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의원정수 늘어 불가” vs 野 “지역주의 타파”…진정한 속내는?

[폴리뉴스 서예진 기자]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지난 26일 5차 혁신안을 통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자 여의도 정가는 ‘의원정수 논란’과 더불어 ‘비례대표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앞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하면서 권고한 지역구-비례대표 비율 2:1 비율을 받아들이면서 지역구 의원을 축소하지 않는다면, 의원정수 확대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여야는 비례대표제 도입 앞에서 의원정수 확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의원정수 확대를 반대하는 국민 여론을 등에 업은 새누리당은 ‘질보다 양’이라며 야당을 끊임없이 공격했고, 야당은 수세에 몰리는 듯 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오른쪽)가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단-정책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해 노철래 정책위부의장과 논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오른쪽)가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단-정책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해 노철래 정책위부의장과 논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러나 지난 29일 새누리당 산하 여의도 연구원이 ‘19대 총선에 적용해본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시뮬레이션’ 보고서에서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새누리당의 단독 과반수 의석은 무너진다”고 밝힌 것이 알려지자 야당이 반격에 나섰다. 이는 여당이 내부문건을 통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불가’라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은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의도 연구원은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여소야대가 만성화돼 정치 불안정이 심화할 수 있다”면서 “새누리당은 현재 지역구 비례대표 병렬식 선거제도, 소선거구제 하에서 ‘과대 대표’되는 정도가 가장 큰 정당으로 현행 선거법의 ‘최대 수혜자’ 정당임이 확인됐다”고 결론지었다.

이 보고서는 2012년 19대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적용한 것으로 지역구 의석은 현행 246석으로 유지하고 비례대표 의석은 54석에서 123석으로 늘려 시뮬레이션했다.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선거제도 개편 방안과 같은 조건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5~6개 권역으로 나눠 국회의원 의석을 배정하고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나누는 제도다. 분석 결과 새누리당의 의석수는 152석에서 170석으로 늘어나지만 전체 의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0.7%에서 46.0%으로 떨어졌다. 19대 총선 당시 보수 성향 야당이었던 자유선진당과 합쳐도 의석 점유율이 49.7%로 과반에 못 미친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스스로 ‘박빙 약세’라고 여기는 서울과 경기에서 12~13석(4.23%)을 더 얻고, 호남에서 2~3석(0.84%)을 더 얻는다. 문제는 영남에서만 23석(7.73%)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새정치연합은 영남에서 의석을 크게 늘리는 데 비해 새누리당은 호남에서 상징적 수준의 의석을 얻는 데 그친다”고 분석했다. 이는 영·호남의 지역구 개수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전통적 지역기반인 영남 의석을 석권하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통합당(현 새정치연합)은 영남에서 15석(4.93%)을 더 얻지만, 수도권에서 19석(6.39%)을 잃어 127석에서 143석으로 늘었지만 점유율은 42.3%에서 38.7%로 떨어졌다.

반면 옛 통합진보당은 서울에서 1.42%, 경기에서 1.98%, 영남에서 1.96%씩 의석이 증가해 의석수는 13석에서 40석, 점유율은 4.3%에서 10.8%로 높아진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최대 수혜 정당은 옛 통합진보당인 것이다. 이를 거꾸로 뒤집어 해석한다면 현 선거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는 현재 5석을 차지하고 있는 정의당이라는 뜻이다. 

또한 새정치연합이 제3의 정당과 ‘야권 연대’를 하면 여당을 견제할 힘을 갖추게 된다. 즉 여소야대 정국으로 가게 될 확률이 높아져 정부·여당의 정국 주도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결국 여야가 선거제도 개편을 놓고 대립하는 배경에는 이같은 속내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취약 지역인 영남에서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지역주의 타파를 외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보와도 맞아 떨어지는 바, 새정치연합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강하게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영남에서 의석수를 다수 잃고 과반수가 무너지기 때문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반대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결론은 지역주의 구도를 공고하게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지역구도 하의 기득권 지키기’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오른쪽)가 지난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오른쪽)가 지난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새누리당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새정치연합 혁신위원인 최인호 교수는 지난 30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금메달 국회의원을 포기하고, 동메달 국회의원에 집착할 것인가”라고 힐난했다. 이는 김무성 대표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저는 평소 공천만 제대로 하면 당선되는 경상도 국회의원은 동메달이고 수도권 국회의원들은 금메달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을 빗댄 것이다. 

그는 “권역별비례대표제는 김무성 대표가 말한 금메달 국회의원을 많이 배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제도”라면서 “각종 시뮬레이션 결과 새누리당 후보가 서울에서 대약진한다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왜 새누리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포기하려하는가”라며 “영남에서의 국회의원이 지금처럼 압도적으로 당선되어야, 영남표를 묶어놓을 수 있어서 정권재창출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재인 대표 또한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정치에서 무엇보다 절실한 개혁과제가 망국적인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타파하는 것이다. 그 방안이 바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라고 주장한 것도 이같은 이유로 보인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여전히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면 지역구 숫자를 줄이거나 의원정수를 늘려야 하는데, 지역구를 줄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의원정수 확대는 국민 정서에 반하니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은 할 수 없다는 논리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선) 의원 정수를 늘릴 수밖에 없다”면서 “국회의원은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반대 의사를 재차 밝혔다. 

새누리당은 다음달 11일 의원총회를 열고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국회의원 정수 논란 등에 대한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당 입장을 당론으로 정할 계획이다. 

당 중진인 서청원 최고위원도 의원정수 확대 ‘불가’ 입장을 밝힌 바 있고, 여의도 연구원 또한 의원정수 ‘동결’을 당론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 바 있어, 의원총회에서는 당론으로 ‘의원정수 동결’ 입장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 필수임이 드러났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이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새정치연합이 ‘의원정수 확대’ 논란을 딛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쟁취할지, 새누리당이 ‘지역주의 기득권 고수’라는 비판을 감수하며 소선거구제를 유지할지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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