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사건은 北 의도된 도발, 박근혜정부 응수 마땅치 않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일 저녁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 긴급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회의를 주재했다.[사진=청와대]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일 저녁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 긴급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회의를 주재했다.[사진=청와대]

[폴리뉴스 정찬 기자]북한이 대북확성기 포탄 도발 후 양면 작전을 통해 우리 정부를 압박해 들어오며 응수를 타진하고 있으나 박근혜정부는 이에 대한 마땅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상황만 주시하고 있다.

북한은 대북확성기 도발 직후인 지난 20일 오후 5시 무렵에 북한군 총참모부 전통문을 통해 “20일 17시부터 48시간 이내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지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겠다”고 위협하면서도 비슷한 시간에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김양건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서한을 보내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

북한군에서는 오는 22일 오후 5시(북한 기준) 이후 대북확성기 방송이 계속될 경우 ‘추가적인 군사적 도발’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면서도 대남사업 쪽에서는 ‘수습과 관계 개선 도모’의 신호를 내보냈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이는 군과 노동당의 ‘엇박자’가 아니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구상에 따른 ‘양동전략’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해 전선지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군인들에 ‘완전무장’을 명령했다. 그러면서 북한 중앙군사위원회는 48시간 내 대북심리전 방송을 중지하고 심리전 수단을 철거하지 않을 경우 강력한 군사적 행동으로 넘어간다는 최후통첩을 남한에 보낸 군 총참모부의 결심을 승인했다.

추가적 도발 예고와 함께 이에 따른 확전까지도 각오했다는 신호에 다름 아니다. 휴전선에서 대북확성기 방송을 계속하면 자신들이 도발할 것이며 우리 군이 이에 대응해 군사적 충돌의 규모가 확대되더라도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선제적으로 ‘준전시상태’를 선언한 것은 ‘확전’됐을 때를 대비하고 있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박근혜 정부에게 ‘김양건 카드’를 보내 대화를 통한 관계개선 의지도 내보였다. 이는 앞으로 휴전선 일대에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 도발 → 우리 군의 대응 → 북의 대응 도발 → 우리 군의 대응’이란 반복되는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대화도 하자는 뜻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휴전선에서의 ‘군사적 충돌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휴전선에서의 연속된 사건은 北의 의도된 도발, 박근혜정부 응수 마땅치 않아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북한의 도발은 이러한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의도된 도발’로 보인다. ‘목함지뢰’ 도발이 우연이 아니라 휴전선에서의 군사적 긴장고조를 목표로 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낳게 한다.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는 이상 휴전선에서의 국지적 충돌이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판단까지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게 불리하지 않다.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의 군사적 충돌 확대는 북한 정권에게 유리하다. 북한 내부의 결속력을 높일 수 있다. 또 외교적으로 한반도가 교전지역임을 세계에 공표하는 것만으로도 주목효과를 얻으며 발언권을 높인다. 세계는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다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도 손실이 크지 않다. 이미 봉쇄된 상황이라 추가적인 제재를 더할 게 없다.

박근혜정부가 보복수단으로 마지막 남은 ‘개성공단 철수 카드’를 꺼낼 수도 없다. 이는 북한을 관리할 수단을 모두 없앤 5.24대북제재 조치의 역효과다. 그러나 북한이 의도하는 대로 군사적 긴장상황이 계속 고조되면 한국에게는 치명상이다. 잊혀졌던 ‘코리안 디스카운트’가 본격 작동하면서 주식가치 등 여러 자산가치들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한국경제는 활성화는커녕 위기에 빠져들 수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대북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응징한다는 원칙 외에 달리 꺼낼 카드가 없다. 그러나 이는 휴전선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면서 사태를 확산시킬 수 있다. 이러한 원칙적 입장 견지는 단기적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겠지만 북한의 도발과 우리 군의 대응이 반복되면 ‘피로감’과 ‘위기감’을 느끼게 만들 뿐이다. 한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까지 감안하면 장기적인 대응책은 될 수 없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자신이 천명한 원칙을 스스로 거둬들이는 선택을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당장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을 결정하면 22일 오후 5시 이후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현저히 줄일 수 있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 책임자들이 줄곧 외친 ‘원칙’과는 어긋난다. 그래서 군은 ‘확성기 방송중단’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양건 노동당 비서와의 대화도 쉽게 응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의 도발과 보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고 천명했는데 김양건 비서의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북한의 도발에 ‘대화’로 보상하는 행위에 나서는 것이 된다.

북한은 의도된 도발로 휴전선에서의 군사적 긴장 고조냐, 남북 대화냐를 두고 응수를 타진하고 있지만 지금의 박근혜 정부는 어느 쪽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응수 자체가 마땅하지 않다. 바둑 사활에서 ‘단수’를 맞은 상황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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