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별 비례대표제’ 실현 가능할까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5차 혁신안을 발표한 뒤 참석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5차 혁신안을 발표한 뒤 참석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폴리뉴스 서예진 기자]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여의도 정가의 ‘뜨거운 감자’인 ‘의원정수’ 문제를 건드렸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소위 일컫는 대형 ‘떡밥’이 국회에 던져진 것이다.

지난 26일 김상곤 혁신위원장 및 혁신위원들이 발표한 5차 혁신안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더불어 ‘의원정수 369명으로 확대’ 등이 내용이 담겨 있었다. 

혁신위는 선거제도 개혁의 초점을 ‘비례성 강화’에 찍고 지난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제안과 함께 제시한 지역구 의원 대 비례의원 비율 ‘2:1’을 차용, 현재 지역구 의원 246명에 맞춰 비례의원을 123명으로 확대할 것을 예시로 들어 논란을 촉발시켰다.

이와 더불어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가 같은 날 이같은 혁신안을 환영하며 의원정수를 390명으로 확대하고 세비는 반값으로 삭감하는 방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혀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정치 혐오가 심한 한국 사회에서 지난 2012년 안철수 당시 후보가 의원정수를 200명으로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큰 반향을 얻고 난 뒤 별다른 여론 회복 노력도 없는 상태에서, 혁신위가 제시한 ‘의원정수 확대’ 방안은 ‘기득권 지키기’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증원 논쟁이 ‘지역구 고수’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 지도부는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같은 날 긴급최고위를 열고 ‘당론이 아니라 이종걸 원내대표의 개인 견해’라고 선을 그었고, 문재인 대표도 “오늘(26일) 나온 혁신안도 주 포인트는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이종걸 원내대표는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정권 1.0 시대를 열어야 한다’면서 이같은 견해를 재차 주장했다.

반발은 새누리당부터 나타났다.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는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면서 “지금은 의원정수를 늘릴 때가 아니라 고비용 저효율의 국회에 대해 강력한 정치쇄신과 개혁을 이뤄내고 일하는 국회, 민생국회를 만들어 국민들로 부터 신뢰부터 회복해야 할 때”라고 반박했고, 이인제 최고위원은 일본과 미국에 비교했을 때 의원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면서 “국회의원을 더 비대화 한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당내에서도 즉각 반발이 일어나며 혁신위 해체론까지 등장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TBS 라디오에 출연해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의원) 증원은 개인적으로 반대한다”고 밝혔으며, 조경태 의원은 다른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반혁신안을 내세운 혁신위는 즉각 해체시켜야 한다”고 힐난했다.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 28일 원내대책회의부터는 관련 발언을 아예 하지 않았다. 실제 이 원내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은 “더 이상 정수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왜 총대를 메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며 만류했다는 후문이다.

국민의 시선 또한 싸늘했다. 지난 27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회의원 세비 삭감을 전제해도 비례대표 국회의원 및 전체 국회의원 정수를 확대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57.6%로 나와 국민 10명 중 6명이 의원정수 확대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29일 문재인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은 국정원 불법 해킹의혹을 규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이다. 국회의원 정수 논란으로 그 일이 가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의원정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국민의 공감을 얻을 때 다양한 방안의 구상 속에서 논의될 수 있는 문제이며 선거구 재획정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논의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재차 입장을 밝혔다.

문 대표는 “어떤 경우든 충분한 논의로 당론을 모으고 신중하게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국회의원 정수 문제가 너무 앞질러 논란이 되지 않도록 신중한 논의를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혁신위안의 초점이 ‘의원정수 확대’가 아닌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중앙선관위가 제시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의원정수’의 상관관계는?

그렇다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무엇인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다수의 권역으로 나눠 각 권역마다 독자적인 정당명부를 작성, 해당 권역의 정당득표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정당득표에 비례해 의석이 배분되므로 약세정당도 의석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할 경우 영남은 새누리당, 호남은 새정치연합이 독식하는 지역주의가 상당 부분 완화된다. 

지난 27일 선관위에 따르면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새정치연합 전신)은 부산·울산·경남(PK)에서는 3석, 대구·경북(TK)에서는 0석을 얻는 데 그쳤다. 새누리당은 광주·전북·전남·제주에서 단 4석만 획득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PK에서는 30.6%, TK에서는 16.3%의 정당 득표율을 기록했고, 새누리당은 호남에서 11.2%를 얻었지만 소선구제의 영향으로 실제 지역에서 확보한 의석은 득표율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혁신위는 이에 대해 대표성이 약화됐다며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선관위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민주통합당은 PK에서 14석(지역 2, 비례 12), TK에서 5석(비례 5)을, 새누리당은 호남에서 4석(비례 4)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선관위의 권역별 비례대표제하에서는 비례대표가 대폭 증가하기 때문에 소수 정당에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9대 총선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통합진보당으로 나타났다. 헌법재판소의 최대-최소 선거구 인구 편차 2대 1 이내 조정 결정으로 지역 대표성 약화 우려도 있지만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이를 일부 완화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물론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자체가 국회의원 정수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우리나라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주범인 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히면서도 국회의원 정수 확대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비례대표 의석수 주장과 맞물리면서다.

중앙선관위는 올 초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시하면서 지역구 의원 대 비례의원 비율을 ‘2:1’로 하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의원정수 300명을 유지하면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대 1로 가야한다고 제안한 것이라 지역구의원은 246명에서 200명으로 줄어들고, 비례때표 의원은 56명에서 10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 경우 지역구 의원은 246명에서 200명으로 46명 줄어들고, 비례대표 의원은 56명에서 100명으로 34명이 늘어난다.

그러나 새정치연합 혁신위는 지역구는 줄이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접근하다 보니 ‘지역구 의원 246명’은 그대로 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거론한 것이다. 즉, 의원정수 확대는 필연적인 결론이었다. 

의원정수 확대를 반대하고 있는 새누리당도 ‘지역구 의원 고정’ 원칙은 다르지 않다. 새누리당은 20대 총선 선거구 조정 과정에서 늘어나는 지역구만큼 비례대표수를 줄이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지역구별 인구 편차 ‘2대 1’ 가이드라인을 충족시키면서 선거구를 획정하게 되면 적게는 한 자릿수, 많게는 20개 안팎의 지역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이에 따라 늘어난 지역구 수만큼 비례대표를 줄여서 정수를 맞추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투표가치의 등가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국회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비례대표가 늘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다.

또한 국회 기능 활성화를 위해선 비례대표 의석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지역 뿐 아니라 청년 등 세대별, 각종 직능별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고 국회가 지역구에 매몰되지 않고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선 비례대표 의석 비율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논리다.

아울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중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혼합하고 있는 6개국(뉴질랜드(41.6%)·헝가리(46.7%)·독일(50%)·멕시코(40%)·일본(37.5%)·한국(18%)) 중 한국이 비례대표 비율이 가장 낮은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권이 지역구 의원을 고정변수로 놓고 의원정수를 논의하는 것은 ‘자기 밥그릇’을 우선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모양새인 것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의원정수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특히 지난 3월 12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국회의장 직속 ‘선거제도개혁 국민자문위원회’는 조만간 정개특위에 ‘현실적 여건을 고려할 때 20대 총선에서 의원정수를 늘리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비례의원을 축소해서는 안 되며 중장기적으로는 총의석수가 확대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출할 것으로 전해졌다.

새정치연합이 혁신위가 발표한 5차 혁신안을 그대로 수용할지, 여야와 당내의 합의점을 찾아 이같은 혼란을 해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