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을 고발한 것은 수사를 하라는 얘기였다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 수사가 서울중앙지검 공안 2부에 배당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지 며칠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검찰의 움직임은 조용하기만 하다. 상식적으로 따지면야 검찰은 수사 착수와 동시에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자료들부터 확보하는 것이 순서였다. 의혹의 진위여부를 가릴 수 있는 방법은 관련 기록물들에 대한 확인과 검증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압수수색을 할만한 단서가 없다는 것이 검찰의 얘기이지만, 지금 이상의 어떤 단서가 더 있어야 압수수색이 가능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야당이 고발장을 제출했으니까 수사를 안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 검찰은 특별한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을 것임을 다들 예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때 국정원을 정조준했다가 여러 사람들이 사퇴와 유배의 길에 들어서야했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검찰이기에, 누가 감히 나서겠느냐는 시선이 검찰을 향하고 있다. 예상했던대로 검찰은 이 사건을 공안2부에 배당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일각에서는 검찰 고위 관계자가 이미 이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에 다녀왔으며, 특별수사팀을 꾸리거나 첨수부에 배당할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해 들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는 기사까지 나온 터였기에 검찰수사가 결국 수박 겉핥기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결정이었다.

아무리 예상했던 바라 해도, 국정원에 파견을 다녀온 검사들이 담당 검사를 맡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당연히 국정원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국정원 사람들과 친분관계가 맺어졌을 것이고, 어찌보면 패밀리 의식까지 만들어졌을지 모르는 검사들이 국정원을 상대로 하는 수사를 담당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이러한 사정을 모를리 없는 검찰 수뇌부가 이들 검사를 그대로 놓아둔채 그같이 사건 배당을 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국정원과 대립각을 세우는 수사는 하지않을 것이라는 신호가 아니겠는가.

아무리 정권에 의해 검찰이 길들여지고 정권의 뜻에 따라 검찰이 움직이는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규범이라는게 있는 것 아닌가.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 대해 일단 수사를 시작하게 되면 속내야 어떻든 간에 말이라도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 같은 것을 다짐할 법도 한데 그조차 없다. 국정원과 정서적 유대가 가장 가까운 부서와 검사들이 수사를 맡고 있다. 검찰에 이 사건에 대한 고발장이 들어간 것은 국정원을 상대로 수사를 해달라는 것이었지, 국정원과의 우의를 과시해달라는 것이 아니었을진대 말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검찰이다. 그래도 결기를 갖고 수사에 임했던 검사들은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는 이유로 유배길에 올랐다. 누구도 더 이상 검찰의 독립성 같은 것을 입에 담지 않는다. 대통령이 오전에 하명하면 검찰은 오후에 수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망가진 몸이라 해도 그래도 법을 다루고 정의를 말했던 기관이라면 지켜야 할 선은 있다.

대검찰청 로비에 가면 검사 선서가 벽에 걸려있다. 검사로서 첫발을 내딛을 때 하는 이 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하지만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검사도,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검사도 더 이상 찾아볼 길이 없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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