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있는 출구전략으로 파국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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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치킨 게임 양상으로 치달아버린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내 갈등.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한 쪽도 상대를 일방적으로 제압하는 것이 불가능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안철수, 비주류, 정세균..... 그 어느 누구도 자기 힘만으로 당을 평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더구나 상대가 손을 털어버리고 나갔을 때 함께 무너져버릴지 모를 정도로 취약하기만 하다. 다들 자기 힘의 한계를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면 함께 살 수 있는 대타협 이외에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어떻게 대타협을 할 것인가? 원칙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절차에 따라 질서있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할 것. 둘째, 각 계파의 합의와 승복이 가능한 접점을 찾을 것.

우선 혁신안 처리 문제. 혁신안 처리는 재신임 문제와는 별개의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표 스스로가 혁신안 통과와 자신의 거취 문제를 연계시켜버렸다. 부적절한 일이었다. 그리되니까 문 대표가 자신의 신상문제를 갖고 혁신안 처리를 압박한다는 반발의 구실도 나온 것이다. 문 대표는 혁신안과 자신의 거취 연계를 해제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혁신안은 혁신안 자체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중진모임에서는 혁신위 처리는 받아들이는 것으로 문 대표와 합의했지만, 비주류 일각에서 여전히 혁신안 처리 유보를 주장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혁신안이 총선에 의미있는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인가, 제도혁신에만 치중한 나머지 혁신의 핵심을 피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혁신안은 그것대로 판단하고 가부간에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제1야당이 공식기구를 통해 마련한, 그래서 당무회의까지 통과한 혁신안을 이제와서 표류시킨다면 당의 꼴은 무엇이 되겠는가. 혁신안 가운데 특히 공천과 관련하여 당 대표나 특정 계파에게 유리하게 운영될 수 있는 논란의 부분이 있다면 향후 수정이 가능한 장치를 남겨놓더라도, 일단 큰 틀에서 가부간에 결론을 내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이다. 재신임 문제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그리고 재신임 문제. 비주류 측에서는 재신임 절차 자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문 대표가 재신임 절차를 강행하면 그 효과도 없을 뿐 더러 오히려 계파 갈등이 격화될 지경이다. 그런데 계파를 떠나 큰 흐름에서 생각해 보자. 지금의 내분 사태를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물론 문 대표의 사퇴가 해법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당사자가 이를 거부하는 상태에서 임기가 정해져있는 대표를, 특별한 사고라도 쳤다면 모르지만, 강제로 끌어내릴 방법은 없다. 만약 반강제적으로 쫓아내는 식으로라도 물러나게 한다면 문 대표의 지지층에게는 한을 심어주는 일이 될 것이고, 이는 야당에게 득보다 실이 훨씬 큰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기국회가 진행 중인 마당에 제1야당이 조기 전당대회에 들어간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책임이라는 면에서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문 대표더러 사퇴하고 다시 전당대회에 나오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정치 도의상 온당치 않다. 내분을 종식시킬 해법이 달리 없다.
그렇다면 자기 주장만 펼 것이 아니라 이제는 공멸을 막을 수 있는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재신임 대타협’이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비주류가 재신임에 강하게 반대하는 것은 문 대표의 당 지배력 강화를 위한 요식행위가 될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주류가 재신임 실시에는 동의하되, 당원들의 의사를 공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합의하면 된다. 문 대표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여론조사는 굳이 들어갈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그냥 단순하게 당원들의 의사를 묻고 그에 따라 문 대표의 거취에 대한 결론을 내리면 된다. 비주류는 문재인으로는 총선 필패이니 물러나라는 것이고, 문재인은 이를 거부하고 자신이 총선을 이끌겠다고 하니, 이럴 때는 전체 당원들에게 묻는 것 이외에 다른 답은 없어 보인다. 당원들이 총선에서 지더라도 문재인과 함께 가겠다면 도리없는 것이고, 문재인으로는 도저히 안되겠으니 물러나라고 하면 그리하는 것이다. 비주류 측도 재신임을 거부할 것만 아니라, 내분 사태의 해결을 위한 출구로서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단 조건이 있다. 첫째는 재신임 결과에 대한 승복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불신임될 경우라도 문 대표는 백의종군하면서 총선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반발이 예상되는 문 대표 지지층이 이탈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재신임 얘기를 꺼낸 당사자로서의 승복의 자세가 될 것이다. 그리고 비주류 측은 재신임의 결과가 나왔을 경우, 총선 때까지는 더 이상 문재인 체제에 대한 부정을 하지 않고 총선승리를 위해 적극 협력한다는 승복선언을 해야 할 것이다. 문 대표에 대한 불신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것이 순리이다.

두 번째로, 비주류가 재신임 절차를 받아들이는 대신, 문 대표는 총선 결과에 대한 정치인으로서의 책임을 분명하게 질 것임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 문 대표가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이 총선을 이끌겠다고 한 이상, 그 성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는 당연한 것이다. 사실 이는 구태여 별도의 선언이 필요없을 수도 있는 부분이기는 하다. 어차피 총선 결과가 낳을 흐름 속에서 문 대표의 거취 문제, 대선주자로서의 부침도 자연스럽게 결판이 날 것이다. 그럼에도 당 안팎에서 “문재인은 총선에서 져도 또 책임지지 않고 대선으로 가려할 것”이라는 불신의 시선이 있다면 이를 해소하려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물론 이상의 방식으로 대타협을 하고 내분을 매듭짓는 것이 야권의 총선 승리를 가져올 것이냐를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자신은 없다. 야권의 총선승리를 위한 대단합의 정치지형을 만들어내는 것은 재신임 결론이 난 이후에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일단은 공멸의 파국을 막기 위한 일단계 대타협은 절실해 보인다.

야당 내부의 계파갈등이 극에 달하자 이러느니 각자 갈 길을 가자는 목소리들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쏟아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쪼개지면 패배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는 엄연한 현실이다.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안희정, 김부겸, 이재명... 야당의 모든 지지표를 긁어모아도 총선과 대선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국이다. 그 표가 하나로 합해졌을 때 비로소 해볼만하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각자의 기분에 따라 ‘차라리 깨버리자’는 얘기를 해도 좋을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성에 안차고 불만스러워도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정치인들이나 지지자들이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세월은 지났어도 나는 아직도 이 말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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