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예고편 캡처>
▲ <사진=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예고편 캡처>

[폴리뉴스 오현지 기자]유명한 ‘시애틀 족장의 편지’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대지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인간이 대지의 것이다. 모든 것은, 우리들의 모든 것을 연결시키는 피처럼, 연결됐다. 인간은 생명을 자신이 짠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 중에 한 가닥 실에 불과하다. 인간이 직물에 대해 뭘하든, 그것은 자기자신에 하는 것에 불과하다.” 마치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와 닮은꼴이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절찬 상영 중이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연기력과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한계 말이다. 실화를 2시간 전후 러닝타임에 담는 것이 쉽지 않다. 관객 취향, 감독의 메시지, 배우 명연기까지 고려하면 변형이 필수적이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대표적 케이스다. 연기의 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때문에 영화 메시지가 확 죽어 버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닥친 위기 전후에는 백인의 잔학 행위가 있다. 극악무도함 -명연기가 꼬리를 문다. 그런데 왜 명연기만 회자되는가.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휴 글래스의 실화다. 죽음 문턱까지 갔던 아버지는 아들을 잃는다. 아들을 죽인 자를 찾아내 복수하는 것이 큰 골자다. 산 물고기를 뜯어먹고 죽은 말의 장기를 꺼내 체온을 유지한 장면, 눈물이 그렁그렁하지만 깜박임 없이 발사하는 분노 눈빛. 어느 새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주객전도 상황이 벌어졌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번달 말 열리는 ‘제8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느냐에 전 세계의 초점이 모아졌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빼면 남는 게 없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는 ‘이슈’만 좇는 ‘우물 안 개구리’ 꼴이다. 왜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인디언에게 주목하지 않는가.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광활한 대지를 뒤덮은 웅장함부터 봐야 한다. 크나 큰 모피를 뒤집어 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보느라 대자연을 왜 보지 못할까.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19세기 미국에서 벌어진 인디언 학살이 배경이다. 짐승의 가죽을 얻기 위해, 백인은 짐승과 공존하는 인디언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인디언은 가족과 자연을 지키기 위해 백인과 싸우지만, 백인은 돈이 되는 가죽만 노리며 무차별 살해를 자행했다. 영화 속에서 백인의 잔혹성을 ‘모피 사냥꾼’으로 압축해 표현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휴 글래스 역)와 톰 하디(존 피츠 제럴드 역)의 상징성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인디언 부족 여인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반면 톰 하디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아들에게 “계집애”라며 분노한다. 그 시대 남자다운 사냥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시선은 당시 백인이 드넓은 아메리카 대륙을 ‘취급하는’ 꼴과 흡사하다. 극중 초반, 멀쩡한 아들을 살해했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차마 죽이지 못한 존 피츠 제럴드. 나중에 물질만능주의에 중독돼 백인의 목숨을 노린다. 백인이 백인을 죽이는 것은 그들 사회에서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이다. 존 피츠 제럴드를 대하는 태도 변화는 당시 자가당착으로 얼룩진 백인 사회의 민낯이다. 

인디언은 침략의 노리개였다. 수 분마다 한 번씩 깜짝 놀라는 영상은 백인과 인디언 싸움 줄기에 붙은 재미요소다. “간이 콩알만 해졌다”는 상업적 요소가 ‘인디언의 핍박’을 전달하고 있다. 역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대단한 능력자였을까. 인디언의 도움이 필연적이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백인 장교를 진짜 쏴 죽였는지가 계속 언급되는 것은, 백인 기준으로 ‘인디언과 같은 편’인지 확인하는 절차다. 백인에게 인디언은 총으로 쏴 죽이고 겁탈해도 괜찮은 하찮음 뿐이었다. 오히려 자연을 파괴해 욕심을 채우려는 백인에게 걸림돌이다. 

이쯤되면 실화에서 휴 그랜트가 어떻게 생존했는지, 복수극의 결말은 어땠는지 중요하지 않다. 실화가 스크린으로 옮겨지며 강대국의 치부가 드러났다. 실존인물 휴 그랜트와 극중 휴 그랜트는 같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많은 실화 영화가 실존인물의 성향을 가급적 그대로 살린다. 하지만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 그래서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재미있다” “잔인하고 스릴러같다”는 평이 나오고 주제를 캐치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인간의 생존 의지’나 ‘복수’는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필수 코드다. 지금껏 우리는 많은 영화에서 극한 상황에 처한 캐릭터를 봐왔다. 숭고한 자연에 목숨을 바친 캐릭터, 자연재해에서 가정을 지킨 캐릭터, 온갖 역경을 딛고 복수하는 캐릭터는 숱하게 많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같은 선상에 놓였느냐는 관객이 얼마나 메시지를 캐치했느냐에 달렸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남우주연상 수상을 응원하는가. 필자는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작품상 수상을 더 응원한다. 아메리카 대륙을 농락한 과오에 관한 진심어린 뉘우침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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