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사진=유튜브캡쳐]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사진=유튜브캡쳐]
G7 히로시마공동성명

지난 4월 11일 미국ㆍ일본ㆍ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아ㆍ캐나다 등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들은 일본 히로시마(廣島)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한국이 참여하지 않은 이 히로시마공동성명에는 한반도와 관련한 중요한 두 가지 내용이 다루어졌다. 

G7 외무장관들은 “북한의 1월6일 핵실험과 2월7일, 3월10일, 3월18일 탄도미사일 발사를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비난한다”면서 “북한이 21세기 들어 네 번의 핵실험을 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조직적이고 심각한 인권침해는 유감”이라며 “납치문제를 포함한 인권 관련 우려에 즉각 대처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또 히로시마공동성명에는 “국제법에 따른 해양의 분쟁해결을 추구하고 구속력 있는 재판소의 결정을 완전히 이행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독도는 분쟁지역이므로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해 처리해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 히로시마공동성명을 두고 북한의 ‘핵과 인권’의 문제가 시리아 안정화와 난민문제, 이라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아프리카 등과 함께 주요 글로벌 문제로 부각됐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독도문제가 주요 국제외교무대에서 일본 정부 입장대로 처리된 것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주요 언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편 히로시마공동성명은 “수십 년 간에 걸쳐 우리 같은 정치 지도자와 다른 방문자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長崎)를 방문, 마음에 깊은 울림을 받았”으니 “다른 사람들도 방문하기를 희망한다”는 권유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부분이야말로 일본 아베정부의 강력한 희망을 그대로 반영한 내용이었다. 이는 5월 말 일본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참여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해아 한다는 요구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내용이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

히로시마공동성명의 기대 그대로 오는 5월 26~27일 G7정상회담 차 일본을 방문하는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원폭 최초의 피폭지 히로시마평화공원을 방문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보도되고 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과 관련하여 이미 한국 주요 언론들은 많은 우려와 명확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일본이 피해자란 인상을 줌으로써 아직 반성과 사과가 끝나지 않은 아시아에 대한 가해국이란 사실을 가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동북아는 역사가 곧 국제정치 이슈가 되는 특수한 지역이다. 그런 동북아의 역사적 감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내딛는 오바마의 한 걸음은 오히려 분란만 일으킬 수 있다.”(강인선, “오바마가 히로시마에 가면 안되는 이유,” <조선일보> 2016년 4월 16일자)

“일본 총리가 중국 난징기념관과 한국 독립기념관을 들러 ‘정의의 평화’를 호소할 때라야, 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하노이의 전쟁기념관을 방문할 수 있을 때라야 미군 최고사령관은 히로시마를 갈 수 있다. 지금은 아니다.”(김진현, “오바마는 ‘전’ 대통령으로서 히로시마를 들르라,” <중앙일보> 2016년 4월 18일자)

그러나 이런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 없는 세계’를 내세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일이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평화공원을 방문하여 핵무기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당하고 희생당한 일본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핵 없는 세계’를 지향하는 대표적 지도자가 대표적 대량살상무기인 핵무기 사용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평화를 향한 역사적인 전진’이다. 

한국민이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우려하면서도, 이를 넘어 히로시마 방문과 핵무기 사용에 대한 그의 사과를 수용해야 하는 것은 ‘탈핵과 평화’가 자국의 이해관계와 감정을 넘어서는 ‘인류 진보’의 핵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미국정부 역시 일본 국민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전 인류에게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다. 

오바마가 요구해야 할 ‘진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정부가 일본을 향해 원자폭탄을 사용한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비록 늦었지만 미국 정부의 일본 국민들에 대한 사과가 이루어지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미국 정부의 사과는 대량살상무기의 무고한 피해자들인 일본 국민들에 대한 것이지 ‘전쟁범죄자들인 일제 군국주의자들’에게까지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변하지 않는 진실은 일본이 전쟁범죄국가라는 점이며, 미국이 원폭 투하에 대해 사과를 한다 하더라도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 일본’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원폭 사용에 대한 사과 이전에, 그가 알아야 할 중요한 ‘진실’의 하나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에 대해서 아직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진행되는 역사와 영토논란을 한·일 혹은 중·일 사이의 비이성적인 감정싸움 정도로 생각하는 뿌리 깊은 냉소를 지니고 있다. 이런 냉소적 경향은 미국이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를 시작하면서 사실상 일본의 전쟁국가화를 부추기고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개입하는 본질적 원인이 되고 있다. 일본이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는 한국과 아시아인들의 주장을 미국은 여전히 ‘자기들끼리의 감정싸움’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사마 방문과 원폭 사용에 대한 사과와 함께, 과거 일본군국주의자들이 한반도와 중국 등 아시아와 미국, 그리고 일본 국민들에게 저지른 참혹한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할 것을 일본 정부에 명확히 요구해야 한다. 일본 정부의 사죄는 무엇보다 전쟁범죄와 식민지배 등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와 책임 있는 배상, 그리고 전쟁범죄와 식민지배를 미화·은폐하는 과거사 왜곡 행위의 중단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사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요구를 분명히 하지 않을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진주만 참극, 남경대학살, 일본군위안부의 비극 등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따르는 참혹한 희생과 피해를 값싼 군사동맹 추진에 눈멀어 외면해버리고 말았다는 역사적 비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의 망각은 인류 전체에게 더 값비싼 대가를 반드시 지불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알아야 할 또 하나의 진실

‘핵 없는 세계’를 지향하면서 과거의 핵무기 사용에 대해 사과하는 미국의 지도자가 알아야 할 또 하나의 진실은 ‘핵 대 핵’ ‘선제타격 대 선제타격’의 심각한 국면으로 들어서 있는 한반도의 핵전쟁 위기이다. 

이 핵전쟁의 위기는 물론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강행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한반도의 군사위기도 일방이 아니라 ‘위협의 상호작용’에 의해 전쟁위기가 증폭되고 있다는 점 역시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외면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진실’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그리고 한국정부는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해 연례적인 방어훈련으로서 북한이 이를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고 변명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2010년 이래 공세적인 핵무기 전진배치와 비례대응 태세를 점차 강화해왔으며,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는 ‘맞춤형 억지전략’과 ‘포괄적 미사일방어 전략’ 등의 이름으로 사실상 대북 핵 선제공격을 교리화 해왔다. 급기야 올해는 대북 핵선제공격과 ‘김정은참수작전’을 공공연하게 추진하고 있다. 

‘핵 없는 세계’를 추구하는 지도자가 핵무기 전진배치와 핵 선제공격 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일이다. 이런 핵 선제타격의 위협은 북한 비핵화 요구의 명분을 약화시키게 되고, 북한의 핵 무장 논리와 의지도 더욱 강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핵 없는 세계’의 비전과 이를 위한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당연히 동아시아 정세를 불안정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는 북한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도 중요한 전기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 방문을 계기로 군사적 압박과 핵무기 전진배치가 아니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을 실현해나갈 비전을 명확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는 7차 당대회를 앞두고 북한이 또 다시 핵실험 등으로 동아시아 정세를 긴장시킨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오바마의 결단은 앞당겨져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와 이란 등 다른 지역에서 평화와 협력을 진작시킨 역사적 업적에 이어 동아시아에서도 ‘협력과 공존’에 기초한 평화 정착의 물꼬를 트는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아니면 군사동맹의 확장을 위해 ‘핵 없는 세계’의 비전을 값싸게 써먹었다는 비난을 받게 될지는 전적으로 여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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