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프레임’으로 비판 목소리 덮기, ‘민생 실패’ 야당 책임론도 제기

[폴리뉴스 정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민주노총 등이 주도한 서울 광화문 집회를 “대한민국의 법치를 부정하고 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에서 열린 불법폭력 시위라며 정부의 보다 강경하고 엄정한 법 집행을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G20(주요 20개국),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을 마치고 귀국한 지 하루 만인 24일 예정에 없던 국무회의를 소집해 지난 14일의 서울 도심 집회를 이같이 공격했다. 지난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로 여야가 26일 영결식 전까진 암묵적 ‘휴전(休戰)’에 돌입, 고인에 대한 추모분위기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 스스로가 앞장서서 ‘정쟁’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긴급히 소집한 이유를 “파리와 말리 등에서 발생한 연이은 테러로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고, 이에 어느 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급박함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설득력은 부족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보낸 대국민 메시지는 도심시위에 대한 ‘이념적 공격’이 주였다. 여기에 정치권에 대한 대테러방지법안 처리 요구, 그리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 늦어지고 있는데 대한 정치권, 특히 야당에 대한 공격을 담았다.

김 전 대통령 영결식까지 기다렸다가 이러한 현안들에 대한 입장을 밝혀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사안들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소집해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국민들에게 알리려 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이러한 행위가 ‘정쟁’을 불러일으키는 촉매가 될 것임을 모를 리 없는데도 이를 감수했다.

지난 11월 14일 집회가 ‘폭력시위’ 논란도 있지만 경찰의 차벽설치 및 과도한 진압이 도마에 올라 있는데도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박 대통령은 경찰의 물대포로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씨에 대해선 어떠한 의례적인 언급도 없이 오로지 집회주도세력을 ‘폭력세력’으로 공격했다.

박 대통령은 집회를 주도한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그리고 집회에 참여한 세월호참사 관련 단체나 한국사교과서국정화 저지단체들을 ‘상습적인 불법폭력 시위단체’로 규정하면서 “(시위에서)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기도한 통합진보당의 부활을 주장하고, 이석기 전 위원 석방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까지 등장했다”고 이들과 통합진보당을 연결시켰다. 집회 참가자 일부의 목소리를 빙자해 전체에게 ‘종북 프레임’을 제기한 것에 다름 아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집회 참여자를 이슬람 과격 테러집단 아이에스(IS)와도 연결시켰다. 박 대통령은 “전 세계가 테러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때에 테러단체들이 불법시위에 섞여 들어와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특히 복면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IS도 그렇게 지금 하고 있지 않나, 얼굴을 감추고서...”라고 언급했다. 일부 과격시위자들을 IS 테러분자와 동일시하는 인식의 일단을 보인 것이다.

또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12월 5일로 예정된 2차 집회에 대해서도 “불법 폭력집회 종료 후에도 수배 중인 민노총 위원장은 경찰의 추적을 피해 종교단체에 은신한 채 2차 불법집회를 준비하면서 공권력을 우롱하고 있다”며 “정부로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경고하면서 “불법 폭력 행위를 뿌리 뽑기 위해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서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모든 국무위원들은 비상한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단호한 대처도 주문했다.

이는 경찰의 강경한 진압을 부추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명령지휘계통상 박 대통령의 이러한 의지표명이 집회 현장에서의 경찰력의 대응수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의식불명 상태 백남기씨 문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박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경찰은 ‘강경진압’의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폭력 프레임’으로 비판 목소리 덮기, ‘민생 실패’에 야당 책임론 제기

박 대통령이 이처럼 무리하게 지난 14일 도심시위를 극렬하게 비난한 것은 분명한 정치적 의도를 지녔다. 먼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여론을 ‘폭력시위 이념프레임’으로 덮고자 하려는 뜻이 담겼고 전날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 행적을 조사대상에서 배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대한 정치적 반격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박근혜정부 민생실패’에 대한 비판 봉쇄라는 정치적 의도도 가미됐다.

‘11.14 민중총궐기’ 광화문 집회에 10만여 명이나 참가한 것은 지난 2008년 5월 광우병 촛불집회이후 7년 만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정당들이 빠진 채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 주도로 대규모 집회가 가능했던 배경은 정부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쉬운 해고’로 요약되는 노동법 개정, 그리고 쌀값 폭락에 따른 농민들의 분노, 그리고 지난해 있었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목소리 등이 모인데 있다.

단일한 사안을 가지고 모인 것이 아니고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최근의 국정교과서 추진 등 현 정부추진을 비판하는 노동-농민-학생-시민사회 등 여러 단체들이 여러 경로로 광화문에 모이면서 대규모 집회가 형성된 것이다. 이에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1.14 민중총궐기 집회의 배후를 ‘박근혜 정부의 실패’라고 지목했다.

앞서 정부와 검찰, 경찰은 집회를 앞두고 강경대응 방침을 거듭 천명하고 집회 당일에도 차벽설치 등 강력한 물리적 제지를 감행했다. 과거 독재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의 자유를 사실상 원천봉쇄한 것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대규모집회가 된 것 자체만으로도 현 정권에게는 뼈아픈 대목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 새누리당의 ‘폭력과격시위’ 공세다. 이는 ‘폭력시위’ 문제를 최대한 부각시켜 당장의 ▲국정교과서 반대 ▲노동법 개악 반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쌀값 보상 ▲민생문제 해결 등의 박근혜정부 실정 비판을 희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교과서 등 개별 현안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정부비판 행위에 ‘폭력’의 족쇄를 채우는 쪽을 택한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폭력’의 족쇄를 건 뒤 문제가 되고 있는 당면 현안들에 대해선 ‘이념 프레임’으로 헤쳐 나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세월호 특조위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 행적 조사를 배제하지 않기로 결정한 데 대해 “위헌적 발상”이라며 조사에 응하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냈다. 또 국민들 다수가 요구하는 국정교과서 집필진 공개도 거부했다. 세월호 참사와 국정교과서 추진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이념과 진영의 대립’으로 몰아갈 태세다. 그러면서 현 정부의 ‘민생 실패 책임’을 희석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자신에게 쏠리고 있는 ‘민생’ 책임을 야당에게 돌렸다. 박 대통령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이 늦어지고 있는데 대해 “시간이 없고 이것이 통과되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며 “만약에 이 기회를 놓쳐가지고 우리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그때는 모두가 나서서 정부를 성토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다”고 야당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야당의 민생 주장에 대해 “백날 우리 경제를 걱정하면 뭐 하나.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것이 누구에게나 지금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도리인데 맨 날 앉아서 립 서비스만 하고, 경제 걱정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고, 자기 할일은 안하고, 이거는 말이 안 된다. 위선이다”고 비난했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저도) 이것을 (국회가) 제때 통과시키지 않으면 국민들에게, 또 국익에 얼마나 큰 손해가 나는지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나설 것”이라며 “앞으로 국회가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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