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분단 70년, 남북관계 70년: 회고와 자화상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광복 70주년을 보낸다. 동시에 분단 70년이 지나고 있다. 광복과 분단이 동행하는 것 자체가 우리 한반도의 비극적 현실이다. 광복이 분단으로 이어진 것은 1945년 해방이 ‘주어진 해방’이었기 때문이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우리가 준비하고 쟁취한 것이 아니라 연합국에 의한 일본의 패전으로 갑자기 우리에게 해방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주어진 해방인 탓에 1945년의 해방은 ‘갈라진’ 해방이었다. 우리는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났다는 기쁨과 남북이 서로 갈라지는 설움을 동시에 맞아야만 했다. ‘일본군 무장해제’라는 군사적 명분으로 시작된 분단은 우리 내부의 좌우익 갈등과 미소간의 냉전적 대결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킴으로써 일시적 ‘갈라짐’이 아니라 남과 북에 각기 다른 체제와 정부가 수립되는 정치적 ‘분단’으로 결과되고 말았다. 숱한 비극과 유혈사태를 뒤로 한 채 1948년 8월 남쪽에는 대한민국이 건국되었고 곧이어 같은 해 9월 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남과 북의 공식적 분단이었다.

  분단 이후 남북의 대결상황은 상대방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부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 정당성을 인정받는 데서부터 기인했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부인하고 그 체제원리였던 공산주의를 반대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했다. 북한 역시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부도덕한 역사적 산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북한에게 남측은 혁명의 대상이자 적화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이같은 북한의 적화야욕에 대항하여 ‘반공’이라는 수세적 자세로 자신의 체제를 보존하려 애썼다. 남과 북 모두 분단 직후에 상대방을 부인하면서 자신의 체제를 확장시키려는 데 여념이 없었다.

  분단은 급기야 1950년의 동족상잔으로까지 증폭되면서 남과 북은 서로를 미워하고 적대하는 무차별적 대결관계를 형성하고 말았다.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을 전면 부인하면서 상대방의 ‘제거’가 곧 자신의 ‘정당성’이라는 극단적 대결이 지속되는 가운데 결국 남북은 전쟁이라는 가장 처참한 형태의 상황을 빚어낸 것이다. 1948년 남과 북에 서로 다른 공화국이 수립됨으로써 남북이 공식적으로 분단되었다면 1950-53년의 3년간의 한국전쟁은 남북 분단을 사실적, 실질적으로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국토’의 분단을 넘어 ‘민족'의 분단으로 고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분단의 동의어는 남북관계였다.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기에 남북관계라는 용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분단 70년을 맞는 지금, 한반도는 아직도 둘로 나뉘어 있고 남북관계는 아직도 유효한 개념이다. 그러나 그동안 남과 북은 조금씩은 다른 관계 설정을 해왔고 상대방의 존재 또한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즉 남북관계가 분단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변화가 없지만 지난 역사 동안 분단의 남북관계사가 보여준 구체적 상호작용은 일정한 변화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관계 속성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지난 70년의 남북관계를 차분히 돌이켜보면 우여곡절과 변화무쌍의 기복을 보였다. 남북 양측의 정부 수립 이후 상호 적대와 부인 과정을 거치면서 분단이 고착화되었다가 한국전쟁 이후 분단의 안정화 단계에서는 상호 소모적 경쟁과 대결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분단의 배경이었던 냉전이 종식되고 치열한 체제경쟁이 일방의 승리로 확정되면서 남북관계는 체제인정과 교류협력의 공존단계를 경험했다. 남북기본합의서와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성사되기도 했다. 그리고 화해협력의 10년을 보낸 후엔 재냉전의 반목과 대결을 지속하면서 끝도 없는 기싸움에 몰입하고 있다. 북핵문제 악화와 군사적 긴장고조를 겪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뜬금없는 통일대박론이 공존하고 있다.

  분단 70년의 남북관계는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조금씩 진화해왔다. 분단 직후 적대와 상호 부인의 남북관계에서 북한은 한국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혁명의 바람을 무조건 피해야 했고 수세적으로 한국은 체제를 지키는 데만 급급했었다. 그런데 전쟁을 겪으면서도 한국은 북한에게 적화되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 이후 한국은 체제유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한국은 북한과 경쟁을 하게 되었다. 군사독재 하에서 경제적 성공을 이룬 한국은 1990년대 사회주의권 붕괴와 함께 사실상 북한과의 경쟁을 승리로 마감했다. 그리고 한국은 북한과의 화해협력에 나섰다. 북한도 자신의 체제유지를 위해 남쪽과 공존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한국도 북한위기의 연착륙과 한반도 평화유지를 위해 대북 포용정책을 채택했다. 포용의 기간 동안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일정정도 진전되었지만 북핵문제는 여전히 온존하고 있고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남북의 군사적 긴장과 샅바싸움은 한반도 평화마저 위협하고 있다. 이제 적대와 대결, 인정과 공존, 긴장과 갈등을 다시 거치면서 어떤 식으로든 통일이라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는 조심스런 전망마저 제기되고 있다. 평화의 실종 속에 통일의 임박이 마주하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광복 70년, 분단 70년, 남북관계 70년을 맞으면서 아직도 우리는 평화로운 통일이 요원한 참담한 자화상을 맞고 있다. 평화가 전제되는 통일, 평화와 병행하는 통일이 남은 30년안에 도래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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