 있기 때문에 더 하다.

이제 ‘유승민 정국’은 마지막 관문인 정치적 종착지로 가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버티기’를 통해 ‘정국’을 주도하는데 성공하면서 정치적 ‘대의와 명분’을 얻는 정치적 승리를 도모하는데 유리한 입장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유 원내대표의 사퇴는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기정사실화됐었다. 25일 당일 의총에서 버티더라도 2~3일을 못 갈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박 대통령, 청와대, 새누리당 친박계가 번갈아가면서 폭격을 가할 때 유 원내대표가 제대로 버틸 것으로 보지 않았다. 게다가 김 대표마저 박 대통령의 뜻을 우선하는 상황에서는 6월 29일을 디(D)데이로 봤다.

만약 유 원내대표가 당시 압박을 못 버텼다면 여권 진영 내에서 ‘배신의 정치인’이란 딱지를 안을 위기에까지 몰렸었다. 그러나 지금의 유 원내대표는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여권 내 갈등을 수습하는 주도자로서 그야말로 ‘명예로운 퇴진’을 도모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치적 승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일시적인 상황 결정권에 머물 수도 있다. 

마지막 관문인 정치적 승리는 진영 내 ‘대승(大乘)’의 해법 도출이다. 대권에 도전하는 많은 여야 정치인들이 실패한 지점이다. 유 원내대표 또한 여의치 않다. ‘반대’나 ‘버티기’의 정치력보다 더 큰 ‘정치력’이 요구된다. 자신을 찍어내려 한 박 대통령과 청와대와의 문제까지도 진영 전체의 틀 속에서 해결해야 민심으로부터 ‘대의와 명분’을 인정받을 수 있다.

사실 사태 초기에 유 원내대표는 ‘내가 왜 배신의 정치인이란 비난을 받아야 하나’, ‘잘해 보려 한 내가 원내대표직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방어적 입장이기 때문에 ‘대승(大乘)’의 해법 도출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그러나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가 이를 못해내면서 지금 유 원내대표에게 그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정국을 주도한다는 것은 이에 따른 숙제도 같이 안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유 원내대표의 행보도 이 시점부터 이전의 ‘수세적’인 입장에 있을 때보다 더 어럽다. 여기서 실패하면 ‘유승민 정국’ 이후 역풍을 맞을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당장 유 원내대표의 버티기가 장기화될 경우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해(害)가 돼 여권 전체를 ‘위기감’을 몰아갈 수 있다. 이 경우 여권 민심은 돌변하고 ‘대의와 명분’은 날아가 버린다.

유 원내대표는 스스로 ‘유승민 정국’을 주도하는 위치에 섰지만 이제는 수습하는 정치적 해결능력이 보여야 한다.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데 그칠 것인지 아니면 여권의 미래를 품을 것인지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사퇴 시점과 명분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자신의 사퇴 외엔 모든 퇴로를 닫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난제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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