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누구와 협치를 할 수 있을까 

지난 5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총선 민의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여야 3당대표와 청와대에서 회동하고 앞으로 여야 정당대표와 1분기에 한 번씩 정례적인 회동을 갖기로 하는 등의 의미있는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원내대표들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해마다 논란을 빚어왔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공식지정해 줄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박대통령은 ‘국론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국가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야당은 기념곡 지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고 새누리당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야당과 입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 청와대는 국가보훈처의 결정이란 명목으로 기념곡 지정을 불허한다고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국론분열이 생기지 않도록 좋은 방안을 찾으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보훈처가 불허방침을 고집하는 것에 대해 청와대에서는 ‘전적으로 보훈처 결정’이라고 밝히고 있다고 하지만 이를 그대로 믿을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야당과의 소통을 요구하는 총선 민의를 외면할 수 없어 억지 회동을 갖기는 했지만 자신의 입장을 결코 굽히거나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보여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소통은 상대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며 협치는 상호간의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할 때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3년여에 걸친 재임기간 중에 야당이나 정치적 반대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어떤 사람의 말이라도 귀를 기울여 듣고 자신의 뜻을 굽히거나 양보한 사례가 단 한번이라도 있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청와대에서 이제 와서 이 사안에 대해 보훈처의 결정이니 대통령과는 무관하다고 하는 것은 불과 며칠 전에 이뤄진 3당대표와 가진 회동의 진정성을 의심받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새누리당조차 이 같은 보훈처의 불허방침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재고를 요청하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이 끝내 보훈처를 핑계로 뒤로 숨고자 한다면 야당과의 협치를 거론한 것은 일과성 제스처에 불과했고, 앞으로 국정운영도 총선 이전과 마찬가지로 오불관언으로 자신의 뜻대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심각한 경제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민생관련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지만 과연 지금과 같은 태도로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은 4.13 총선 이전에는 민생을 외면한 여야 정당을 비판하면서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요구한 바 있었고 선거 결과에 대해 국정을 발목잡는 야당에 대한 심판으로 국민이 3당체제의 국회를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었다. 이제 또 다시 한치의 타협이나 양보는 하지 않으면서 국회가 국정을 발목 잡는다고 국회 탓만 다시 할 것인지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국론분열을 얼마나 더 부추기려 하는 것인가

국가보훈처가 법에 의해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분들을 보살피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기관이고 법적 절차를 거쳐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지정된 분들이나 그 유가족들 또한 당연히 국가보훈처가 보살펴야할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훈처를 이끌고 있는 박승춘 보훈처장은 광주민주화 유공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대해 왔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이 이토록 심각해진 것 또한 80년 5월 광주 이후 많은 국민들이 애창해 왔던 이 노래가 북한의 김일성을 찬양한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유포되었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에 대해 박승춘 보훈처장이 이를 막는데 앞장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추겼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이 사안 이외에도 세월호 유족 비하발언,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 개입 등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어 야당으로부터 사퇴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그동안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문제에 대해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났다’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대통령이 결심할 사안이라고 시사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대통령께서 여야 3당대표와의 회동을 마치고 합의사항으로 “국론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국가보훈처장에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말씀한 내용에 대해 대다수 국민은 국가보훈처가 이번에는 기존의 입장을 바꿔서 기념곡으로 지정을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정작 보훈처는 오히려 기념곡으로 지정할 경우 국론분열이 우려된다며 기왕의 불허 방침을 고수할 것이라 밝혔다. 이로 인해 4.13 총선 이후 모처럼 조성된 협치의 분위기도 얼어붙고 말았고, 당장 이틀 후에 개최될 기념식이 다시 볼썽사나운 모양새를 연출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정부와 유가족 등 시민사회와의 소모적 갈등 또한 더 큰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지금이라도 무엇이 대통령의 뜻인지 다시 잘 헤아려서 불필요한 국론분열을 앞장서서 부추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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