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활성화법 거부는 협치의 파탄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청문회 활성화를 가능하게 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손에 올려놓고 만지작거리는 모습이다. 오늘(23일) 아침 <국민일보>는 여권 핵심 관계자의 말을 빌어 박근혜 대통령이 ‘상시 청문회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일단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아는 바 없다”며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한 청와대의 입장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바 없다”는 것이다. 결국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고심하는 모습이다.

마침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너무 터부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바람을 잡고 나섰다. 거부권에 대해서는 여당 내에서도 신중론도 많지만, 이미 합리적 판단 능력을 상실한 친박계는 박 대통령이 결심하면 이번에도 무조건 따를 것이다. 그래서 20대 국회 개원을 앞둔 정국에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가 뇌관으로 자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른 ‘협치’를 시작부터 파탄내겠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명분과 이유를 찾기 어렵다. 청문회 활성화는 어디까지나 국회운영에 관한 국회 자신의 결정이다. 그것을 갖고 대통령이 받아들이니 마니 하는 것은 3권 분립에 대한 훼손이다. 이미 미국 등에서도 상임위 중심의 청문회가 활성화되어 있다. 유독 우리 국회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채 행정부나 마비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없는 마타도어이다.

사실 이번에 개정된 내용이 이전의 것과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는 가능하다. 다만 이전에 비해서 청문회의 요건을 완화하여 보다 활성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정도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이라는 비상한 선택을 해야할 정도의 내용이 아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여당 원내대표가 거부권 얘기를 꺼내는 것은 정치적 오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야당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들은 입만 열면 청문회가 행정부 마비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과장된 억측에 불과하다. 야당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항상 여론을 의식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무모하게 국회를 운영할 수 있겠는가. 이미 야당들도 약속하고 있듯이, 이 법이 시행되더라고 야당들은 선별적으로 신중하게 청문회를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여당 의원들 상당 수까지도 법안에 찬성표를 던져 통과된 법이다. 여당 의원들도 필요성을 인정한 내용에 대해 이제와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여당 지도부가 그에 따르는 거수기 역할을 한다면 집권세력의 꼴은 또 무엇이 되겠는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다시 국회 본회의에서 3분의 2가 찬성하면 그대로 법률로 확정된다. 20대 국회에서 재의결 절차를 밟게 된다면, 야당 의석이 167석이기 때문에 무소속과 여당에서 30여명이 이탈하면 재의결이 가능하다. 그런 상황이 초래된다면 무너지는 것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자신들이다.

4.13 총선이 끝난지 아직 40여일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총선 민의의 교훈을 잊고 또 다시 독선적인 국정운영을 시도하고 협치를 거부한다면 자신들의 정치적 몰락을 앞당기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지금 박 대통령이 해야 할 것은 법안에 대한 ‘검토’가 아니라 ‘공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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