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다 그렇고 그런 거 몰랐나, 순진하기 짝이 없다”는 비아냥이 뻔히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 한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김대중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거쳐 전남 도지사를 내리 3번 지냈던 박준영 당선인(전남 영암·무안·신안)이 휘하 당직자 김 모(64·구속기소)씨로부터 공천을 대가로 3억6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혐의가 너무 뚜렷하기 때문에 두 번 째 소환절차 없이 금주 내로 영장을 청구하겠단다. 그만큼 수사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일 터. 박 당선인의 측근 수 명이 이미 구속됐고 당선인의 아내도 지난달 30일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았다. 박 당선인은 “봉투를 받은 건 맞지만 그 속에 돈이 들어있는 줄은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선거운동원에게 “이거 쓰라”고 그 봉투 건네줬다. 돈인 줄 모르면서 쓰라고 주다니? 빈 봉투를 쓰라고 주는 사람도 있나? 속된 말로, 말인가 막걸리인가. 차라리 “밥은 먹었는데, 쌀로 지었는지는 몰랐다”고 하시라. 박 당선인 고향 말로 “쪼잔하다”. “야당탄압이자 표적수사”라고 강변하지 않는 걸 그나마 좋게 봐줘야 하는가? 

아직 기소 전이기는 하지만, 20대총선 당선인으로 첫 사법처리 대상자이고, 본인도 봉투 받은 건 시인했으니, 국민의당에서는  최소한 사죄성명은 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죄추정원칙이나 구속적부심이 남아있기 때문인가. 안철수 대표가 지난해 정당혁신방안을 주장한 것 가운데, 부정부패나 수뢰혐의로 수사받으면 공천배제는 물론이고, 당적도 박탈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총선 전 8차선 대로 횡단보도에서 녹색 점퍼입고 사죄한다며 무더기로 넙죽넙죽 큰 절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뭣을 왜 사죄한다는 건지 영문도 모르겠는데 엎드려 있는 후보들 보면서 참담하고 민망했다. 사죄는 지금 같을 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죄송하다. 벌 받겠다”. 이 말이 그렇게 어렵나? “침 뱉는 것도 아까운 쓰레기”라는, 분노한 네티즌들의 성토를 국민의당 지도부들은 못봤는가, 안보는가. 

이번 같은 사건을 볼 때 마다, “이런 사람들이 지역 출신 명망가 소리 들으며 국회에 진출하는 선거제도를 과연 유지해야 하는가?"라는, 차마 해서는 안될 근본적 회의가 들곤 한다. 오죽하면 그런 말도 안되는 회의를 하겠는가. 

양당구도 타파에 새정치 운운하는 정당에서 이런 사람이 나온 것, 기 막혀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거판이라는 게 원래 아무리 너저분하다지만, 이런 사람들의 득세 관행이 구조화되다보니 정치혐오증이 커지고, 그 정치혐오증의 반사이익은 또다시 이런 사람들이 챙기는 악순환을 깨지 않고서야 어떻게 한국정치가 후진성을 면할 수 있겠는가. 이번 20대총선 당선인의 1/3인 94명이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내사중이라니 앞으로 제2, 제3의 박준영이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다. 기존 범죄자의 새로운 범죄자로의 교체를 보는 유권자들의 분노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그 입으로 국민봉사와 정치생산성, 양당구도타파와 정치개혁을 말하는가. 

차제에 수뢰 등 정치자금법/선거법 위반으로 재선거가 치러질 경우, 선거비용을 국고가 아닌 원인제공자나 그 소속 당에서 부담케 하고, 원인제공자 소속 당에서는 후보를 내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 작업, 정치개혁을 누구보다 소리높혀  주장했던 국민의당이 앞장서기 바란다. 그게 유권자들께 그나마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것이다. 큰 길가에서 길 막아가며 큰 절만 해대지 말고, 관련 법 개정으로 진정성을 보이기 바란다. (이강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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