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현실에 대한 위기, 문제의식이 깊은 분들과 함께 나라의 근본을 바꾸는, 제7공화국 운동을 준비하다 보니 글 쓰는 일을 좀 등한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메르스 사태와 국회법 개정 소동을 보니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몇 자 적었습니다.

1. 제목만 보고는 "웬일로 박근혜 편을 다드나?" "제왕적 대통령과 관료를 국회가 견제 좀 하겠다는데 웬 딴진가?" 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제가 탄핵을 할 수만 있다면, 맨 먼저 탄핵하고 싶은 놈이 바로 정치시스템과 정의의 문제를 누구 편을 드는지, 누가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지 문제로 바꿔버리는 낡은 사고방식 그 자체입니다.   

맹자(양혜왕편)도 꾸짖은, 옳음(의)의 문제를 이익(유불리)의 문제로 변환시키는 사고방식입니다. 이 변종 중의 하나가 매사를 이용 당하고만 사는 약자, 피해자 관점 혹은 진영의 관점에서 보는 친X, 반X 시비가 아닐까 합니다. X는 일본, 북한, 미국, 중국 일 수도 있고,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일 수도 있고, 박, 노, 문, 안, 김 등으로 불리는 유력 정치인  일수도 있습니다. 사건을 접하고 0.01초 만에 피아를 가르고, 유불리를 계산하는 것은 수십 만년에 걸친 인류 진화의 산물일 수는 있어도, 치명적 비상벨이 울리는 대한민국 문제를 책임있게 해결하는 사람의 태도는 아닙니다.  

2. 박근혜 대통령은 사실상 무능죄, 둔감죄로 국민정서법상 탄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충 2년 반 정도 후에는 무조건 권좌에서 내려 옵니다. 그러나 정치에서 本(국리민복, 경세)과 末(권좌, 선거승리)을 전도시키고, 형편없는 정치리더십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국회를 포함한 정치시스템과 그 최대 기득권자인 두 '새'당은 탄핵도 안되고, 권좌에서 내려올 줄도 모릅니다. 자신의 책임을 대통령 책임, 관료 책임, 재벌 책임으로 돌립니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도 권한은 점점 확대하고, 책임은 딴데 전가해 온, 국회의 망국적 악습의 재연입니다. 정말 국회법 시행령 개정 소동은 근래 보기 힘든 입법 참사 입니다. 한국 국회의 입법 품질과 민주주의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참으로 부끄러운 사건입니다.

3. 저는 이번에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안을 정부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하기만 하면 핵심 문구를 수정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국회법 조문을 찬찬히 읽어 보지 않았지만 법안 통과후에는 오탈자나 맞춤법 정도를 약식 절차를 거쳐서 바꿀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상식 입니다. 그런데 정의화 의장 등 당사자들조차 '요청'과 '요구'는 강도 측면에서 다르다고 하는 것을 보면—물론 야당은 여기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탈자나 맞춤법 수준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본회의도 거치지 않고 중대한 문구 수정을 하는 것 자체가 중대한 법 절차 위반 아닌가요?  

만약 "수정·변경 요구"와 "수정·변경 요청"이 그게 그거라면 약식 절차로도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특이한 수정 행위의 계기는 이 문구 등으로 인해 대통령 거부권이 운위되고, 위헌 시비도 크게 일어났다는 것 입니다. 법안의 취지나 문구에 대한 오해, 오독 때문에 생긴 시비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수정 아닌 수정은 일종의 조삼모사 입니다. 눈가리고 아웅입니다. 본질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이번 수정 행위는 민주주의 일반 원리에 대한 훼손이요,  법안에 비판적인 국민에 대한 능멸 입니다. 대명천지에 어떻게 이런 봉숭아학당적 변칙이 일어날 수 있는지 믿기지 않습니다. 차라리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되어 제대로 재의, 수정되는 것이, 법안의 합리적 핵심을 살리기 위해서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천백배 더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4. 정부로 이송된 국회법 개정안에는 애초부터 논란의 핵심이었던 '처리'라는 단어가 그대로 있습니다. 엄청나게 소모적인 대립 갈등의 화약고입니다. 

정의화 중재안을 수용하여 정부에 이송된 법안은 이렇습니다.  

"국회법 제98조의 2(대통령 등의 제출 등) ③상임위원회는......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수정·변경을 요청(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변경 요청(요구) 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현행 국회법은 이렇습니다.  

"상임위원회는....대통령령등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소관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현행 국회법과 개정 국회법을 비교하면, 야당의 주류적 해석대로 하면 엄청나게 다른 법이 됩니다. 본회의도 아닌 소관 상임위원회가 다수결로 시행령을 수정·변경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헌 논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연합니다.  

헌법75조—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에 따른 국회의 정당한 행위라고 얘기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법안은 국회를 상임위원회로 등치시켰습니다. 이는 특정 부처를 대통령으로, 정부로, 국민의 일반의지로 등치시킨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상임위가 국회(본회의) 권능을 행사하려 하면 안됩니다.  

우리 휴전선을 지키는 군대가 있기에, 북한이 함부로 못하는 것처럼, 본회의가 있기에 우리 상임위가 신사적으로 노는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만약 본회의를 거치지 않고, 소수의 밀실 야합이 얼마든지 가능한 상임위가 시행령을 직방으로 수정변경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개판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 새민연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기권한 박범계 의원(전직 판사)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회가 국회법으로 시행령 위법 여부를 일반적으로 심사해 수정을 요구하고 정부가 따르게 강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시행령이 모법(母法)의 위임 범위를 일탈하거나 취지를 왜곡 남용하는 것은 행정권 남용이고 시정돼야 한다......(하지만) 궁극적으론 수정 지시가 아닌 법률로 그 시행령의 효력을 배제하거나 법원이 심사해 효력을 배제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은 것은 분명히 일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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